“친숙함과 낯설음의 끝없는 변주, 여행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

당대의 천재이자 대문호였으나 현대인에게는 아득하기만 했던 연암 박지원을 웃음과 우정, 노마드의 달인으로 새롭게 조명했을 뿐 아니라 들뢰즈의 사상으로 연암의 역작 〈열하일기〉를 재해석해 낸 참신한 독법으로 고전에 목말라하던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출간 10주년(2013년)을 맞아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과거시험지에 정답은 안 쓰고 그림을 그리고 나오는 장난끼가 다분한 사람.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고 그 친구와 진실 되고 깊은 우정을 나누는 속 깊은 사람. 엄숙함과 고루함을 버리고 재치발랄하고 아주 섬세한 묘사를 즐기는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고, 서학이 들어오던 정조시대 그 시대를 비웃 듯 비켜서서 살았던 현실주의자.

술과 사람을 좋아하고 항살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자 했던 연암, 화통해서 막힘이 없고 신분의 차이를 따지지 않고 격의 없이 담소했으며, 말술을 들이키고도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하니 정신력 또한 대단하다. 논쟁이 붙으면 사흘 밤낮을 쉬지 않았던 연암에 대해 지은이는 재기가 넘치는 문장으로 연암 박지원에 대한 독특한 해석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유기적으로 엮어냈다.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1780년 청나라 건륭황제의 만수절(70세)을 축하하기 위해 사행하는 삼종형 박명원을 수행하여 청나라 고종의 피서지인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청조치하의 북중국과 남만주 일대를 견문하고 그 곳 문인, 명사들과 교류 및 문물제도를 접한 결과를 소상하게 기록한 연행일기다.

열하일기는 여행의 기록이지만 거기에 담긴 것은 이질적인 대상들과의 찐한 접속이고, 침묵하고 있던 사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발견의 현장이며, 새로운 담론이 펼쳐지는 경이의 장이다. 때론 더할 나위 없이 경쾌한가 하면, 때론 장중하고, 또 때론 한없이 애수에 젖어들게 하는, 말하자면, 멜로디의 수많은 변주가 일어나는 택스트, 그것이 〈열하일기〉다.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시공간》 개정신판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나는 너고, 너는 나다’에서는 연암의 생애, 그의 기질과 세계관에 초점을 두었다. 2장 ‘1792년, 대체 무슨 일이?-〈열하일기〉와 문체반정’에서는 〈열하일기〉를 문제적 텍스트로 지목한 정조의 문체반정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3장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에서는 사행단을 따라 나선 연암이 잠행을 유쾌하게 즐기면서 왕성한 호기심으로 바라본 광경들을 재구성했다. 4장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에서는 연암의 주특기인 유머와 패러독스에 관한 이야기다. 5장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에서는 인간을 넘고 주제를 넘어선 연암의 철학적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보론에서는 연암과 다산 - 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두 가지 경로. 〈오만과 편견/ 그때 다산이 있었던 자리/ 서학, 또 하나의 진앙지/ 표현기계와 혁명시인의 거리/ 몇 가지 접점들/ 그들은 만나지 않았다〉가 소개된다. 부록으로는 〈열하일기의 원목차/ 연암의 열하 여정도/ 열하일기 등장인물 캐리커처/ 화보/ 한께 읽어야할 텍스트〉 등이 열거되어 있어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 2003년 ‘고전 다시 쓰기’라는 기획의도 아래 출간된 이 책은 ‘고전은 어렵다’는 불변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출간 첫 해에만 수 만부가 팔려 나갔을 정도로 독자들은 이 책에 열광했다. 고미숙에 의해 다시 써지기 전의 〈열하일기〉는 당대에는 누구나 읽었지만(군주였던 정조까지도) 함부로 읽어서는 안 될 불온서적이었고, 선대의 문집을 정리하여 후대에 전하는 것이 후손의 의무였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손자 박규수 조차 공간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문제작이었다. 이후 번역과 공간이 이루어졌지만. 지난 100여 년간 아무도 읽지 않는 ‘고전’의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읽을수록 좋아지는 책이다. 그의 유머 안에 녹아있는 천재성 때문에 혀를 내두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