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식 국장

일제 강점기 식민지 경제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옛 나주잠사(蠶沙)공장이 지역민과 예술가들을 위한 문화예술 창작 발전소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준비가 마무리 되었다.

정부는, 지역의 근대문화유산을 문화적으로 보존, 활용해 도심 재생과 지역경제 활성화로 연결하기 위해 근대문화유산을 활용, 예술창작벨트사업을 추진했는데, 전남에선 나주 잠사공장과 신안 태평염전이 정부사업에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나주잠사는 1910년, 일본에서 이주한 센가(千賀)라는 사람이 최초로 나주 잠사주식회사를 설립, 30여년 동안 경영하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여 조선에서 물러나자 1954년 나주인 김용두씨가 그 뒤를 이어 운영하였으며, 1970년도 후반까지 나주지역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였던 공장이기도 하였지만 잠사 창업주가 사망하자 잠사공장 아가씨들에게 소복(素服)을 입혀 상여를 뒤 따르게 해 한때 말썽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공장에서는 해방 전후의 어수선한 정국에 편승하여 잔인무도한 고문과 학살이 자행되었던 시대의 비극도 함께 숨어있다.

나주사람이라면 쉬쉬하며 입에 담기조차 거북스러워하는 세칭 ‘반 대장’이라 불리어 졌던, ‘나주 애국청년동지회회장’ 반석근(당시 35세)이 나주 경찰서의 비호아래 좌익색출이라는 명분으로 인근(문평, 다시, 노안, 나주, 청동리, 석현리, 송촌리, 대호리)마을 등을 졸개들과 휩쓸고 다니면서 임부(姙婦)의 배를 발로 차기는 예사요, 성인남자치고 치도곤을 안 당한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악행을 일삼았던, 울던 아이도 ‘반석근 패’ 란 이름만 들어도 울음을 뚝 그친다 할 정도의 무지막지한 작당들의 적굴(賊窟)로 사용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 반석근의 직업은 페인트공이였다고 하는데, 악행을 저지르다 결국 미 군정 하에서 사형(死刑)을 당 했다고 한다. 그의 집안 후손들의 행적은 찾을 수 없지만 반석근을 강아지마냥 졸졸 따라다니며 참혹한 일을 자행한 주구들의 후손들은 발 편히 뻗고 지금도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다.그의 잔인한 범죄 행위는 반공(反共)이라는 미 군정의 정책과 친일 경찰의 비호가 있기에 가능했던 사건 이였다. 

반석근 일당은 사설 유치장 까지 만들어 놓고 고문과 구금, 살해를 서슴지 않았는데 대표적 사건은, 당시 이승만 정권의 취약함을 방어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조직한 ‘대한청년단’ 감찰대원 백정곤을 납치, 살해 후 손과 발을 부려 뜨려 가마니에 담아 석현리 앞 백사장에 암매장한 희대의 전율적인 사건이였다(1949. 2. 8.서울신문)이후에도 그의 악행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나주 석현리 나종승이라는 사람을 살해 후 같은 수법으로 암매장하였을 정도의 천인공노할 잔인함을 보였고, 행방불명된 사람도 많았다는 살아있는 증언도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주 잠사 공장을 리모델링 할 때 이러한 비극의 역사적 장소를 일부분 보존하여 관련 사료(史料)와 함께 전시장 등의 교육적 측면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 뛰던 일당들이 결정타를 맞게 된 동기는, 전국적으로 반석근 패와 같은 반인륜적 폭력 현상?이 만연하자 미 군정도 부담을 느꼈던지 애국이란 간판을 달고 자행 된, 잔혹한 야만(野蠻)행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주 반석근 일당의 패악이 백일하에 들어나는데 그 전모는 공초(供招)에만 의존하여 많은 것이 은폐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현존하는 인근 주민 80세에서 90세를 넘은 노인 분들의 관련 증언을 듣자면, 어떻게 사람이란 거죽을 뒤집어쓰고 사람에게 그렇게 잔인 할 수 있는지 고개를 가로 젓게 만든다. 나주 사람은 이러한 근 현대사의 비극을 잊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세계에서 그 악명이나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폴란드의 유대인 강제 수용소 아이슈비츠가 잘 보존되고 있는 이유는 크게 한가지다. 인류는,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그와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고, 그 비극을 인류의 스승으로 삼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생체실험과 집단 학살을 통한 인종 청소의 장소에서 인류는 또한 배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오늘도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 천박함을 들어내고 있다.

나주 잠사의, 부활의 나래도 좋지만 역사는 좋든 나쁘든 우리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어제 속에서 더 나은 사람의 땅을 건실하게 일구자는 뜻도 있다.

또한 광복절(光復節)의 의미와 일제 강점기를 잊지 말자는 약속도 있다. 나주 잠사 공장의 재 단장은 나주의 역사를 간직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춤추고 노래하는 곳이 아닌 우리 것을 소중히 보듬을 줄 아는 의식을 찾아가자는 부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