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백두대간의 어깨와 목은 어디일까? 나는 내 생각 끌리는 대로 묘향산과 구월산을 꼽아본다. 이들 산은 우선 성스럽다. 이들 두 개의 산은 우리의 국조(國祖) 단군(檀君)의 영기가 곳곳에 서려 있어 답파하지 않고도 그 기품이나 정기가 물결치는 듯하다.

동국여지승람은 묘향산에 360여 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마치나 암자나 사찰을 짓기 위해 하늘이 이 산을 예비해 둔 것 같다. 이 산의 진짜 이름은 국조 단군이 오신 태백산이다. “삼국사기”나 “연려실기술”의 고조선조(條)에 보면 “즉태백금묘향산”(卽太白今妙香山)라는 대목에서 지금의 묘향산이 태백산이었음을 알게 한다. 묘향산 정상이 높다는 뜻이었을까. 단군의l 아버지 환웅이 환인천제의 허락을 받고 인간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맨 먼저 강림한 곳이 묘향산이다. 그리고 묘향산은 환웅이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어 정사를 베푼 영험과 외경의 현장이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환웅의 강림은 묘향산의 정상이 신격과 인격,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교류장소를 추정케 한다. 묘향산은 고승들의 명상과 수련을 담은 여러 이야기나 휴정대사가 제자 일천 오백 명에게 궁시와 창검을 가르치며 팔도의 승병들을 불러들인 곳이기도 하다. 시인 백광홍은 묘향산을 노래한 “향산별곡”에서 “시절의 삼춘이오 피나니 뫼꼬치라/ 봉봉이 푸른 비츤 봉래산 금강초오/ 골골이 흐르는 물은 무릉의 낙화로새”라며 그 절경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 소설계의 풍속을 만든 “장길산“과 ”토지“가 묘향산의 천년 잠을 흔들어 깨웠다. 장길산이 동지들과 백성들을 역질과 흉황과 침학의 고통으로부터 구휼하고자 조직을 키우고 정비한 거점이 묘향산이었다. 특히나 길산의 아버지인 명근 스님이 ”묘향산에 와서 묘향산을 못 보는 놈“이란 화두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토지”에서도 이복형의 아내를 좋아하며 야반도주하던 환이가 도망 도중에 아씨가 죽자 시신을 묻은 곳이 묘향산이다. 이때의 묘향산은 작가의 의중에 자리 잡은 인생의 뼈저린 허무와 비애가 울려오는 현장이다.

구월산 또한 의미적 느낌은 묘향산에 이어져 있다. 우리나라 5대 명산이기도 하고 ‘아사달산‘, ’궁흘산’, ‘백악’, ‘증산’, ‘삼위’ ‘서진산’으로도 불리는 구월산은 단군이 아사달에서 9월 9일에 승천하여 신이 되었으므로 구월산이라 일컫게 되었다. 그러니까 단군이 하늘에서 강림한 산은 묘향산이고 평양에 도읍지를 정했다가 다시 구월산 아래 ‘장장평‘(옛이름, 당장경)으로 옮겨서 1500년을 더 다스리다가 마지막으로 구월산에 들어가 신령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단군께서 나라를 다스렸다는 그 오랜 성적(聖蹟)이 이 산의 정상에 남아 있다. 최고봉인 사황봉(思皇峰)에서 동남 방향으로 보면 서북향에 드넓은 황해와 평안남도의 남포가 한 눈에 펼쳐진다.

묘향산이 장길산의 무대였다면 구월산은 임꺽정의 주요 근거지였다. 승려 의연, 도참, 설청 등이 정여립 휘하에서 왕래한 관계로 1589년 기축옥사 때 역모의 혐의를 받기도 했었다. 천재시인 허균이 구월산의 폭포를 두고 “100길이나 되는 저 깊은 소용돌이 속에 여러 마리 신룡이 도사린 것 같다”고 노래한 것도 이 산의 특별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곧추 선 자존심처럼 묘향산과 구월산의 형자(形姿)는 백두대간이 곧추 세운 양쪽 어깨걸이처럼 의젓하고 신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