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를 쓴 ‘셸 실버스타인’이 이런 동화를 썼다.
 
「귀퉁이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 온전치 못한 동그라미가 있었는데 그 동그라미는 잃어버린 자신의 조각을 찾기 위해 먼 여행을 떠났다. 떨어져 나간 조각 때문에 빨리 구를 수 없었던 동그라미는 힘겹게 힘겹게 구르면서 벌레와도 이야기하고‘ 길가에 핀 꽃들의 향기도 맡았다. 가끔은 나비가 날아 와 사뿐 머리 위에 내려앉기도 했다. 비도 맞고 햇볕에 그을리기도 하고 눈보라에 울기도 했지만 세상의 모든 것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오랜 여행 끝에 드디어 잃어버린 조각을 찾은 동그라미는 완벽한 동그라미가 되어 이전보다 몇 배 빠르고 쉽게 굴러 다녔다. 그런데 이제는 벌레와 얘기하기 위해 멈출 수 없었고 꽃향기는 물론이고 나비도 날아와 앉을 수 없었다. 노래를 부르려고 했지만 빨리 구르다 보니 숨이 차서 제대로 부를 수가 없었다. 동그라미는 구르기를 멈추고 가만히 한 조각을 떼어 놓았다. 그리고는 다시금 천천히 굴러가면서 노래도 하고 벌레와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완벽한 것의 불편함’을 전하는 이 동화는 특별하게 잘나서 ‘보통’의 다수와 분리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사실은 상상처럼 멋진 일이 아님을 생각하게 한다. 귀퉁이가 떨어져 삐뚤삐뚤 구르는 동그라미처럼 세상사는 일은 조금은 부족하게, 조금은 느리게 굴러 가야 꽃냄새도 맡아가며 노래도 부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 준다.

지금의 계절은 집이 없는 사람도 대자연을 거처삼아 들녘으로 나서는 2월이다. 해질 무렵 승천보 산책로에 서면 아주 먼 곳으로부터 번져와 목포방면 금성산 머리위에서 쉬고 있는 석양녘의 낙조와 만날 수 있다. ‘해는 서산에 지고’라 했지만 승천보에서 지는 저녁 해는 강물 위를 평화롭게 번지며 휴식의 정밀을 느끼게 한다.

강의 아랫녘이 물안개에 싸여 흐릿해지면 풍경은 흡사 물먹은 한 폭의 동양화가 된다. 새 몇 마리가 드물게 서있는 나뭇가지 사이사이를 ‘포로롱’ 거리는 것도 보인다. 강물 위에 제 얼굴을 비추노라면 우리가 끌고 온 생의 아픈 조각들이 그리도 편안해진다. 돌멩이 하나를 집어 물수제비를 뜬다. 동 동 동 주름 잡힌 나이테가 저 편 강안을 달려간다. 문득 우리의 생을 이끄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사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산책로를 따라 더 멀리 걷는다. 꽃 이름표를 부착한 야생화의 빈 자리가 잘 단장된 산책로를 따라 휴식에 들었다. 지나는 길옆의 목교와 인공섬도 아름답다. 자연은 빈 몸인데 주위 풍경은 황홀하다. 귀퉁이 떨어진 동그라미 이야기는 이럴 때 영낙 없는 영산강 얘기다. 오랜 시간을 흘러서 강물이 바다에 가기까지는 수많은 얘기가 물주름 위에서 하늘거린다. 돌멩이하고도 풀꽃하고도 돌아 나온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하고도, 하늘과 비바람과 들녘과 야산하고도 지나온 시간을 얘기하며 웃음처럼 자랑처럼 반짝이는 맑은 영혼을 가진 것이 강이 아닌가.
 
나는 강은 바다를 만나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강이 바다를 만나는 것만 목적으로 삼는다면 직선의 흐름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강은 이 들녘도 적시고 저 들녘도 적시려고 여러 개의 굽이를 만들어서 흘러간다. 영산강은 특히나 보통 사람들의 강물이다. 속도도 수량도 저리 널널한 것은 귀퉁이를 잃어버린 동그라미처럼 이야기도 노래도 제 새끼처럼 안아서 흐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은 거쳐 온 시간을 뒤돌아보지 않고 흐른다. 가서는 돌아오지도 않는다.
 
밤이 되면 바람 끝은 차다. 허나 멀리 보이는 들녘으로 물먹은 별들이 속삭이듯 내려온다. 싱그러운 바람이 물결로 밀리며 휘파람 소리를 낸다. 강 앞에 서면 세상은 여전히 차분하다. 심호흡 한번으로 우주를 몽땅 들이킨다. 저 강물의 시간 위에 피고 졌을 인간의 역사는 상상하는 것만도 새삼 심신이 생신해 온다. 강물을 따라 눈길을 보낸다. 이 굽이 저 굽이에 다가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들이 잠들지 않고 손 흔들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