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

천지앞에서 나는 천지의 카리스마에 압도되고 말았다. 천지사방에 서린 저 미만한 카리스마, 봉우리마다 갈기를 세우고 그 카리스마가 흘러온 곳을 둘러본다. 백두산의 높이가 2,750m이고 천지가 그 정상이니 하늘의 위엄이 만들어낸 것일까. 갖가지 투각문(透刻紋)과 양출문(陽出紋)으로 장식된 여러 장의 금판들이 금빛 반짝이는 광휘를 뿌리며 바람의 속도대로 팔랑거리고 있다. 가장자리, 중심 할 것 없이 빛이 비껴가는 곳이면 칠색 무지개가 열두 폭 비단처럼 여기저기에 걸쳐 있다. 드문드문 비취곡옥이 박혀있고 대륜의 아래위에 점문(點紋)의 간격만큼 찍힌 격자문의 형상이 더없이 아름답다.
 
독일의 한 유명 지리학자가 천지를 수심이 442m가 넘는 세계 10대 호수 중 하나로 꼽았다. 10대 호수란 게 어디에 근거하는지 모르겠으나 천지를 여느 호수 등속에 포함시킬 일인가. 천지는 용왕담이라고도 한다. 화구벽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호반으로 내려가는 길은 남쪽의 불멱〔火項〕으로 통하는 길 밖에 없다. 영조 때(1764) 박종(朴琮)이 쓴 백두산 탐승문에는 “……움푹 꺼져 들어가기를  천 길이나 되며 …… 엎드려 보면 무서워서 몸이 떨리고, 검푸르게 깊은 것이 잴 수 없으며 땅 구멍에 통할 것만 같다”고 하였다. 이 역시 천지의 카리스마가 묘사된 대목이다.
 
하늘에서 조감하면 천지는 사람의 몸통 모양을 하고 있다. 왕관이 머리에 쓰는 관모이니 충분히 개연적이며 장백폭포에서 시계 바늘 방향으로 백암산, 비류봉, 망천후, 병사봉, 마천우, 충암산, 차일봉 등등이 금관총 과대 및 요패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천지는 기질적으로 식물성도, 광물성도 아닌 동물성이다. 그것도 엄청난 야성을 갈기 세운 동물성이다. 천지가 언제부터 이 같은 기질로 우리를 압도하는가는 짚어보고 싶지 않다. 다만 저 발돋움하듯 솟아난 묏부리하며 흘러내린 선이며 둥근 원통형의 외형하며……이것들이 내 영감으로는 구상과 추상을 함께 아우른 형태적 집합이며 구만리 장천을 흔들어 깨울 폭풍과 우레의 영지로 비쳐졌다. 바로 이 영지가 자작나무 숲으로 받쳐진 금빛 찬란한 왕관이라니, 그래서 금관이 자작나무 형상으로 제작된 것과 천지의 형상은 무관하지가 않다.
 
금관이 금관총에서 출토된 부장품이라면 천지는 하늘이 가슴 깊이 품었다 토해낸 우리 민족의 만년 무궁한 칭예의 부장품일터! 세상 가득 황금빛 서기에 둘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