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 ''소피아 앙티폴리스''에서 배우다
황무지에서 40년 만에 세계적인 첨단과학도시로 변모
첨단기업 1,414개 입주…전세계 70개국 3만명 근무

공공주도 대표적 혁신도시, 지역균형발전 성공 모델
대학, 연구소, 기업체 상호간 강력한 산학협동 결실

'영산강 르네상스'를 이끌 혁신도시 조성사업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한전을 비롯한 이전기관들이 신사옥 건설에 박차를 가하며 나주행(行)을 서두르고 있다. 명품도시로의 비상을 꿈꾸는 '혁신도시의 꿈'이 점차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혁신도시의 성공적인 정착에 노력해야 할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나주혁신도시의 밑그림은 어떻게 그려졌고, 지금은 어떤 모습이며 또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20회 기획연재 ‘혁신도시, 빛가람에서 길을 묻다’를 통해 짚어본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에서 ‘혁신도시’라는 용어는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이라는 국가정책과 연관되어 있어서, 특정한 목적을 지닌 정책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혁신도시라는 개념이 반드시 공공기관 이전과 연관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우리가 혁신도시라고 지칭하는 외국의 도시들은 공공기관의 이전과 전혀 관련 없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혁신도시란 혁신활동이 일어나는 도시를 뜻한다. 따라서 혁신도시에서는 대학이나 공공 및 민간 연구소 등 혁신을 창출할 수 있는 지식연구기관들의 역할이 강조된다.

그러나 최근 혁신 이론에서는 대학이나 연구소의 혁신 창출 기관에서 여타 부분으로 혁신이 전파되는 혁신보다는 다양한 혁신 주체들 사이의 네트워크와 파트너십을 통해 혁신이 창출·전파되는 상호작용적 혁신을 보다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혁신도시는 넓게 해석해서 기업과 기업, 또 기업과 대학, 연구소, 공공기관들 사이의 긴밀한 연계와 네트워크를 통해 혁신이 쉽게 창출되고 확산되는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학술적으로 혁신도시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정의되어 있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혁신도시라고 불릴만한 도시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첫째, 혁신도시는 도시 안에서 끊임없이 경쟁력 있는 새로운 혁신이나 연구개발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따라서 혁신을 창출하는 주체인 첨단기업이나 대학 혹은 선진 연구기관들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곳의 혁신 주체들 사이에 유기적인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다.

둘째, 도시의 산업 구조 측면에서는 기존의 전통적 제조업이나 서비스업보다는 부가가치가 높은 지식기반형 산업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시의 인적 구성 측면에서는 고급 전문기술 인력의 비중이 높다.

셋째, 혁신도시에서 혁신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는 물리적 하부구조가 필요하다. 따라서 공항이나 고속도로와 같은 고속교통수단 및 발달된 정보통신 하부구조를 갖추고 있다. 또한 고급 전문인력이 거주하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쾌적한 생활 환경을 갖추고 있다.

넷째, 최근 혁신 이론에 따르면 혁신의 창출 및 전파에 있어서 물리적 하부구조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지역의 사회문화적 하부구조이다. 따라서 혁신도시는 지역 내에 협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외부에 배타적이지 않고  개방적이다. 또한 도시 사회 구조가 중앙집권적 수직적 계층 구조보다는 거버넌스(governance)에 기반한 수평적 협력구조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섯째, 혁신도시는 인구나 고용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주변 지역에 긍정적 파급효과를 미쳐 지역 발전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 소피아 앙티폴리스 주거시설(왼쪽) 및 연구소.

개발주체에 따른 혁신도시 분류

일반적으로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혁신도시는 혁신도시의 도시 개발 주체에 따라서 ① 공공부문 주도와 ② 민간  기업 주도 ③ 공공과 민간의 공동 주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공공기관 주도로 기존 도시와는 무관한 곳에 계획적으로 개발된 신도시형 혁신도시의 사례로 프랑스의 소피아 앙티폴리스를 들 수 있다.

그리고 공공기관 주도로 기존도시의 영향권에 있는 인근 지역에 계획적으로 개발한 신도시형 혁신도시의  대표적 사례로는 프랑스의 메쯔 인근 테크노 폴 메쯔 2000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공공기관 및 기업이 함께 공동으로 주도한 기존도시 인근 신도시형 혁신도시의 사례로는 스웨덴 스톡홀롬 인근의 시스타를 들 수 있다.

공공기관 주도의 도시재생형 혁신도시로는 대표적으로 영국의 셰필드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기존 도시가 쇠락해 가고 있을 때, 도시를 재생시키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여러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고 혁신 주체간 연계체계를 활성화 시킨 대표적 사례이다.

또한 전통적인 대학 도시였지만 민간 기업의 유치와 공공기관의 이전을 통해 새로운 첨단산업 도시로 발전해가고 있는 스웨덴  웁살라시는 공공과 기업이 함께 기존 도시를 재생한 혁신도시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밖애 기업 주도의 도시재생형 혁신도시는 민간 기업 주도로 도시재생에 성공한 사례로서 대표적으로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 회사가 입지해 있는 도요타시의 경우와 아디다스사와 퓨마사가 입지해 있는 독일의 헤어쪼겐아우라흐시를 들 수 있다.

이같은 혁신도시의 유형 가운데 공공 주도의 신도시형인 소피아 앙티폴리스와 공공과 기업 공동 주도의 신도시형 시스타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나주혁신도시 개발의 시사점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새로운 독립 신도시 소피아 앙티폴리스

프랑스 정부의 강력한 지방 육성 정책으로 탄생한 소피아 앙티폴리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프랑스의 대표적 관광도시인 니스와 영화제로 이름난 깐의 중간 지점에 놓여 있다.

수도권에 인구와 자원, 기업 등이 집중되면서 과밀화로 몸살을 앓았던 프랑스 정부는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강력한 지방육성 정책을 추진했다. 파리의 과도한 집중을 해소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된 첨단산업 연구단지인 소피아 앙티폴리스에 프랑스는 이곳에만 1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 국립과학연구센터 등 연구소와 선도기업을 유치하고, 지방분권법을 만들어 대학과 국영기업을 이전시켰다.면적 2,300ha (약 700만평), 인구 35만명의 쾌적한 휴양지를 연상케 하는 이 곳에는 프랑스텔레콤과 시스코시스템스 등 천여 개의 첨단기업이 입주해 프랑스 경제 성장은 물론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사회과학자 푸리에(Fourier)의 유토피아적 사상에 기반을 두고, ‘과학, 문화 그리고 지혜’의 도시를 만들고자 했던 파리 국립공과대학의 부총장 라피테(Pierre Laffitte)의 생각을 구체화시킨 것이다. 개발에 착수한지 30년이 지난 지금 세계 10대 지식기반 선도지역, 유럽 3대 지식기반 선도지역중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대학 혹은 기존 산업중심지에서 출발하였던 다른 혁신도시들과는 달리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공공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대표적인 혁신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 곳은 원래 아무런 대학과 산업기반이 없었다. 그렇지만 니스라는 유명 휴양지 주변 지역이어서 기후, 개방성, 공항 등 지식경제에 필요한 입지조건은 구비한 곳이었다.

이 도시의 개발 주체는 공공기관이다. 지방자치단체인 레지옹·데빠르뜨망(도)·코뮨시(시·읍·면), 지역개발청, 연구진흥청, 중앙정부 등의 치밀한 지원정책이 성공요인이었다. 우선 데빠르망이 2억 6,000만 유로를 투자하여 도로건설과 학술기관들을 설립하였다. 중앙정부도 2억 유로를 투자하여 초기 토지구입에 기여하였으며, 지방정부와 상공회의소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SYMISA(Syndicate of Sophia Antipolis)가 1억 7천만 유로를 투자하여 소피아 앙티 폴리스의 인프라를 개발하였다.

앙티폴리스 성공의 주요 역할을 담당한 곳은 대학과 연구기관으로 1972년에 파리공과대학의 분교가 최초로 입주하였다. 또한, 지역개발에 관한 범정부기구인 CIAT(Inter-ministerial Committee on Territorial Development)는 경제의 다양화, 고용창출, 환경  보전 등을 골자로 하는 소피아 앙티폴리스 개발계획을 승인하고 이를 국가차원의 관심대상으로 선언하였다.

앙티폴리스의 교육 및 주거환경은 혁신환경의 조성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앙티폴리스 내에는 니스 소피아 앙티 폴리스 대학, 파리국립공과대학 등이 있으며, 외국인자녀들을 위한 2개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주거환경 측면에서 앙티폴리스는 지중해와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온화한 기후로 유럽의 일급 휴양지이자 세계적인 휴양지이다.

소피아 앙티폴리스의 개발 및 운영의 주체는 지방정부와 상공회의소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SYMISA(Syndicate of Sophia Antipolis)이다. 토지이용 측면에서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주변의 뛰어난 자연환경을 삶의 질로 연결시킨다는 전략 하에 전체면적의 65%를 녹지로 설정하였다. 또 도시경관적인 배려를 위해 건축에 있어서는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다.

▲ 소피아 앙티폴리스 전경

소피아 앙티폴리스의 성공 특징

소피아 앙티폴리스의 가장 큰 특징은 공공 주도로 인위적으로 개발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개발하는데 있어서 우선 엄격한 개발 원칙을 유지했다. 지역 전체의 3분의2를 녹지로 보전하고 3분의1만을 개발하는 원칙을 엄격히 유지하고 있고 건물의 건폐율(30%), 고도제한, 건축형태, 색조 등도 관리하고 있다.

특히 이업종 (異業種) 교류를 조성이념으로 하고 있다. 이업종교류는 같은 장소에 연구소, 대학, 기업, 금융기관 등을 집적시켜 상호접촉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아이디어의 창출, 기술 혁신, 기업설립의 유도와 같은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단지 내에 연구소뿐 아니라 생산업체를 유치하여 연구결과가 즉시 상품화되도록 여건을 조성한 것이다.

1단계 23㎢에 이어 2003년부터는 2단계로 22㎢가 추가 개발 중이어서 현재 모두 45㎢의 도시로 발전했다. 뉴스위크지는 소피아 앙티폴리스를 세계 10대 지식기반 선도지역의 하나로 선정했으며 유럽 3대 과학지식도시 중 핵심도시로 평가했다.

소피아 앙티폴리스가 성공을 거두면서 전 세계에 조명을 받고 있는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탁월한 실용적 리더십이 있었다. 라피테 학장이 프랑스 지방육성의 물꼬를 트기 위해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과 통찰력으로 만성적 낙후지역에 과학산업형 계획적 신도시 개발을 창안하고 실현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둘째 공항과 고속철도 이용이 비교적 편리하고 고급인력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구비했다는 점이다. 지중해와 가깝고 맑은 공기와 풍부한 햇볕이라는 자연조건과 골프장, 레포츠 시설 등 문화적 여건이 잘 갖춰졌다.

셋째 기업활동에 충분한 토지이용이 임대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업체에게 신속하게 제공되었다는 점이다. 전체 면적의 28%에 이르는 용지를 기업이 원하는 산업용지와 연구개발용지 등으로 제공되었다.

넷째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조세와 보조금 및 인프라 지원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투자유치를 위해 관련 주체가 힘을 합해 세일즈 활동을 적극 전개했다는 점이다. 다섯째 정보통신산업 등 첨단산업에 특성화하고 세계적인 선도기업과 대학 등을 유치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연이은 기업유치가 순조로웠고, 대학과 연구소와 기업체와의 강력한 산학협동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황무지에 40년 만에 세계적인 첨단과학비즈니스도시로 변모한 소피아 앙티폴리스.

계획적으로 만들어진데다 지역균형발전의 성공 모델로 자리잡은 만큼 우리에게 주는 의미도 남다르다.

현재 추진 중인 나주혁신도시 개발사업도 프랑스 소피아 앙티폴리스로부터 얻는 비결을 응용함으로써 성공의 길로 접어들게 해야 할 것이다.

이재태(자치분권 나주시민연대 정책교육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