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

욕망 없이 인간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욕망 없이는 다다를 수 없고 거미줄 같은 이 지상의 미로를 독파할 수도 없다. 사랑하는 일까지도 그 물줄기는 욕망에 이어져 있다. 욕망의 회로 위에서 피돌기 하는 존재가 어찌 인간뿐이겠는가. 생명은 욕망이 조정하고 욕망의 간섭 위에 피돌기하고 있다. 생명을 가진 것치고 욕망에서 분리된 것은 없다. 불교에서 가장 경계하는 폐해는 탐·진·치(貪瞋癡)라는 삼독(三毒)이다. 허나 종교적 원망(願望) 또한 욕망 없이는 다다를 수 없다면 탐욕과 원망은 창과 방패의 관계일까?

올리버 색스는 <색맹의 섬>에서 태평양 미크로네시아 군도 중의 편지랩과 폰페이에서 풍토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기록을 감동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색깔 구분이 불가능한 색맹들은 밝기의 차이만으로 색을 구분하는 독특하면서도 경이로운 세계를 체험한다. 함께 색맹인 모녀가 천연섬유 깔개를 짜는 모습, 색맹 아이들과 어울린 밤낚시 등 색맹을 극복하고 보완해가는 이들의 감각적 노력 등이 맑고 깨끗한 풍경처럼 펼쳐져 있다. 저자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로 널리 알려진 영국 태생의 정신과 의사. 그는 이미 수많은 신경정신과환자들의 임상사례를 뛰어난 문장력으로 묘파했었다. 그리고 인간의 이면을 탐구한 통찰력으로 취약한 시력 뒤에 오히려 증진되는 청력과 기억력, 덤으로 색깔의 조화에 대한 감지력까지 보고하고 있다.

실재하는 ‘색맹의 섬’은 그 자체로도 흥미가 동한다. 허나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우리네 삶에 관념으로 덧씌워진 색채적 감별력으로는 더 이상 눈부시게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까지 가르치고 있다. 익숙한 만큼 우리네 일상은 답답하다. 지루하게 뻗어나간 촉각의 자리마다 권태와 짜증이 범람한다.

사람이 인지하는 색깔은 1만 1000여 가지인데 하늘을 날아 먹이를 포획하는 매는 색깔 판별력이 인간의 다섯 배쯤이라 한다. 동공이 길쭉한 고양이는 망막 뒤에 거울 같은 반사막이 있어 어둠속에서도 빛이 난다고 한다.

진정 감동적인 새로움은 평범함을 경계하고 낯익은 상식에 저항하는 일이다. 어찌 똑같은 일의 두 번 반복이 지루하지 않을까. 종말은 멀거나 가깝거나 상관이 없다. 허나 똑같은 일이 여러 번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 참기 어려운 지루함과 따분함을 동반한다. 어제와 오늘이 같을 수 없듯, 그 작은 모래알이 똑같은 두 개가 없듯, 내가 왜 동일한 두 개의 일상에 절망하는지 이해되실 것이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 세상은 새로워져야 한다. 새로움 자체가 바퀴달린 수레처럼 전진하는데 우리만 팔짱끼고 저녁노을 바라보듯 멍청히 서 있는 것이다.

상식에 저항하면 세상은 새롭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산뜻하다. 들꽃 한 송이, 굴러다닌 돌멩이 하나에도 저마다 생의 빛깔은 감동이 다르다. 문제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끼는가.’이다. 절망에 겁먹지 않고 희망마저 뒤집어 가슴 설레는 자, 천길만길 따분함에서 뛰어내리는 자이다. 눈부신 세상에는 뒤집힌 자만이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지금 본래적인 모든 것들에 저항하고 있다. 이미 그쯤그쯤 관념화된 형상과 색깔에 대해 색맹의 눈으로 세상의 순수에 집짓고 있다. 애꾸눈의 마을에 가면 정상인이 장애자라 한다. 나무, 하늘, 강물, 태양, 구름, 돌, 바다…… 따위는 쉬운 암기식 문제처럼 맞춰낼 수 있다. 이들이 몸 바뀔 때까지 저항하자. 변화 없는 현실에서 용기 있게 탈출하자. 우리 함께 손잡고 색맹의 대륙을 건너자. 그 대륙의 눈부신 백성으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