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망친 ‘빨갱이 아버지’를 용서하다

한국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파헤치면서, ‘분단소설의 미학’을 보여준 작가 김원일이 처음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전면적으로 추적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지배했을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고모, 누나, 남동생과 일제시기와 해방정국, 그리고 짧은 서울생활의 한국전쟁 시기를 통해, 변해버린 가족사의 내면 곳곳을 그려내고 있다.

‘아들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지식인으로, 국가와 민족의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 타계책을 찾아나서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였다. 일제 강점기에서는 ‘독립투사’로, 해방정국에서는 ‘사회주의자’로, 한국 전쟁기에는 ‘월북자’가 되면서 자신의 신념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사회수난의 역사를 겪은 우리민족은 어는 집이나 이 책의 내용과 유사한 상처를 거의 다 가지고 있다.

지난해 봄부터 올해 여름까지 계간 ‘21세기 문학’에 총 6회 연재된 뒤 이번에 단행본으로 나온 아들의 아버지는 작가가 아버지의 발자취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 스스로 “내 문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존재라고 밝힌 아버지의 이야기를 칠순이 넘어서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머리글’에서 “(큰 영향을 받았음에도) 당신을 올곧게 그려본 적이 없었다는, 그 어떤 부채의식을 뒤늦게 깨우쳤다”고 고백한다. 《아들의 아버지》는 작가가 태어나던 1942년부터 그의 아버지가 월북하던 여덟 살(1950) 무렵까지 아버지의 삶과 가족의 상황, 식민지 말기에서 해방과 분단을 거쳐 전쟁에 이르는 현대사에 대한 배경 설명이 맞물려 있는 작품이다. 아버지의 생애는 희미하게 남아있는 작가 자신의 기억과 가족, 친척, 지인의 증언, 현대사 관련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작가는 이 책에서 가상 인물을 앞세우지 않고 자신이 직접 자신의 이름으로 등장해 정면에서 아버지를 마주한다.

일본에 유학 가 글재주를 자랑한 작가 아버지가 좌파사상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1930년대 일본유학생 사회가 좌경화할 수밖에 없던 시대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향인 진영에 강습소를 차리고 농민운동에 깊이 개입한 것은, 당시 진영지역 농민들이 투쟁 가운데 얻은 높은 정치의식과 관련 있다. 해방 후 아버지가 남로당에서 중책을 맡데 된 데는 “일제 잔존세력을 척결하고, 민족반역자의 토지를 몰수해 빈농에게 무상분배하고, 농민이 최저생활을 국가가 보장토록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광범한 기층 민중들이 있었다는 사실과 관련 있다. 전쟁 통에 살아남고 빨치산으로 활동하는 데는 “남조선 쓰레기들은 후방부에서 제2전선을 구축해 빨치산 투쟁을 계속하다 조국의 이름으로 전사하라는 명령만 내린” 김일성과 관련 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 할 적에는 순사에게 끌려가 남편 있는 데를 대라고 모진 고문을 받고, 해방 후 좌익 운동 할 때는 순경에게 붙잡혀가 같은 이유로 고문은 받은 어머니의 말대로 아버지는 “가족을 돌보지 않은, ‘사상과 계집질에 미친 미치광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원일은 아버지를 그렇게 그리지 않는다. 계집질 한 내력도 소상히 밝히고 사상에 따라 산 삶도 그려내고 있다. 김원일의 아버지는 실패한 혁명가다. 해방을 스스로 해내지 못했고 통일된 나라를 세우지도 못한 우리 역사도 실패했다. 그러나 지는 꽃들이 씨앗을 남겨 다음 해를 기약하듯, 이 실패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새로운 길이 분명히 있을 터다.

김원일은 “돌이켜 보건데 아버지를 포함한 그들이 비록 오늘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체제를 지향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민족애는 순수했다”면서 그러나 그들은 남과 북 두 현실정치가의 권력욕에 의해 제물로 패배했다”고 평가 한다. “아버지와 닮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던 작가가 그려낸 아버지의 초상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어떤 소용이 있을까. 작가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곤경에 처해 암중행로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에게는 위안이 된 읽을거리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고 썼다.

작가의 아버지는 인민군이 서울에서 철수한 후 유격대 간부로 강원도 태백산맥 어름에서 빨치산 투쟁을 하다 1952년 3월 입북했다. 북에서 재혼해 1남 1녀를 두었으며, 1976년 병으로 금강간 부근 요양소에서 62세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