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

꽃들은 언제나 웃는다. 그럴듯한 아포리즘이다. 새는 울어도 늘상 꽃은 웃는 모습을 노래한다. 꽃은 우선 피어나는 곳이 천양지차다. 이도 저도 사람살이에 견줄 수 있겠다. 온상에서 피어나는 꽃이 있는가 하면 가파른 비탈이나 척박한 모래땅, 바위 틈새 등 뿌리를 내리고 꽃대를 올리는 곳이면 태양 닮은, 형형색색의 꽃을  저 보란 듯이 피우고 있는 품새가 자못 여유 있어 보인다. 사람의 감정으로 저만큼 위태한 곳이면 오금이 저리고 간질거릴 텐데 꽃들의 모습은 태연하고 늠름하기까지 하다. 아니, 바람 지날 때 애교스럽게 살랑거리는 양이 가히 뇌쇄적이지 않던가.

꽃들의 웃음을 화폭에 옮기는 나는 나 자신의 이기심을 채워 넣기가 일쑤다. 꽃들은 저리 천하태평인데 조바심 많은 나만 그들 본래의 색상을 중불나게 바꾸면서 이리저리 여러 생각들로 붐빈다. 엉뚱해야 사람들이 그것 볼만하다 생각하며 쳐다본다고 독특해야 세상 사람이 주목하는 예술이 된다고 빨강, 노랑, 파랑, 보라, 하양 등 그 조건 없이 피어나는 꽃들의 색상마저 내 멋대로 바꾸거나 부풀리는 동안, 꽃들 저마다의 생각이 따로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살며시 미안해진다. 내가 멋대로 변형시켜 놓고 만족·불만족을 고르는 셈인데 그렇다 해도 꽃들이 꿈꾸는 변신은 과연 무엇일까.

▲ 발레하는 꽃들

사람도 이마에 별 붙이고 싶은 이가 있는가 하면 마르지 않은 떵떵거리는 재물을 소원삼는 이도 있다. 배우처럼 미끈한 외양만을 부러워하거나 천군만마도 거뜬히 상대할 호협한 장부를 꿈꾸는 이도 있다. 꽃 또한 마찬가지다. 생김새에서 인간세상을 등불잡고 길 떠나는 성자의 모습도 있고 발끝을 세워 무대를 누비는 발레리나도 있다. 구름타고 주유천하하는 손오공 같은 꽃송이에 높은 키 등대처럼 하늘의 풍경을 넘어다보는 키다리 꽃도 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꽃들은 나름의 묘기도 부리고 신비한 음악도 연주한다. 그런 만큼 꽃들에게 어찌 사람 닮은 신화 전설이 없으리. 생긴 만큼의 기질과 성깔 또한 없으리. 태양의 신 아폴론이 사랑하는 이오와 아치스를  질투하여 반죽해 만들었다는 제비꽃, 아이리스의 슬픈 사연을 담아 헤설피 웃는 붓꽃, 화병으로 사망한 인도 공주의 무덤에서 피어났다는 개나리 등등 저마다 개성 있고 광채 있는 이야기들이 밤하늘의 별무리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꽃들은 눈비에 태풍에 천둥번개에 그들만의 천신만고를 견디더니 사람사람 쳐다보며 표정 밝은 웃음을 보낸다. 봄이 되어 폭죽처럼 터져나온 저 꽃들의 그 카멜레온적 변신을 인간의 시선으로 어찌 짐작하며 감당하랴.

인간이 어우러진 곳이면 어디든 꽃은 핀다. 실감한다. 악마도 꽃은 좋아한다. 꽃들의 차별 없는 사랑 때문이다. 가파른 항해 끝에 안착한 생의 자리마다 꽃이 꽃이 피었다. 반갑고 대견하다. 꽃이 우리 인간에게 저마다의 웃음과 몸짓과 표정을 보낼 때 우리는 사막에서도 삶을 만들고 예술을 짓는다. 이 어찌 가슴 부풀게 황홀한 일이 아니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