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

넝쿨 지는 것들, 마지못해 땅바닥을 기다가도 단단한 지주를 세워주면 희희낙락 구름 위까지 올라서보겠다는 듯 하늘을 향해 걸어 올라간다.

아래로아래로 흘러가는 저 강물도 지주 세워주면 위로위로 넝쿨져 올라갈까.

그러나 강은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제 발밑을 다독이는 것이 제 숙명이라는 듯 분수대를 만들어 하늘로 쏘아 올려도 금세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 햇살 눈부신 아이들이 분수비에 망중한이다.

강물은 갈라지는 넝쿨마다 젖줄 물려 열매 키우듯이 목마른 광야에 젖과 꿀을 나누어준다. 햇빛가리개 이파리들로 중무장하고 낮은 포복의 넝쿨이 몸을 반짝이며 길을 간다.

저물어도 다리품 쉬겠다고 지붕 찾아들어 유숙하는 법 없고 날이 샌다고 볕 좋은 하늘 위로 좀체 날아가는 법 없다. 사람 기다리는 동구 밖 정자나무처럼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밀고 당기는 길을 간다. 하얀 깃털을 세워 반색하기도 하고 굽은 골목을 벗어나면 소리소리 여울지기도 한다.

지나온 길을 거슬러 본다. 저쯤의 높이라면 세상 사람들 보라고 삼지창을 던지고도 싶겠다. 한 손 짚고 너울너울 재주 부리고도 싶겠다. 근사한 선글라스 끼고 내려다보고도 싶겠다. 피보다 진한 인연을 들이키고도 싶겠다. 하늘의 번지점프를 받아줄 수도 있겠다. 저쯤의 높이라면 흥건한 노을에 코 박고 몇 번이나 취했을까. 취한 가슴엔 푸른 하늘과 붉은 지평선이 아득하기만 했겠다. 몸 통째로 맡겼던 허공의 속내는 웅숭깊기도 했겠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몸을 입은 나의 편협한 생각일 뿐 강물은 여전히 면벽 수행하는 수도자처럼 뒤돌아보는 법 없이 낮은 곳으로만 흐르고 있다.

엄청 큰 그리움이 망망대해와 마주하자 하늘이 기다렸다는 듯 비를 주신다. 세상의 기억들이 싹트면서 따뜻해진다. 순간 천둥번개가 지나간다. 첫사랑 같은 가로등이 켜지고, 세상의 아흔아홉칸 구들마다 따뜻하게 두근거린다. 나는 양다리를 걸치고 저쪽 세상의 그리움에 넝쿨 올린다. 그늘로 덮인 부분이야 노는 손을 들고 꽃을 피워 반짝일 수도 있었겠다.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바다가 조금 서두는 듯 날이 저물고 있다. 오는 졸음 연신 쫓는 건지 물고기들이 바다의 해먹 위에 흔들리며 강물의 수고를 등 두드려주고 있다. 그리워하는 일은 먼 길 달려온 강물에게 바다가 가슴을 열어 젖먹이는 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