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

지금은 태반이 까무룩 사라졌지만 어쩌다 운 좋게 남아있는 산골마을의 다랑치논은 우리의 그리움입니다. 층층시하로 어우러져 옆집, 앞집  떡접시를 돌리며 피붙이처럼 살았던 지난 날 우리들의 가슴 시린 이야기들이 도란거리는 것 같습니다. 어느 하나도 닮지 않은 그 다랑치논들을 이어 놓으면 세상의 밥상을 덮고도 남을 거대한 조각보가 완성될 것입니다. 그 알록달록한 이야기들이 김종 시인의 글로, 그림으로 독자 여러분에게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달이 솟는다. 강물 수반에 담아낸 달은 방금 칫솔질한 치아처럼 곱게 빛난다. 내 마음의 갈피에 깊어가던 수심 한 자락이 달빛 받아 반짝 웃는다. 달빛은 어느새 머리 위에도, 겨드랑이, 배꼽자리, 허벅지, 장딴지,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아니 두 손을 힘껏 뻗어도 닿지 못하는 어깨 뒤편의 들판까지 아니 비치는 곳이 없다.
 
바야흐로 달에 든 세상은 공평해진다. 불심할 만큼 들이킨 달빛의 취기에 시야가 몽롱하다. 달을 건지려던 이태백처럼 풍덩, 월인천강에 뛰어 들어볼까나? 웅덩이에 몰린 물고기처럼 강물의 핏줄마다 달들이 구물거린다. 저 많은 달들을 어느메에 입주시켜야 하나? 그래, 그랬었지. 저 너른 하늘을 비워두고 나는 무얼 고민만 하고 있나. 하늘의 적막 위에 강물 한 줄기씩 그려 넣는다.
 
내 필력으로는 어림없을 만큼 내 기진맥진으로는 도달할 수 없을 만큼 넓은 하늘이 내려오시고, 허리로 웃으시고 강물로 흐르시며 천국의 꽃밭 같은 감격을 견디고 있다.

노래를 부를까. 한 아름 꽃을 바칠까. 술 한 상 거하게 차려낼까. 아들네 딸네 찾아다니는 바람 같은 노모의 세월 위에 아무래도 좋다는 듯 달은 웃고 있다.
 
나이든 달 하나씩 품어주며 굽이굽이 흘러가는 천강(千江)의 너름새를 넋을 놓고 바라본다. 목마른 달우물 어느 한 곳 빠짐없이 들러 가는 저 강물들의 발자국이 보살행이다. 마음을 비우고 바라보는 월인천강은 지극하다. 팔월의 불볕에 목 축이는 소리만큼 반가운 소리 또 있으랴. 다 이루었다는 말, 어디선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