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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에 먼 길을 가야 하리라. 삶의 고갯길 저 넘어….”
“그동안 나는 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다.” 작가 최인호가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낸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은 소설가 최인호가 산문집 《최인호의 인생》을 출간했다. 2008년 5월 암이 발생, 첫 수술을 받고 난 이후에 쓴 작품들을 오롯이 담고
있다. 지난 5년간의 투병 기록이자 ‘끝’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된 삶의 진실을 담은 작가만의 일기다.
책의 1부는 천주교 서울 대교구 주보에 5개월간 연재했던 글을 담았고, 2부는 암 투병 이후 쓴 9편의 글을 연작소설 형식으로 실었다.
이 책에는 생의 그 어떤 때보다 치열했던 최인호의 지난 5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육신의 쇠락보다 문학적 죽음 앞에서 더욱
아파하고 좌절했으나, 고통을 신이 내려준 선물로 받아들이고 영혼의 재생을 경험하며 감사함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이,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가운데에도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암에 걸리기 전까지 수술대에 누운 것은 포경수술을 할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꼽을 정도로 건강했다는 최인호는 투병 이후 많은 것을 새로 보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환자로 병원을 출입하게 되니
아아, 세상에는 참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글쟁이로서 지금까지 뭔가 아는 척 떠들고 글을 쓰고 도통한 척
폼을 잡았지만 한갓 공염불을 외우는 앵무새에 불과 했구나”라고.
작가는 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이렇게 힘을 보탠다.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를 죽일 병은 없습니다.… 우리를 죽이는 것은 육체를 강한 무기로
삼고 있는 악입니다. 절망, 쾌락, 폭력, 중독, 부패, 전쟁, 탐욕, 거짓과 같은 어둠이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한꺼번에 죽이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최인호라는 한 사람이 깊은 좌절에 빠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통을 이겨낸 사람은 다시 세상에 태어나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순수한 영혼을 닮았다. 바쁜 일상에 짓눌리고 세상의 명성에 도취되었던 지난 시간을 뒤로한 그 새로운 삶은, 이전에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하고 이전에 깨닫지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한다. 최인호 역시 세상을 향한 새로운 걸음을 내딛으며 꽃을 발견하고 계절을
느끼고 아낙들의 순수함을 본다. 그리고 나의 기쁨은 누군가의 슬픔에 빚을 지고 있으며, 나의 아픔으로 인해 누군가의 건강이 회복되리라는 세계의
질서와 이치에 눈을 뜬다. 언젠가 작가는 자신의 투병 생활을 ‘고통의 축제’라고 표현했다. ‘고통’과 ‘축제’라는 이 역설적인 조합은, 사람의
고통을 통해 삶의 희열에, 인생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지난 시간이 깨우쳐준 깨달음의 표현일 것이다.
자신이 끝임 없이 기도를 통해 애원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 주님의 은총을 깨닫지 못하고 엎드려 찬양할 줄 모르는 정신적
나환자라 칭하기도 하고, 고통스런 항암치료를 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유일한 위로가 오전 10시 30분에 성모병원 성당에서 열리는 미사 참례와
거의 매일 병실로 와준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영성체였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고통을 신이 내려준 선물로 받아들이고 영혼의 재생을 경험하며 감사함에 이르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고통을 통해 삶의 희열에, 인생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해 준다. 작가는 고통의 시간을 함께 했던 뜻 깊은 인연들도 기억했다. 이태석 신부와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이다. 병색이 완연한 몸으로도 최인호에게 용기를 심어주며 격려했던 이 신부의 단호한 눈빛, 김 추기경의 입술에 번져 있던 미소와 생전의
인연을 떠올리며 울었던 일을 고백한다. 카톨릭 신자이면서도 불교에 심취했던 그는 법정 스님의 입적 후 길상사로 문상을 가던 날의 상념도
들려준다.
그는 “글들이 종교적이어서 보편적인 것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다”며 “작가는 어차피 그때그때 마음에 담고 있는
생각들을 쏟아내기 마련”이라고 했다.
육체적 고통의 극한을 체험하고, 그 끝자락에서 새로운 삶의 모습을 경험한 작가의 눈은 더 따뜻해지고 깊어졌다. 삶에 대한 마음가짐은
더하다.
“생(生)은 신이 내린 명령(命令), 그래서 생명(生命)‘이라는 그의 말이 스며들듯 다가오는 이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