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자 오세철 교수의 술자리 원칙을 통해본
학문, 예술, 혁명의 원칙“

연세대 경영대학 오세철 명예교수가 고희를 기념하여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오 교수가 술, 학문, 예술, 혁명의 네 가지 주제와 어떻게 만나 씨름해 왔는가를 솔직하게 되돌아본 책이다. 그 사중주 속에서 오 교수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다시 그들이 오 교수와의 만남을 되짚어 보는 글의 묶음이다. 오 교수는 책에서 자신의 학문·예술·혁명, 그 속에서 술과 함께 만난 사람들이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그리고는 언급한 사람들에게 ‘오세철을 말한다’라는 제목으로 원고를 청탁해 실었다. 찬양일색의 의례적인 글이 실린 건 아니다. 털어놓은 속내를 거르지 않고 모두 담았다.

역사학자 최규진은 노골적으로 흉을 본다. “오 선생은 주사가 있다. 물론 하찮은 개인사를 늘어놓으며 시간을 축내는 일은 없다. 우리네 삶과 조직을 이야기하시는 것을 무척 좋아 하신다. 그래도 그 분은 술자리에서 너무 자주 질퍽거린다. 못내 헤어지기 싫은 사람들을 붙잡고 늘어지기도 하신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는 “오 선생의 건배(원 샷) 제안은 악명이 높지만 그의 과음은 경계를 벗어난 술 마시기”라며 오 선생의 잦은 과음, 그리고 술자리에 동석한 사람들을 향해 그의 ‘원 샷’ 제안은 함께 혁명하자는 외침이 아닐까 싶다“고 말한다.

오 교수는 이 책에서 “술이 없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까”라고 말한다. “오래 전부터 나는 마르크스주의자, 사회주의자를 자임했고, 자연스럽게 투쟁과 혁명의 주체인 노동자들과 만나게 됐다. 만일 내가 술도 못 먹고 거칠고 질펀한 뒤풀이 자리도 못하고 노동자들과의 관계가 이어지지 못했다면 나는 평범한 ‘진보적’인 학자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이 아닌 수차례에 걸친 뒤풀이와 술자리를 같이 하고 더 진솔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 동지들은 먹물의 벽을 깨고 나를 인간으로, 동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우리는 물질인 술로 만나 선입견과 편견, 하찮은 지식과 굴절된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 술의 힘이다.”라고.

오 교수는 술을 마시는데 다섯 가지 원칙이 있다. 맑은 술과 탁한 술, 사람과 안주를 구분하지 않고(청탁불문), 거리와 주제의 멀고 가까움을 묻지 않고(원근불문), 밤낮을 가리지 않고(주야불문), 지위와 위치를 가리지 않으며(고저물문), 삶과 죽음을 생각지 않는다(생사불문). 그 원칙은 그의 학문·예술·혁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오 교수는 이 책에서 건강 비결의 하나로 ‘붉은 혁명의 비타민C’를 소개한다. 본래 약을 먹어본 적이 없지만 어느 날 서울대 이왕재 교수가 “비타민C는 위장에 좋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술꾼으로서 “무릎을 쳤다”고 한다. 오 교수는 늘 주머니에 빨간색의 비타민C 알약을 갖고 다닌다. 하루 세끼 여섯 알은 기본이고 술을 먹는 날은 차수에 다라 두 알씩 추가해서 먹는다. 3차까지 가면 12알을 먹는 셈이다. ‘동지’들의 건강을 우려해 백 명이 넘는 수련회회를 가더라도 인원수만큼의 비타민C를 준비해 나눠준다. 의심이 많은 운동권들은 처음에 비타민C를 권하는 오 교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했다. 그러나 10년 넘게 비타민C의 ‘생체실험’ 대상이 된 오 교수의 건강상태를 보고는 상당수가 복용 대열에 들어섰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저자가 살아온 길을 반추하며 술, 학문, 예술, 혁명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인사를 중심으로 하지만 저자가 본 운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제2부는 술, 학문, 예술, 혁명 운동 속에서 만난 동지들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한 가지 영역에서의 만남을 제외 하지만 실제 이름을 쓰고 있다. 제3부는 제2부에서 밝힌 동지들에게 저자가 쓴 내용들을 보내서 그들이 저자와의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하는지를 알아보는 과정이다.

저자 오세철은 “자서전을 언제쯤 쓸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일흔이면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아직 건강에 큰 문제가 없으니 앞으로 십년 더 열심히 학문과 예술과 혁명 운동에 헌신하다가, 팔순이 돼서 살아온 과정에 대한 기록을 남기겠다고 작정했다. 그렇다면 그런 글을 쓰기 전에 지금쯤 중간 점검을 하는 것이 순서라고 보았다. 「술, 학문, 예술, 혁명의 사중주」를 연주할  만큼 여러 경험과 만남이 있었고, 진솔하게 그런 이야기를 엮어내 보이고 싶었다.”며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머리글에서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