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선 어김없이 또 다른 세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세상의 끝! 여행과 모험을 향한 인간의 욕구를 이보다 더 강렬하게 자극하는 단어는 달리 없을 것이다. 《세상 끝의 풍경들》은 바로 그 머나먼 곳들에 대한 이야기다. ‘남극의 눈물’ 촬영 감독의 아주 특별한 여행기 《세상 끝의 풍경들》.

MBC 다큐멘터리 ‘빙하’ ‘아마존의 눈물’ 등을 찍은 촬영 감독 김만태는 이 책에서 편당 5-6개월씩 걸린 촬영기간 동안 현지에서 썼던 일기를 바탕으로 ‘핀댈문도(Fin del Mundo. 세상의 끝을 뜻하는 스페인어)’라는 부제가 붙은 흥미로운 여행기를 담아냈다.

제목에 담긴 의미는 중층적이다. 남극과 북극이 지리적인 ‘핀댈문도’라면 아마존은 인류학적인 ‘핀댈문도’다. 공간적 거리보다 훨씬 까마득한 시간적 거리가 가로놓인 그곳을 글쓴이는 ‘문명의 바깥’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2009년 12월 18일부터 2010년 2월 5일까지 인기리에 방영된 ‘아마존의 눈물’과 2011년 말부터 방영된 ‘남극의 눈물’에 얽힌 숨은 그림, 뒷담화가 담겨 있다.

책의 내용은 ‘방송 에피소드’나  후일담과는 거리가 멀다. 글쓴이는 시종일과 여행자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이야기 한다. 세상 끝에 다다른 나그네의 쓸쓸함과 처연함이 책 곳곳에서 배경음악처럼 흐른다. 맨눈으로 바라본 남극의 야생동물과 아마존 인디오와 북극의 이누이트 프레임에 갇힌 화면들과는 사뭇 다른 생생함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남극의 한 가운데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온천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디셉션 섬(Deception Island)에 가면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야외온천이 있다.”(본문 90쪽) “꼬마들이 몰려가는 뒤로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앉아 있는 야노마미 여인 둘이 눈에 들어온다. 놀랍게도 그들은 마무 것도 입지 않은 채 태연하게 가슴을 드러내고 우릴 올려다본다. 아랫도리의 주요한 부분만 겨우 손바닥만 한 천으로 가렸는데, 그 안도 역시 아무것도 입질 않아서 뭔가를 가리려고 하는 의도 자체가 무색할 지경이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잠시 당황했지만 올려다보며 수줍게 미소 짓는 그들의 얼굴을 보니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든다.”(본문 137쪽)

손바닥만 한 천으로 아랫도리의 중요한 부위는 가렸으되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을 확인한 저자의 눈은 수컷으로서의 본능이었고, 눈을 어디에 둬야 할 정도로 당황해하며 미안한 마음의 들었던 건 절제된 지성을 바탕으로 한 이성의 표출이 아닐까 생각된다. 김만태의 글과 사진으로 엮은 《세상 끝의 풍경들》을 읽게 되면 한편의 다큐멘터리에 저런 애환과 엄청난 수고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남극과 북극 아마존에 감칠맛 나게 스며있는 풍광과 사람 사는 모습, 책자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촬영 기자들의 숨 가쁜 발놀림과 영혼을 느끼게 되리라 기대된다.

물론 촬영 감독으로서 이점은 고스란히 살렸다. 남극해 펭귄들과의 조우, 아마존 분홍돌고래와의 유영, 야노마미 전사들과의 만남, 북극 이누이트 전통축제 등 직접 체험한 모든 것을 글과 생생한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직접 체험하고 글로 옮긴다는 것은 다른 여행서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스케일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연상 시키는 남다른 사진들 또한 글쓴이의 특별한 여정을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다큐멘터리 감독답게 저자의 문체는 담백하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도, 아무리 특별한 상황 앞에서도 절대 장광설을 늘어놓지 않았다. 영상이 그렇듯 활자의 세계에서도 절제된 표현이 훨씬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 끝의 창’이라는 프롤로그로 시작하여 ‘세상 끝의 세상’이라는 에필로그로 책을 마무리한 저자는 “세상의 끝에선 또 다른 세상이 시작되고 있었다”하고 말한다. 그리고 맨 끝 페이지에 또 다시 어디론가 떠날 것을 예감한다. 지금은 그 예감대로 멀리 아프리카의 깊숙한 내륙에서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2012년 말에 방송될 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