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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현실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사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최인호는 이 소설을 통해 현대소설로의 회귀를 선언했다.
또한 침샘암이라는 희귀병과 투병하며 두 달 만에 써낸, 외부의 청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아닌 스스로의 열망으로 쓴 최초의 전작 장편소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최인호는 작가의 말에서 “〈유림〉(2006년)을 끝낸 후 다시는 대하 역사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마라톤 주행에 익숙해진 문장
스타일을 단거리 호흡법으로 바꾸기 위해 숨 고르기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덜컥 암에 걸리고 말았다. 3년 가까이 소설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무장해제의 포로 신세였다. 그러나 3년간의 백기투항이 장거리 주법의 호흡을 앗아가는 역전의 기회를 제공하였다”고 밝혔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뒤틀리고 붕괴된 일상 속에 내몰린 주인공 K의 사흘을 그렸다. 작품의 얼개는 주인공
K가 이틀에 걸쳐 겪는 불가사의한 일을 시간대별로 정리해놓았다. 구성이 마치 호접몽 같아 몽환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범적인 가장으로서, 의사 친구와 가깝게 지내며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스스로의 도덕적 결함을 견디지
못하는 제도적 인간으로서, 그리고 주일마다 미사에 반드시 참석하는 견실한 신앙인으로서 K는 생의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토요일 아침, 눈을 뜬 K는 미세한 변화에서 일상이 조작되고 현실에 균열이 생기며, 그로 인해 환상과 실재의 공간을 오가면서
의심을 품는다. 그리고 급기야 처음에는 자신의 행세를 했을 것이라 믿었던 또 다른 ‘K'에게 순순히 ’참 자아‘의 자리를 내주고 만다. 자신이
쌓아온 견고한 삶이 생의 진짜 모습은 아니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생은 때때로 허물어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입기도 하는
것. 자신이 만든 견고한 삶은 하나의 무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거기에 ’진짜 삶‘은 없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 K는 자신의 배역과 역할에 충실한 동안 정작 자신의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보통사람의 모습을 상징한다. 도덕적이고
합법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세상에 떳떳하다는 것은, 인간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제도에 순응함으로써 갖게 된
스스로의 착각일 뿐이었다. 그 단단할 것 같은 일상에 금이 가면서 K는 자신을 의심한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그는 자신의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된 또 다른 삶을 목격하는 것이다.
이렇듯 이 책은 망각되고 유실된 기억 속의 진실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모험과 추적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주인공 K는 사흘 동안에 일어난
비현실적인 사건 때문에 변하지만, 오히려 일상과의 이별을 통해 본래의 자신을 회복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이 믿고 있던 모든 실재(實在)에 배신을
당한 K가 또 다른 실재를 찾아 방황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인이 맺고 있는 수많은 ‘관계의 고리’의 부조리함을 묘파한다.
최인호는 고통스런 암 투병 과정에서 매순간 ‘죽음’을 묵상(黙想)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세상과 관계 맺었던 모든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그 의문은 이 소설《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로 이어졌다. 최인호는 “암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지식과 내가 보는 모든 사물들과
내가 듣는 모든 소리와 내가 느끼는 모든 감각과 내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하느님과 진리라고 생각했던 모든 학문이 실은 거짓이며, 겉으로 꾸미는
우상이며, 성 바오르의 말처럼 사라져가는 환상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헛꽃임을 깨우쳐 주었다”고 토로 한다.
두 달 동안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손톱과 발톱이 빠져나갔지만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원고지에 만년필로 쓰는 수작업으로 두 달 만에
완성했다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투병 중에도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력으로 완성된 작품이라 누구보다 이 작품이 여태까지의 소설 중에서 가장
으뜸인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최인호는 말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