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생애 최초 전작 장편소설!

1980년대 중반 서울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배경으로 한 황석영의 신작 《낯익은 세상》. ‘강남몽’(2010,7,9일자 투데이 추천도서)의 표절시비 이후 1년여 간 칩거했던 황석영이 신작 소설을 출간했다.

전작 ‘강남몽’에서 강남 개발사(史)를 그려 부를 향한 인간의 욕망과 한국 자본주의 근대화 과정을 짚은 작가는, 이번 발표한 《낯익은 세상》에서는 보다 보편적인 자본주의와 현대적인 삶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 했다.

황석영은 한국 현대문학계에서 리얼리즘의 대표작가로 꼽힌다. 한국 작가로서는 드물게 노동과 생산의 문제 부와 빈곤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이다. 따라서 《낯익은 세상》에서 다루어지는 주제 또한 자본주의의 각종 모순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서 독자들에게 현 자본주의 시대의 운명을 말한다.

소설의 배경무대는 쓰레기 매립지인 꽃섬이다. 꽃섬은 사람이건 물건이건 모두 쓸데없는 것들이 모여든 곳으로 주소도 번지수도 없는 땅이다. 

책은 급속한 도시화 속에서 갈 곳도 없고, 할 것도 없던 30, 40년 전 도시 빈민층의 모습을 그렸다. 소설은 ‘딱부리’라는 별명을 지닌 열네 살 소년이 엄마를 따라 이 아이러니한 이름의 꽃섬에 들어와 겪는 일을 그렸다. 작가는 소년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쓰레기 매립지의 낯선 풍경을 디테일(detail)까지 생생하게 묘사해 독자가 일상에서 외면하고자 한 자본주의 이면을 들이민다. 소설은 또 딱부리의 눈을 통해 이곳이 도시문명에서 얼마나 고립된 낯선 세상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욕망과 소비와 폐기가 반복하는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하고 낯익은 것인지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아울러 소설은 이야기의 다른 한 축으로 ‘김서방네 식구들’로 지칭되는 도깨비 정영들과 이들이 살던 옛 꽃섬 풍경을 그려 현대인이 잃어버린 어떤 세계를 돌이켜 보게 한다.

작가는 이 책에서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가 잊고 사는 ‘낯익은 세상’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인간이 생산하고 소비한 마지막 찌꺼기를 서슴없이 배출하는 곳,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아주 익숙한 풍경 속으로. 하지만 작가가 쓰레기더미 속에서 주목한 것은 ‘밑바닥 인생이 얼마나 풍부한가’이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지만 공동체의 축제처럼 행하는 식사,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자연의 질서에 대한 샤머니즘적 믿음까지, 황석영은 가장 빈곤한 것 속에 가장 풍요로운 것이 있다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독자에게 건네며 동화적인 이야기 구조로 ‘낯익은 세상’을 그리고 있다.

특히 《낯익은 세상》의 가장 큰 매력은 아예 몰랐거나 잊혀졌던 난지도의 옛날 풍경을 세밀하게 끄집어낸 점이다. 그러나 작가는 주제와 이야기의 보편성을 강조하기 위해 난지도라는 공간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옛 이름인 ‘꽃섬’으로 쓰고 시간적 배경 역시 80년대 중반임을 암시하면서도 정확히 밝혀놓지 않았다.

《낯익은 세상》은 꽃섬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보면 소비지향적인 문명의 이면을 포착한 소설이다. 그런데 주인공 딱부리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은 최하층 사회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한 소년의 성장소설이 되기도 한다. 작가 황석영은 소설의 무대로 삼은 쓰레기장을, 오로지 동물적인 생존만이 지배하는 비참한 막장으로 그리지 않는다. 물론 거기에는 ‘지상의 삶’과 비교 할 수조차 없이 비루한 현실이 존재한다. 아무도 ‘정을 주지 않았기에’ 폐기된 인간들도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제각기의 연유로 섬에까지 흘러들어온 그곳의 사람들은 가까이 할 수 없는 괴물로서만 그려지지 않는다. 한 소년의 때 묻지 않은 눈을 빌려, 작가는 그들 역시 고귀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 지금 이곳이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그 세상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 속의 풍경은 세계 어느 도시의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낯익은 세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