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봄 눈처럼 하얗고 한겨울 비처럼 시린 선승의 수행일기

“《선방일기》는 어느 해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 오대산 상원사에서 있었던 동안거(冬安居)라고 부르는 선방의 수행일과를 기록한 책이다. 세속과 다른 그 세계는 접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라서 신선하였고, 의외로 인간적이었다. 김장과 매주 쑤기로 겨울나는 채비를 하고, 감자를 훔쳐내 구워먹는다든가, 만두를 빚으며 온갖 모양을 흉내 내고 장난친다든가 하는 훈훈한 웃음이 배어 나오게 하는 에피소드로 이야기가 풍성했다.

출가해 세속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이면으로 들어가는 매우 심각한 결단인데, 그 안의 선방 수행은 모든 것으로부터 차단된 채 견뎌내야 하는 혹독한 구도의 과정이다. 몸의 습속과 모든 기억과 싸워 이겨내는 이 벼랑끝같이 험난하고 아슬아슬한 과정의 긴장을 풀어주고 이어주는 선방의 인간적인 풍속, 인간 갈등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 강금실 전법무부장관의 추천사 중에서

《선방일기》는 1973년 월간 ‘신동아’에 연재되었던 23편의 에피소드를 모아서 책으로 엮은 것이다. 종교나 연령을 초월한 수많은 사람들이 서재에 잊히지 않는 책으로 남아 있는 《선방일기》는 이미 1933년과 2000년에 각각 단행본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이번 개정판에는 독자들이 좀 더 선방의 분위기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당시 선방의 모습을 고증한 서정적인 그림과 자세한 각주를 달아 새롭게 단장했다.

이 책은 저자 지허 스님이 오대산 상원사 선방에서 동안거(冬安居)를 난 이야기다. 안거(安居)란 선원에서 수행자들이 산문 밖 출입을 일절 삼가고 참선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안거가 시작되면 모든 선원 대중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죽비를 신호로 간단히 3배의 예를 올린 뒤 화두를 들고 선(禪)에 들어간다. 선원에선 때 맞춰 음식을 만드는 공양(供養)시간과 함께 노동하는 운력(運力)시간, 그리고 선원주변을 걸으면서 선에 드는 포행시간 외에는 선원의 규칙에 따라 저녁 9시나 10시 또는 11시까지 좌선한 채 화두삼매에 여념이 없다. 《선방일기》는 이런 스님들의 일상을 치열하게 묘사한 선방의 일기다.

하지만 《선방일기》의 매력은 여기에만 있지 않다. 담백한 문장으로 수행 이면의 이야기들을 살갑게 풀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결핵에 신음하던 스님이 바랑을 챙기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내복을 그 스님의 바랑에 챙겨주며 가슴 아파하는 수행자의 모습, 수행에서 낙오해 뒷방에서 부표처럼 떠도는 수행자의 모습, 모든 욕구를 떠난 곳으로 가고자 하는 수행자들이 식욕을 견디지 못해 바둥대는 모습 등 선방의 이면사까지 잔잔히 풀어내 읽는 맛과 함께 감동을 전해준다.

《선방일기》는 이미 불교계에서는 법정 스님의 책들과 함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와 있던 책이다. 한 때 절판 되었다가 이번에 새로운 모습으로 보다 많은 이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주게 되었다. 저저인 지허 스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정확한 출가와 입적년도도 없으며 출가 전의 활동상과 출가후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명확한 사실이 없다. 단 이글이 1973년 월간 신동아에 연재되었다는 것과, 출가 전 서울대를 졸업했다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화두, 선문답 등으로 대변되는 고승들의 이야기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책 또한 중간 중간 나오는 화두에 대한 논쟁은 어떠한 철학적 논쟁보다 심오하고 치열하다. 하지만 자신의 잘남을 과시하기 위한 현학적 태도도 아니며 중생을 주제한다는 오만함도 아니다. 그저, 나 또한 중생의 일원으로서 다 같이 해탈의 길을 걷고자 하는 자각이며 격려이다. 이 책이 아름다운 이유다.

서걱서걱한 나뭇잎을 밟으며 시작한 《선방일기》는 소복이 쌓인 하얀 눈을 맞으며 맺음을 한다. 기나긴 동안거를 끝낸 스님들의 발길에서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한마디, ‘성불하시오’라는 말이 오랫동안 가슴깊이 울려 퍼지는 책이다.

매우 솔직담백하면서도 구도자의 깊은 사색과 예리한 성찰이 돋보이는 수행일기인 이 책을  꼭 불자가 아니라도 새겨 읽고,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의 도량에서 청정한 눈빛을 잃지 않도록 매일의 ‘선방일기’를 써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