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여 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말하는…

인간은 누구나 죽음의 문을 피할 수 없다. 죽음이 있다는 것은 이 땅에서의 삶에 끝이 있다는 것이고, 누구에게나 ‘마지막’이 있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오는 것은 순서대로 오지만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는 말은 이러한 ‘마지막’이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따라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마지막을 잘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인,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17가지》는 2010년 1월 22일자 본지 추천도서였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의 한국판인 격이다. 이 책은 가족에 목숨을 걸고, 정에 약한 한국인들의 슬프지만 ‘여한 없는 마지막’을 담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가 죽음을 앞둔 이들의 ‘후회’를 보편적으로 보여주었다면, 《한국인,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17가지》는 매일 고통스런 항암치료를 받고, 언제 죽음이 닥쳐올지 모를 다급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마무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우리 이야기’다.

사람이 태어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지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지 또 어떻게 생을 마감할지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없는 빈자리 또한 가슴 뼈저리게 아플 것이다. 말기암 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지 호스피스 전문이의 눈에 비추어진 그들의 삶과 죽음을 읽을 수 있다.

암 선고 후 마라톤에 도전해 아픔과 좌절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다독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던 환자의 이야기, 노숙생활을 전전하다가 피부암에 걸린 전과자가 부모를 만나 마지막을 같이 하는 환자, 암에 걸렸으면서도 암환자들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 끝까지 미사를 집전했던 외국인 신부님, 자식의 부제서품을 보고자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캄보디아로 달려가는 어머니의 간절함, 죽음을 앞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효심 등등.

17명의 죽음과 죽음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랑 이야기는 눈물겹다.

수많은 사람들의 마지막을 지켜본 저자는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지 못했다 해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인생이라는 드라마가 해피엔딩이 될지 새드엔딩이 될지 결정된다 말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람들의 행복 또한 그리 거창하거나 화려한 것이 아니다. 어제보다 좀 더 수월하게 숨 쉬고, 못 먹었던 보리차 한 모금을 달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희망과 행복을 발견한다. 하루가 아쉬운 만큼 그 하루를 더욱 사랑하며 추억한다.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도 기쁨으로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게 된다.

‘죽기 전에…’라는 문구의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 책은 특이하게도 호스피스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그간 저자가 호스피스 의사로 재직하면서 생의 마지막을 앞둔 암 투병인들과의 애틋한 관계를 중심으로 우리들이 그냥 보내는 이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고 그들이 왜 죽음을 앞두고서야 행복을 찾게 되었는지 가슴어린 투병기를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에 삶이 있는 법, 언젠가 마지막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저자인 염창환 의사는 늘 환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킨다 해서 ‘지킬박사’라는 따뜻한 별명을 가지고 있다. 암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환자들의 마지막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고 행복한 죽음을 맛볼 수 있게 하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절감하게 된다.

저자는 죽음을 앞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에서 마지막을 행복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과정인지를 강조하고 있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