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은 별 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임성훈 후보의 나주시장 당선이후 지금까지 3개월을 지켜보는 동안 줄곧 소설 한편이 머릿속에 맴돈다. 이번 주 추천도서인 윤흥길의 1983작 장편소설 〈완장〉이다. 이 책은 이미 20여 년 전에 읽었고, 몇 년 전에는 칼럼을 통해 ‘나주완장’의 폐해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다시 ‘완장’을 두른 이 책의 주인공 임종술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모양과 크기가 변했을 뿐 나주권력의 부침에 따라 지역사회에 여전히 ‘완장’이 등장하고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완장》은 무지렁이 시골 청년이 ‘보잘 것 없지만 센’ 권력을 얻으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권력과 폭력의 모습을 추적해 가는 소설이다.

작품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땅 투기로 돈푼깨나 만지면서 기업가로 변신한 졸부 최 사장이 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고, 저수지 관리를 동네 건달 임종술에게 맡긴다.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가 새겨진 감시원 완장을 찬 종술은 완장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날로 안하무인, 마을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발버둥 친다.

완장을 팔에 두른 종술의 위세와 행패는 점점 더 심해져, 오죽하면 동네 후배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정도다. “소문으로 듣기에는 더러 들었어도 성님 그 완장 유세가 이렇게 대단헌 줄은 미처 몰랐소!” 종술에게 완장의 쓰임새는 권력욕을 충족시키는 데에만 있지는 않았다. 읍내 술집 작부 부월이를 공략하는 데에도 완장을 앞세웠을 정도다.

종술의 그 하빠리 같은 권력은 낚시질을 하는 도시의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기도 하고, 고기를 잡던 초등학교 동창부자를 폭행하기도 한다. 완장의 힘에 빠진 종술은 면소재지가 있는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두르고 활보한다.

완장을 두른 종술의 허황함은 저수지로 나들이 나온 최 사장 일행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으로 극에 달한다. 결국 그 사건으로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나지만, 종술은 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수지 ‘감독’하는 일에 여념이 없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가 가뭄 해소책으로 저수지의 물을 빼 전답에 쏟아 부을 위기에 직면한다. 물을 빼야 한다는 수리조합 직원과 경찰에게까지 행패를 부려보지만 결국 경찰에 쫓기는 처지가 되고, 완장의 허황함을 일깨워주는 부월이와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소용들이 치며 물이 빠지는 저수지 수면 위에 종술이 두르고 다니던 완장이 떠다닌다. 그 완장을 종술의 어머니인 운암댁이 조용히 지켜보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평론가 김병익씨는 이 작품은 “권력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심리적 반응과 효과를 요구해왔던가 하는 보다 심각하고 진지한 반성들을 이 하잘것없는 완장에 얽힌 숱한 사건들을 통해 제기”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사람들은 우리사회가 아직도 ‘완장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권력의 피폐한 모습을 해학과 풍자의 거울로 꿰뚫어 볼 줄 알았던 작가 윤흥길. 그는 이미 수 십 년 전 소설〈완장〉을 통해 우리사회의 크고 작은 자리와 권력의 덧없음을 해학성의 두루뭉실한 그릇에 담아 원천적으로 묻고 있었던 것이다.

‘완장의 폐해‘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있었다. 문제는 완장들은 한때 거들먹거리는 데 그치지 않고, 필시 ’한몫‘ 챙기려할 것이기 때문에 부정부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벌써부터 지역사회에 임 시장 당선과 더불어 새로운 ’완장‘이 등장했다는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손가락은 촌철(寸鐵)인데 입으로는 살인(殺人)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만은, 모 ’궐밖정승‘을 비롯해 특정 공무원, 특정 시의원 등의 이름이 ’新(신)완장‘으로 공공연하게 거명되고 있다. 인사개입과 관급공사개입 등 구체적인 사례까지 열거되면서…. 이게 사실이라면, 임 시장은 이러한 ‘완장’들을 멀리 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이고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준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특히 나주의 ‘新(신)완장’으로 거론되는 이들은 이번 주 추천도서 《완장》을 꼭 읽어봤으면 한다. 그리고 부월이가 종술에게 던진 “완장은 별 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라는 이 한마디를 기억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