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과연 우리의 고난을 알고 있는가?”

《순교자》는 1964년 미국에서 발표한 영문소설(The Martyred)이다. 당시 현지의 반응은 뜨거워 발표되자마자 20주 연속 베스트셀러 기록을 세웠고, 뉴욕타임스는 ‘도스토옙스키와 알베르 까뮈의 문학세계가 보여준 위대한 도덕적, 심리적 전통을 잇는 작품’이라며 극찬했다. 그 후 이 작품은 한국어, 독일어, 불어 등 20여개 언어로 번역됐고 우리나라에서는 연극, 영화, 오페라로 각색되어 공연되기도 했다.

특히 김은국은 이 책 한 권으로 1967년 한국 작가 혹은 한국계 미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 현대문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문인들이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 그로부터 10년 후인 1970년대 중반 이후임을 감안하면 이 무렵 그가 얻은 문학적 명성이나 이 책의 작품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껏 여러 매체를 통한 책 광고를 접하면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다’라는 문구를 많이 봐 왔지만 그랬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을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순교자》에 그러한 문구는 없었지만, 충분히 그랬다.

《순교자》의 줄거리는 6·25 한국전쟁 당신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전해진다. 물론 허구로서의 소설이기 때문에 꼭 그대로 진행되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모델로 삼은 실제 주인공이 있었을 뿐 아니라, 흡사한 사건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남한이 평양을 탈환한 시점부터 전개된다. 정보장교‘이 대위’는 목사 실종사건을 알아보라는 정보처장 ‘장 대령’의 명령을 받고 조사하던 중 ‘신 목사’를 알게 된다. 신 목사는 살아남은 두 목사 중 한 명이다. 이 대위는 신 목사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지만 침묵만 킨다. 그러면서 진실을 얘기하라는 이 대위의 말에 ‘그들이 진실을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소?’라는 아리송한 말을 남긴다.

한편 평양의 교인들은 살아남은 신 목사가 빨갱이들의 스파이이고 다른 목사들을 팔아넘겼다고 생각하고, 처형된 12명의 목사들을 ‘순교자’라 떠받든다. 이는 교인들뿐만 아니라 평양에 남아 있었던 젊은 목사들도 마찬가지다. 허나 이는 진실이 아니었다. 후에 14명의 목사들을 고문하고 취조했던 인민군 소좌 한 명을 사로잡아 밝혀진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총살당한 12명 중에 스파이가 있었으며, 끝까지 기도를 하며 성스럽게 죽어갔을 거라는 교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들은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한마디로 정말 ‘개’같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신 목사는 고문에 굴복하지 않고 되려 고문하는 인민군 간부의 얼굴에 침을 뱉는 등 끝까지 성직자로서의 체신을 지켰지만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허나 교인들은 12명의 ‘순교자’들이 자신들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자신들의 희망과 미래를 위해 대신 죽었다고 생각을 한다. 마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그리스도처럼.

신 목사는 교인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기 위해, 자기를 희생한 것이다. 교인들이 그를 유다라고 부르며, 집을 부수고, 욕을 해도 끝내 사실을 숨겼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한 평양에서의 후퇴가 결정되고 이 대위도 후퇴 할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신목사가 찾아온다. 이 때 나눈 두 사람의 대화는 이 책의 핵심부이자 삶과 종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신 목사는 정작 자신은 믿지 않으면서,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 교인들에게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절망 앞에 한없이 나약한 인간들을 위해, 십자가를 질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순교자》는 출판사〈문학동네〉가 2010년 한국전쟁 발발 60주년과 故 김은국 작가의 타계 1주기를 동시에 기념하기 위해 한층 더 성숙해진 번역으로 재출간 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에 재번역·재 발간된 《순교자》는 지난날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경이로움을 독자로들 하여금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고 재평가할 좋은 기회라 하겠다.

늦었지만 고 김은국 교수의 명목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