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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초대석] 친일청산, 그대들만의 주홍글씨인가김 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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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호] 승인 2010.03.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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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종/시인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면서 유족과 관련인사들을 중심으로 이 사전이 민감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 사전의 발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서도 여러 면에서 신중했어야 한다는 등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에 본지 〈투데이 프리즘〉필자인 김종 시인의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주

 

〈풍경 둘〉

1910년 8월 22일은 한일합방 조약이 강제적으로 조인된 날이다. 양국 합방의 일은 외국에만 통고하고 국내에는 일주일 뒤인 8월 28일에야 발표하고 국호도 「대한제국」에서 「조선」으로 고치며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운영하던 조선조는 27대 519년 만에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우리 민족이 나라를 팔고 그 대가로 75명의 새로운 귀족이 생겨 모두 작위를 받고 (후작6, 백작3, 자작31, 남작 45등) 상금을 받았다.

“당시 정부의 고관으로써, 국록을 먹던 자로서 누구 한 사람 국가와 운명을 같이 한 사람이 없었으니, 너무나 쓸쓸한 망국이었다.”(『이야기한국사』p.438 )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여 목숨 걸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민중들의 함성은 감격과 흥분을 타고 전국에 퍼져갔다. 3?1운동의 참가인원은 200만을 넘었고 참집(參集) 회수는 1,500여회, 전국 218개 군 가운데 211개 군이 시위를 벌인, 문자 그대로 거족적인 운동이었다. 그 결과, 피검자수는 47,000여명, 사망자 수는 7,500여명, 부상자수는 16,000여명을 헤아렸음은 일제의 학살과 탄압이 어느 정도 가혹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민중들의 항일에 대해서는 일제치하에서의 생존을 거부하고‘적과는 한 치의 타협도 거절하는’순국(적극적인 항일 투쟁),‘2인 이상 모이면 독립에 대한 이야기였고, 대소 행사도 이면은 독립운동과 관련되었고, 기생, 걸인, 총독부의 한국인 관리까지도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배일사상을 가지지 않은 자가 없었다. (친일 주구(走狗)는 제외)(최영희 외『일제하의 민족운동사』pp47-59 참조).


〈우울한 전제〉
 
여기에서 주목하는 바는‘총독부의 한국인 관리까지’라는 부분이다. 생계 때문에 총독부 관리로 살아가지만 내심마저 일제에 동화되고 저들의 발전을 돕는 것은 아니었다. 표면은 순응한 척 잠잠하지만 속마음은 늘 활화산 같은 독립의 불씨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무망한 세월은 가고 미래의 시간은 불안하기만한 것, 그러나 어찌 저들에 대한 항일의지야 잠잘 수 있었겠는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며 성난 군중에게 쫓기던 한 여인을 단죄하지 않은 예수의 가르침을 떠올린다. 물론 군중 편을 들어 여인을 돌로 치라고 했다면 판단은 쉬웠을 터. 단죄는 순간의 통쾌함은 있을지 모르나 대양 같은 진실은 담아낼 수가 없다. 그 위급지경에서 군중들을 해산시키고 여인을 구한 예수는 성인의 반열을 넘어 신격(神格)을 얻었다.
 
함석헌 선생도『뜻으로 본 한국사』에서‘우리에게 해방은 1945년 8월 15일 새벽에 그야말로 도둑처럼 밀어 닥쳤다’고 썼다. 이광수 선생은 반민특위에서‘조선이 해방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기막힌 말이지만 현실이었다. 필자에게 그 시절이 주어진다면 과연 나는 어느 정도 떳떳할 수 있을 것인가? 실로 모골이 송연하다. 물론 조국이 백척간두임에 상황의 칼날에 맞서지 못하고 척추를 굽혀 머리를 숙인 일은 천추에 씻지 못할 민족배반의 죄악이다. 그러므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며 모택동의 말처럼‘풀잎도 바람 따라 눕는’, 민초들 모두가 영웅적 행동에 동참 할 수 없는 것이 세상사임을 어쩌랴.
                 

 <역사에서 본 친일>

역사라는 개념에 해당하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가(史家)는 희랍의 헤로도투스와 투기디데스이다. 이들 두 사람은 전쟁사를 기록함에 있어 한 사람은 역사를‘탐구(探究)적’측면에서 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하나의 중요한 의미(意味)’를 찾으려 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전쟁사를 전쟁이 발생한 원인을 규명하려 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두 사가(史家)는 사실과 사실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하고 그들이 살았던 당시의 현재적 문제와 연결시켰다.

 헤겔은‘역사라는 낱말은 객관적인 측면과 주관적인 측면을 종합하고 있는 것으로서 사건 자체를 의미하는 동시에 사건의 기술을 의미 한다’라고 적고 있다.

얼마 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파 청산을 위해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총 4,389명의 '친일혐의' 인사 중 문화예술인의 숫자가 당초 예정되었던 174명보다 11명이 준 163명을 발표하였다. 장르별로 보면 문학인이 40명, 음악·무용인이 43명, 영화인이 30명, 연극인이 27명, 미술인이 23명이다. 처음 발표된 문화 예술인 중에는  연구소 측의 일방적인 조사결과나 판단에 밀려 억울한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던 유족들이 법정소송 등으로 항의하거나 시인 정지용(鄭芝溶), 소설가 김정한(金廷漢)의 경우처럼 "친일적 성향을 보인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글이 한 편 있지만 자발적인 것으로 보기는 곤란하다"는 이유를 들어 명단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연구소 측은 "연구 인력이 부족하고, 조사비용이 과다하여 증거자료를 확보하는데 한계가 있었음"을 실토한 바 있다. 더불어 북한과 해외자료의 경우가 더 그렇다고 했다. 연구소 측은 또 일부 형평성을 잃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다수의 좌파인물이나 월북인사들이 수록돼 있고, 객관적 증거가 확보되고 기준에 부합하면 어떤 인물이라도 사전에 등재 한다"고 해명했다. 이 모두가 군색하기 짝이 없다.
 

 <친일은 원죄인가>

 영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주인공 한나 슈미츠가 아우슈비츠 학살범죄로 재판정에 서게 되었을 때의 진술에 기대면 수용소에 들어간 것이 본인의 선택이었느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그녀는 경비원을 뽑는다기에 들어갔을 뿐이라고 진술한다. 수용소 경비원으로 취직한 그녀는 폭격에도 유대인 수감자들을 좁은 공간 속에 가둔 채 통제했고 이 일이 참사로 이어졌다. 왜 풀어주지 않았느냐는 재판관의 물음에 그녀는 답한다.“온 마을이 불탔고 모두가 뛰쳐나오는 상황에서 수감자들을 쉽게 풀어줄 수가 없었어요. 우리가 수감자들을 책임져야 했으니까요.”

 나치전범재판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이 영화를 보면서 몇 가지 물음들과 마주하게 된다. 아우슈비츠에서 일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를 유죄라고 할 수 있나, 그녀의 행위가 의도적인 것이었는지 아닌지 그리 쉽게 판별할 수 있나, 당시엔 합법적인 행위에 대해 현재의 관점에서 판결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등의 물음이다.

 친일을 규명하여 역사를 청산하자는 현재의 시간부터 한일합방 때까지를 거슬러 가면 거의 10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당시에 이뤄진 친일 행위들에 대해 분별하고 판단하는 일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시각으로 과연 어느 정도 명확하고 객관적이며 또한 그런 판단이 가능할까. 복거일 씨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21세기 친일문제』는 친일행위를 판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친일행위는 정의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식민통치 시기의 어떤 행위가 친일행위로 비판되려면 그것은 불법적이고, 자발적이고, 조선인들에게 해로웠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을 때에만,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편향된 욕망속의 친일 >
 
그러나 흔히 친일행위로 규정되는 행위들은 대부분 위의 세 가지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실제로 지금은 난해한, 친일행위에 대한 개념을 적용해 친일파를 가려낸다는 것은 여러 사정들 때문에 훨씬 어렵다. 먼저 친일 행위를 했다고 비난받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작고했다. 따라서 자신이 처했던 상황과 이에 대한 판단을 밝힐 수 없고, 잘못된 비난에도 자신을 변호할 수가 없다. 또한 행위들이 일어난 뒤로 너무 긴 시간이 지나 증거들은 대부분 사라졌고, 증언을 얻기도 힘들다. 그래서 친일행적을 밝히려는 사람들은 주로 문헌, 신문과 같은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들은 후대 사람들이 선대 사람들의 삶을 재구성하고 평가하는 데 갖가지 편향적 판단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록된 것들이 증거로 많이 채택되기 때문에 친일파 명단에 문인들이 유난히 많이 오른 사실이 이 같은 편향성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사람의 일생을 10으로 볼 때 항일이 7, 친일이 3이었다면 이 사람은 어느 쪽에 분류될까. 날씨가 그런 것처럼 사람의 생애 또한 맑은 날, 구름도 끼고 비 오는 날도 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화창한 봄날이 있는가 하면 강풍 속에 눈 내린 날도 있다. 평생을 두고 한 가지의 날씨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한 개인에게 있어 친일 판정은 사형선고보다 가혹한, 부관참시(剖棺斬屍)보다 더한 주홍글씨 그 자체다.

생각만으로도 간음이 된다는 어느 목회자의 설교 말씀이 지나간다. 마찬가지로 생각만의 친일에서 결백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세상 만물을 비추는 태양에게도 흑점이란 게 있다. 그러면 태양은 말 그대로 흑점덩어리인가.
 
지금 지구촌에는 사형제도 폐지운동이 있다. 사형에 처해져야 마땅한 극악한 죄수들에게 사형의 굴레가 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오판 가능성에 대비한 배려이다. 거듭 되거니와 친일인사 선정과정에서 당사자에게는 소명기회 한 번 없었다. 인력부족과 조사비용의 과다, 증거자료 확보의 어려움도 실토됐었다. 이런 판국에 속된 말로 유족들이나 주변이 짱짱하면 소송 등으로 해결하고 자발성 여부까지 들어 선심성(?)으로 제외하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조상 챙길 측근이 없을 때는 어찌할까. 

지금 우리 사회는‘말’에서 빚어진 편향된 욕망으로부터‘말’의 건강성과 진정성을 회복해야 한다. 친일 청산이 근대 한국사의 해묵은 과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핑계 없는 무덤 없다’라는 우리의 속담처럼 그들의 변명 같은 심중의 한 마디까지도 귀 기울여 찾아내고 한 치라도 억울한 부분이 남을 때는 단죄는 유보되어야 한다. 하여‘역사청산’이라는 구호에 얽매이기보다, 식민지 시대를 신중하게 성찰하여 과거를 올바로 판단하여야만 발전적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인식이 전적으로 요구되는 때다.

참고로 나주출생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공개된 사람은 5명으로 노주봉은 광주가 본적으로 광주청년단 행동대원으로 활동하다 1945년 친일파로 지목되어 암살되었다. 박만서는 판사를 지냈으며, 이항발은 본명이 이시우로 민우회장과 검사를 지냈고 대통령표창과 건국훈장이 수여됐었다. 구자경은 사무관과 군수를 지냈으며, 양판서는 판사로 재직했으며 해방 후 양원길로 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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