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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프리즘] 배부른 가을, 궁핍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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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호] 승인 2009.10.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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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종/시인                       

“오매 맛있능 거. 한 열 그릇 주었으면 좋것다.”
“니가 열 그릇이나 먹을 수 있어?”
“줘 봐. 내가 못 먹능가.”
“정말?”

이렇게 해서 먹기 내기가 시작된다. 제초제가 있기 전, 우렁이 농법 등 친환경 농법은 꿈도 못 꾸고 식량증산에만 몰두하던 시절, 논농사 김매기는 대개 세 벌씩 하였다. 세 벌 매기 때쯤이면 풍년농사를 점칠 수 있으므로 농악으로 분위기 띄우고 동네잔치를 베풀곤 했다.

잔치라고 해봐야 겨우 막걸리와 국수 정도지만 주인은 동네사람들과 나눠먹기에 풍족하리 만치 장만하여 내놓는 것이 그 시절 인심이었다.

   
▲ 김종 교수
우리 집 옆의 부잣집도 그 날 저녁 주인은 풍년농사를 자축하는 뜻으로 팥국수를 쑤어 내었다. 팥을 잘 삶아 으깬 팥국물에 국수발을 넣어 끓인 여름철의 별미였다.

진종일 노동에 배가 고픗하던 차에 오랜만에 맛보는 팥국수의 첫 숟갈이 얼마나 맛이 좋았던지 어떤 일꾼이 해본 소리를 옆에 있던 친구가 얄밉게도 말꼬리를 잡으면서 예의 그 먹기 내기가 시작된 것.

팥죽 열 그릇을 대령해 놓고 마을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먹기 시작한 일꾼은 세 사발까지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더니 점차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었다. 어찌어찌 꾸역꾸역 집어넣다가 아홉 사발 째에서 지친 듯 대청 벽에 기대앉은 채 갑자기 조는 것이었다. 고개를 떨구니 입과 코의 세 구멍으로 국수발이 주르르르-. 결국 토해내고 말았다. 그 일꾼은 그 후 ‘팥죽 열 그릇’이 별명이 되었다.

인간은 왜 그럴까? 짐승들도 주린 배만 채우면 더 이상 먹지 않는다.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고 거들먹거리는 인간이 식탐에 지나쳐 위장의 수용능력을 초과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먹을 것이 풍부해진 오늘 날 위장병이 많고 과체중과 비만으로 고생하는 이가 많아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지구의 수많은 종 가운데 인간만이 병적인 비만증을 갖고 있다.(인간은 가축에게도 강제로 먹이다시피 비만을 조장한다.)

논과 밭, 과수원은 물론 산골짝까지도 온갖 열매들로 풍성한 가을이다. 이는 생명의 어머니인 대지의 헌신 덕분이다. 이처럼 베풀기만 하는 우리의 지구가 고체온과 쓰레기들로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 관련 유엔 기구에서는 70년 뒤 지구의 평균기온이 지금보다 무려 3℃ 이상 올라갈 거라고 발표한 적이 있다. 인체도 그 정도 올라가면 혼수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는데, 지구가 그런 고열로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가하는 스트레스가 도에 지나쳐서 지구가 중병을 앓게 되는 것이다.

지구가 두 개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대를 이을 후손을 남기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든지 보존되어야할 유일성의 존엄하고 또 존엄한 가치를 지닌 것이 지구이다. 지구가 병들면 돌보고 구완할 이가 인간 밖에 또 있는가?

지구에게 스트레스를 줄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꽃피는 봄도 황금의 가을도 우리에게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 할 것이며, 그래야 녹색행성으로 우주에 길이 남을 것이다. 오직 인간만 먹고 자고 쓰는 데서 스스로 탐욕을 절제하면 될 일이다.

이 가을 풍요가 넘쳐나는 들판에 서 있으니 과식해서 고통 받던 그 시절 일꾼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다. ‘거친 밥 먹고 물마시고 팔 베고 누워서도 그 가운데서 즐거움(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을 찾아냈던 선조들의 지혜가 새삼 부럽다.

물질적인 풍요를 지향하는 인간의 발전추구 모델은 성장과 팽창의 길이다. 끝이 없는 성장과 팽창의 마지막은 필연적으로 폭발의 길이다. 폭발로 사라지느니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궁핍 가운데 강물처럼 이어지는 행복’을 지향하는 삶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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