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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윤영근의 소설표해록 - 8. 바다를 지키는 도저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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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호] 승인 2009.02.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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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통보를 받은 최부 일행

잇느나든 최부를 조르며 시를 지어주기를 바라는 자들도 있었다. 최부의 시는 듣기에 편했고 정이 넘치는 이미지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무리 없이 부드러운 시의 흐름은 자연친화적이다.

많은 사람들의 그의 시를 즐겨하는 이유가 그런 점이라 하겠다. 물론 상복을 입고 있는 그는 시 쓰는 것을 거부했지만 이미 ‘동국통감’을 편찬했던 그의 전력으로 보아 상당한 수준의 문장가였음은 분명하다. 그의 지조 있고 깊은 심지와 문장력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단단했다. 명나라 지식인들의 환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문장력 덕분이라고 여겨진다. 그가 최후를 마쳤던 귀양살이의 단천에서 황량한 풍경과 자신의 처연한 심정을 시로 쓴 글을 읽어보자.

     
북풍취경급(北風吹更急)   사나운 북풍 불고 또 부는데
남국노하장(南國路何長)   남녘 길 왜 이다지 멀기만 할까?
매냉봉잔설(梅冷封殘雪)   매화는 눈 속에 상기 아니 피고
하고입소당(荷枯立小塘)   시든 연꽃 연못에 외로이 서있네.

최부가 그의 성명을 묻자 그는 왕개라고 하였는데 장(張)급사의 생질이라고 했다. 그사이에 진양(陣梁)이라는 사람이 와서 물었다. “나는 이미 장대인과 함께 조선에 갔다 왔소.”

“장공이 무슨 관직에 있었답니까? 어떤 사유로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와 은거하며 사는지요?”

“장공은 벼슬이 도급사에 이르고 뒤에는 도어사(都御使)에 이르렀는데 아들이 없어서 젊은 나이인 42세 때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오.” 

며칠 전에 최부가 지니고 있던 활과 칼을 가지고 갔던 관리가 돌아와서 말했다.
 
“당신의 활과 칼은 진수 대인이 잘 보관하고 있소.”
 
“괜찮습니다. 누가 가지고 있던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이번에는 고벽이 최부의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해상군관이 당신 일행의 배 14척이 바다에서 노략질을 자행하고 있다고 보고해 왔소. 순안어사가 그런 배를 나포하지 않은 이유를 들어 문책하겠다고 말했소.”
 
진수와 삼사는 한동안 의논이 분분하였는데 최부가 쓴 공술서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내린 최종결론은 그가 왜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최부 일행을 대리고 북경까지 호송하기로 결론이 났으니 항주에서는 사나흘만 더 기다리면 가는 길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포정사 대인 서규와 안찰사 부사 위복이 최부를 역의 객사로 불러 들였다.

“당신들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호송하기로 했소. 일이 잘 풀렸으니 안심하시오.”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 최부는 물러나서 관사로 돌아갔다. 북경에 산다는 키가 큰 이절이 왔다. 최부의 남루한 옷가지와 땟국이 줄줄 흐르는 거지꼴의 최부를 보고 충고하듯 타일렀다.
 
“이곳 사람들은 예쁘게 치장하기를 즐겨하오. 더러운 당신들의 꼴을 본 사람들은 모두 얼굴을 찡그리며 경멸할 것이오. 더구나 모든 조선 사람들은 당신들처럼 더럽고 추접한 것으로 잘못 알 것이오. 개울가 양지쪽으로 가서 깨끗이 씻는 것이 좋을 듯하오.”
 
최부는 일행을 이끌고 개울로 갔다. 각자 몸을 씻어내도록 했다. 여태까지 배에서 더러워진 묶은 때를 부지런히 씻어냈다. 정보와 한자리에 앉은 최부도 말끔하게 때를 벗겨냈다.

항주에서 모처럼 몸을 씻고 기름진 음식에…

“야, 새사람 나왔다. 인물이여, 인물!”
 
깔끔하게 예뻐진 모습을 서로 쳐다보며 오랜만에 함박웃음을 웃었다. 이번에는 이절이 다가왔다. 최부의 살갗이 벗겨지고 발톱까지 빠진 것을 보고 말했다.
 
“촌각이 바람에 달린 난파선을 이겨내느라 애쓴 흔적이군요?”
 
“출렁이는 바다에 있을 때 여러 번 피를 토하며 사흘 동안 입에 침이 몽땅 말라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렇듯 피부가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은 짜디짠 바닷물에 찌들었기 때문이며, 발까지 이렇게 된 것은 맨발로 험한 산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최부는 공연히 마음이 울적해졌다. 일찍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은 머리털 한 올이라도 소중하게 간수해야 하며 훼손하거나 상하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 효(孝)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이처럼 온몸에 성한 곳이 없이 다쳤으니 불효막심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던 것이다.  ‘아-아, 나는 진정 못난 불효자란 말인가?’
 
자문자답하는 최부의 쓸쓸한 얼굴이 서럽기만 하다. 더더구나 최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초상을 쳐야 함에도 아직까지 집에 돌아가기는커녕 타국에서 생사를 다투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불효는 없을 것이다.
 
칠순 노모의 허리 굽어진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런 최부의 감정을 읽은 이절이 말했다.
 
“그렇지 않소. 물론 상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당신의 경우는 특별한 예외라 하겠소. 만부득이한 일로 어쩔 수 없는 경우이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구려.”
 
이절 옆에 서있던 그의 친구가 옷소매 속에서 ‘소학’(小學) 한 권을 꺼내더니 이절을 통해 최부에게 건네면서 시한수를 써달라고 했다.
 
“아무런 이유나 인연도 없이 남에게 시를 써서 주는 것은 염치없는 행동으로 사양하겠습니다.”
 
이미 최부의 문장실력이 소문이 나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를 받으려했지만 전혀 다른 박절한 모습에 이절이 말했다.
 
“이 사람이 시한수를 바라는 것은 당신을 잊지 않기 위해 그러는 것이오. 기념으로 생각하고 한수 써주구려.”
 
최부도 자신의 생각을 꺾지 않았다. 그는 선비의 나라 조선에서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과거를 두 번이나 페스한 사람으로 시 짓기에는 이미 일가견을 이룬 자이다. 그렇지만 상중의 몸으로 시를 쓴다는 것이 선뜻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변변치 못한 시나 글씨를 남에게 주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남의 좋은 것과 바꾸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결국 그는 책을 다시 옷소매 속에 집어넣고 돌아갔다. 화가 치민 이절이 다시 말했다. “도(道)로써 사귀고 예(禮)로써 대할 때는 공자께서도 받았는데 이것은 너무 심하지 않소?”

최부가 대답했다.
 
“저 사람은 나의 시를 받으려 했습니다. 그런즉 도로 사귀려한 것이 아니고, 예로 대한 것도 아닙니다. 만약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대가를 받고 시를 파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이를 거절한 것입니다. 너그럽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과연 그렇기도 하겠소.”
 
저녁이 되자 이절은 자신의 친구들을 대려와 최부와 어울려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배불리 먹어본 남중국의 기름진 음식이 넉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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