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자금과 DJ 고향 돌로 지은 마을창고는 DJP연합의 상징

영산강 지류 삼포천 진천포에서 뱃길로 목포 오가고 갈대빗자루 만들어
너른 진천들에서 쌀농사 짓고 바닷고기며 맛조개·게 잡으며 살던 기억 

▲ DJ 고향 하의도에서 뱃길로 가져온 돌로 JP가 낸 돈으로 지은 진천리 1구 마을창고는 훗날 DJP연합을 통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의 상징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고향인 하의도 돌을 진천포까지 배로 싣고 와서 마을창고를 지었지라우”

56년 전 지은 마을창고 앞 우산각에서 만난 마을 주민들은 그 때 기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968년 큰 가뭄이 들었을 때 박정희 정권의 최고 실력자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내놓은 개인 재산으로 148세대의 지붕을 개량하고 마을창고를 지었다는 것이다. 훗날 언론들은 이 마을창고를 ‘JP가 돈을 내고 DJ고향에서 돌을 가져와 지었기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을 당선시킨 DJP연합의 상징’이라고 적고 있다.

초복이던 지난 11일에는 주민들이 마을창고에 모여 삼계탕으로 ‘복달임’을 했다고 한다. 마을회관 앞에는 1968년에 건립한 ‘운정 김종필 수혜기념비’와 1999년 국무총리 때 방문해 심은 기념식수가 자라고 있다. 동강면 진천리 1구 내동마을을 운정마을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환갑이라는 박양희(61세) 씨는 내동마을이 고향이다. “겉보리 서말이 없어서 처가살이했다”고 말문을 연 박 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다 사업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했는데 사업이 기울어 친정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큰 아이 낳고 열흘만에 고향에 와서 3년 안에 빚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가서 다시 시작하자고 독하게 맘먹었다”는 박 씨는 “운 좋게도 1년만에 빚을 갚고 나니 농사 짓는 게 더 낫겠다 싶어 정착했다”고 한다. 박 씨의 아버지는 나주시의회 초대 의원을 지낸 고 박규순 씨다.

“할아버지가 배 3척으로 마을 앞 진천포에서 삼포천과 영산강을 타고 목포까지 여객운송 사업을 했다”는 조재근(69세) 씨는 “농토도 많아 할아버지 땅을 지나지 않으면 동강을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컸다”고 한다. 조 씨는 15년째 신세계농장을 운영하며 1만여평에 쌀농사만 짓고 있다.

▲ 진천복지관 앞 우산각에서 내동마을 주민들이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동마을이 고향인 박현숙(69세) 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다 혼자 계신 어머니 농사 도우러 와서 옆 마을인 2구 천서마을 남편을 만나 연애결혼했다”며 “논이 삼포천에 접해 있어 일하다 맛조개며 게를 잡아 음식해서 먹었다”고 한다. “영산강 둑을 막기 전이라 숭어며 전어, 운저리, 짱뚱어 등 바닷고기도 많았다”는 박 씨는 “우리 또래가 유난히 많은 30~40여명에 달할 정도로 큰 마을이었다”고 초등학생 시절을 떠올린다.

전북 남원이 고향인 이영자(83세) 씨는 “섬으로 다니며 장롱이며 밥상 수선하고 칠 먹이는 일 하며 4남매 키우고 생계를 이어왔다”며 “기술자인 남편이 ‘집집마다 찾아가서 일감을 가져오라’고 하길래, 이장한테 부탁해서 마을방송으로 알렸더니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제과기술자로 시작해서 제과점부터 택시 운전이며 중식당, 제지공장, 건축 현장 등 안 해본 일 없이 다 했다”는 윤현덕(69세) 씨는 “충북 보은 출신인 집사람을 만난 대전에서 17년, 부산에서 19년, 경기도 안산에서 16년을 살다 5년 전에 이 마을에 정착했다”고 한다. 문평면이 고향인 윤 씨는 “두 부부 노령연금으로 생활하며 먹거리 대부분은 텃밭에서 직접 키워 해결한다”고 한다. 윤 씨는 광주에서 교회 목사로 있는 아들과 인천에 살고 있는 딸 남매가 7명의 손주를 낳았다고 웃음짓는다.

“고향이 바로 옆인데도 살다보니 자주 못 다녔다”는 허덕님(89세) 씨는 “21살에 시고모 중매로 결혼했으니까 그새 70년 세월이 지났다”고.. 공산면 복용리 용연마을 출신이라 ‘용연댁’으로 불렸다는 허 씨는 “자식들 굶기지 않으려고 힘든 지도 모르고 살았다”며 “많이 가르치진 못했어도 4남매 모두 우애 좋게 살며 힘들 때 고생을 잊지 않고 있다”고 한다.

▲ 마을창고와 진천복지관 뒤로 내동마을이 있다.

동강면 인동리가 고향인 오연순(69세) 씨는 “농한기를 이용해서 삼포천 갈대꽃을 말려 소금물에 삶아 빗자루를 만들었다”며 “수수로 만든 빗자루는 마당 쓸 때 사용하고 갈대비는 방안 청소할 때 썼다”고 한다. “쌀농사랑 담배농사 지으며 한우도 키웠다”는 오 씨는 “우리 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해 논이 많아 배 곯는 일은 별로 없었다”고..

동강농협에 다니다 축산업을 하던 아버지한테 30여마리 분양받고 20여마리를 새로 구입해서 한우 농장을 하고 있는 조형근(36세) 씨는 “직장생활 하면서 아버지 일을 도와 제 농장을 시작했지만 5년 전에 농장 일에 전념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고 한다. 광주에서 직장생활하던 조 씨의 형 창근(37세) 씨도 “작년 10월부터 농장에서 전업으로 한우를 키우고 있다”며 “초등학생인 아이들 교육 때문에 광주에서 출퇴근하고 있지만 노후에는 고향에 들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조 씨 형제의 고향살이가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내동마을 초입에는 태고종 사찰인 일광사와 진천교회가 있다. 100년 넘은 흙불상이 있는 일광사 주지 원공 스님은 “진천들에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에 진흙으로 빚은 부처님은 그리 흔치 않아 문화재청과 문화재 지정을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김대석 이장 인터뷰

“어렵고 배고픈 시절 이겨내고 자수성가한 삶!”

“6개월 만에 세상에 나온 막둥이 독자인 아이가 인큐베이터에서 2개월 7일을 보낼 때는 세상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는 김대석(75세) 이장은 “건강을 회복하고 어느새 성인이 되어 소방공무원으로 생활하고 있다”며 뿌듯해 한다.

“초등학교 시절 마을 또래 친구들이 20여명이나 됐다”는 김 이장은 “학교 가는 길에 지금은 로터리가 들어선 넓은 터에서 ‘나이먹기’며 ‘기마전’하고 놀다 시간에 쫓겨 책보 메고 뛰어간 게 엊그제 같다”고 한다. 김 이장은 “학교에서 나눠 준 우유가루와 옥수수가루를 집에 와서 물에 타먹으며 끼니를 해결했다”며 “밥솥 한 가운데에 한줌 올라간 하얀 쌀밥이 그렇게 먹고 싶었지만 매번 아버지 차지였다”고 한다.

“학교 다녀오면 지게에 낫 들고 멀리 양지리 백련산까지 나무하러 다니고 그마저도 부족해 잡초를 베어 말려서 땔감으로 썼다”는 김 이장은 “100여마지기 논밭에 소도 댓마리 키우는 지금은 어느 누구 부러울 것 없는 자수성가한 삶”이라고 한다. “농사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공사현장으로 일하러 다녔다”는 김 이장은 “금천면에 오토바이타고 일하러 다니기도 했고, 울산에서 3개월 이상 일하고 돌아올 때도 있었다”고 덧붙인다.

26세 되던 해 대전리가 고향인 부인을 만나 6남매를 두고 있는 김 이장은 “결혼 전부터 교회에 나가던 집사람 따라 기독교인이 됐다”며 “아버지께 밭에 교회를 짓자고 말씀드려 진천교회가 들어왔다”고 한다. 교회를 짓기 위해 당시 신학대생이던 지금의 정철 목사와 함께 손이 부르트도록 곡괭이질을 했다고 한다.

잠시 비가 그친 사이 약통을 등에 지고 밭으로 향하는 김 이장의 짙게 패인 주름에서 ‘성공한 인생’이라는 그의 신산한 삶의 역사가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