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트는 아침에 쟁기를 지게에 지고 이곳 방죽목에서 해장국에 막걸리 한사발로 하루 일을 시작하니

삽을 어깨에 멘 동네사람들 논 물꼬 막고서 이곳 방죽목 막걸리 생각에 머무니

해름참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피로한 몸을 이곳 방죽목 막걸리 취기에 오늘도 나의 삶이 즐겁다네’

 

송월동 토계마을 2통 입구의 표지석 ‘방죽목 추억’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산업화 물결을 따라 도시로 빠져나가기 전 토계마을 사람들의 삶을 풍경화처럼 그리고 있다. 유난히도 방죽목 막걸 리가 자주 나오는 이유는 이곳에 막걸리 잔을 나누던 주막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때는 마을 앞 안뜰에서 생산되는 무를 사기 위해 전국에서 상인들이 몰렸다. 소채조합과 단무지공장을 둘러싸고 30여 상가가 즐비했다. 마을 앞 백사장에 모래찜하러 오는 외지인들이 많아 민박집이 20여곳에 달했다. 

 

마을회관의 이화경로당에서 만난 이춘자(81세) 씨는 2통에서 나서 결혼하고 평생을 살았다. “초등학교 마치고 나주의 비단공장에 다녔다”는 이 씨는 “19살 되던 해 나주 공장이 문닫고 광주에 있는 베 짜는 공장에 다니다 26살에 고향사람과 결혼해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혁신도시를 만들면서 빛가람대교와 강변도로가 생길 때 이 씨네가 농사짓던 땅이 수용됐다고 한다.

 

강진군 병영면이 고향인 박영이(69세) 씨는 “농사짓는 사람도 별로 없고 공장에 일하러 다니거나 밭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결혼하던 1980년 토계마을의 기억을 떠올린다. “우리는 벼농사를 짓고 있어 굶지는 않았다”는 박 씨는 “큰 비가 오면 논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농사를 망쳐 굶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박 씨는 10여년 전부터 마을 앞 안뜰에서 복숭아 과수원을 하고 있다.

 

▲ 송월동 2통 토계마을 사람들이 이화경로당에 모여 있다.

 

이춘자 씨와 함께 비단공장을 다녔다는 이영희(82세) 씨는 “결혼하고 중매인을 하던 남편과 함께 과일을 팔아 4남매를 키웠다”며 “처음 마을에 왔을 때 아이들 이름을 넣어 ‘○○엄마’로 부르거나 남편 이름을 따라 ‘○○네’ 하며 부르던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때만 하더라도 ‘○○댁’하고 댁호를 부르던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독특하게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다. 이 씨는 16살 되던 해 고향인 영광군 군남면에서 영강동으로 이사와 부모님이 영산포역 앞에서 어물전을 했다고 한다.

 

마을에 접해 있는 호남비료공장(호비)에 다니던 아버지 따라 3살 때 이사왔다는 홍현식(68세) 씨는 “20대 초반에 3년여 호비에서 일하다 옥탄올공장으로 바뀌면서 여수의 비료공장으로 옮기지 않고 눌러앉았다”며 “나주역과 농협양곡 등에서 30여년 상하차 작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여전히 탯자리에서 살고 있는 이장록(66세) 씨는 “20대 때 10여년 부산에서 침술을 배우고 일한 시간을 빼면 평생을 이 집에서 살고 있다”며 “삼촌 소개로 침술과 인연을 맺었지만 합법화를 이루지 못해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와 건축일로 가계를 꾸려왔다는 이 씨는 “마을에 아이들 울음소리가 그친 지 오래고 평생 일만 하신 어르신들이 흐르는 시간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인다.

 

다도면 암정리가 고향인 김금례(80세) 씨는 “논이 물에 잠기고 흉년이 들 때에는 정부 구호미를 받았다”며 “정부가 준 쌀은 겉보기엔 번들번들하지만 찰기가 없어 밥맛이 없었다”고 한다. 1944년생인 김 씨는 “아이들이 크다 죽는 일이 많아 10년 늦게 호적에 올리는 바람에 1966년생이 큰아들하고 호적상으로 12살 차이다”며 웃어보인다.  

 

▲ 마을 입구에 마을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방죽목추억 표지석이 있다.

 

“셋째 아들이 일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결혼도 못하고 집에만 있다”는 황봉임(90세) 씨는 “봉황면 운곡리에서 살다 21살에 결혼하고 화남산업에 다니며 영산강변 하천 부지에서 농사지어 6남매를 키웠다”고 한다. 김 씨와 황 씨는 마을 안에 있는 녹두경로당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녹두경로당은 마을에 경로당이 없던 시절 고 김녹두 할머니(살아계시다면 128세)가 살던 집을 마을사람들이 어울리는 공간으로 내놓은 이래로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올해로 100년이 된 새남부교회에 2009년에 부임한 장철희 목사(53세)는 “동 지역이긴 하지만 순박하고 착한 마을사람들이 매력적”이라며 “예배에 성실히 임하시고 교회를 내짐처럼 가꾸시는 신도들이 많아 행복하다”고 한다. 

 

영산강 물길이 막히기 전엔 하루 두 번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해서 장어랑 숭어, 전어 등 바닷고기를 구워먹고 황복을 부풀려 축구공처럼 차고 놀았다고 한다. 송월동에서 지대가 제일 높아 ‘깃대봉아리’로 불리기도 했던 2통은 다른 마을에 한두명에 불과한 90세 이상 어르신이 9명이나 된다. 즐겁게 어울려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장수마을의 전통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느닷없이 결혼식 전날 계엄이 선포되는 바람에 결혼식을 못할 뻔 했어요”

 

1979년 10월 27일로 결혼식 날을 잡았던 김춘택(75세) 통장은 전날 벌어진 10·26사태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비상계엄으로 금지된 옥외집회에 결혼식은 해당되지 않아 다행히 결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산으로 신혼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밤 10시 통행금지 때문에 서대구역에서 내려야 했다”는 김 통장은 “한밤중에 낯선 서대구역에 내리자마자 여관주인이 우리 여행가방을 나꿔 채 가는 바람에 뒤쫓아가서 한바탕 크게 싸워야 했다”고 당시를 떠올린다. “갑자기 당한 상황에 앞뒤 가리지 않고 주먹부터 날아갔다”는 김 통장은 “경찰이 와서 호객행위를 한 여관주인과 화해하고 그 집에서 첫날밤을 보냈다”며 웃음짓는다.

 

스무살 되던 1968년에 정밀공장을 운영하던 외삼촌의 회사 주소와 전화번호만 쥐고 상경한 김 통장은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통보하고 올라갔다”며 “기술 배우는 사람이 기술자보다 많으니 나중에 다시 오라는 외삼촌 말이 야속했지만 억지로 우겨서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잘 나가던 회사가 갑자기 부도가 나면서 5년 만에 청계천의 공장에 공장장으로 취직했다”는 김 통장은 “단골로 다니던 전주식당 사장님 소개로 조카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식당 사장님과 함께 전주에 가서 처음 만났을 때 서로 맘에 들었다”는 김 통장은 “두 번째 만났을 때 통금 직전에 처갓집에 가서 ‘따님 고생시키지 않겠다”며 결혼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늘어나는 거래처랑 신뢰가 쌓이면서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겨 1978년에 회사를 차렸다”는 김 통장은 “사업이 정상화되려던 참에 터진 전두환의 군사쿠데타로 국가경제 전체가 멈추는 바람에 공장 문을 닫고 잠시 쉬자는 생각에 내려왔다 지금껏 고향을 지키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