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항상 넘치던 샘은 여전히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있을만큼 수질 좋아
안짓봉이 바람 막아 아늑하고 포근…울창한 소나무 많아 솔매라고도 불려

 

▲ 베트남전쟁에 전한 국가유공자 양회연(84세) 씨가 참깨 밭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잘 하믄 한말이나 나오는디, 하지 말라는 일 한다고 자식들도 안 먹는다 그래” 빈집 터에 심어놓은 녹두밭에서 잡초를 뽑는 최공순(88세) 씨는 “딱히 할 일도 없고 빈땅 놀리는 것보다야 낫제” 라며 잰 호미질을 이어간다. 다시면이 고향인 최 씨는 왕곡면 출신 남편을 만나 공산면 남창리 3구 송산마을로 들어와 산 지 64년 째라고 한다.

 

옛 국도 23호선을 따라 공산면사무소를 지나 500여미터쯤 가다 오른쪽에 있는 송산마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소나무가 많아 ‘솔매’라고 불렸다고 한다. 주민들은 마을 뒤 안짓봉이 바람을 막아줘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화목한 마을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우 번식우를 키우기 위해 반남면에서 이사온 지 17년째라는 류금례(75세) 씨는 “반남면에서 별정우체국을 하기 전에는 식당도 하고 안해 본 게 없다”며 “살다 보니 돈보다 맘 편히 사는 게 더 중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덧붙인다. “제 손으로 키운 손주들이 학교 다니느라 자주 못 오는 것이 아쉽다”는 류 씨는 장흥군이 고향이다.

 

동강면이 고향인 최수권(70세) 씨는 1990년 소와 돼지를 키우기 위해 부인의 고향마을로 이사왔다. “그때만 하더라도 마을을 둘러싸고 크고 이쁜 소나무가 즐비했다”는 최 씨는 “30여 마지기 논밭에서 벼농사랑 감자 고추 등을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2011년에 새로 지었다는 최 씨의 집은 마을 초입에 위치해 있어 오고가는 주민들이 들르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 마을 가운데 있는 샘은 지금도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수질을 유지하고 있다.

 

20여년째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황상심(59세) 씨는 “우리 또래가 열 댓명으로 제일 많아 당산나무 주변 언덕에서 술래잡기며 땅칼(크고 작은 두 개의 막대기로 하던 놀이인 자치기를 그렇게 불렀다고 함) 하며 놀던 기억이 새롭다”며 “물이 항상 넘치던 마을샘은 지금도 2가구가 생활용수로 사용할 만큼 수질이 좋다”고 한다.

 

송산마을의 유일한 국가유공자인 양회연(80세) 씨는 “맹호부대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포항제철 세우고 고속도로 만든다고 매달 월급에서 10달러씩을 뗐다”며 “국가발전에 헌신한 유공자들에게 버스비 할인은커녕 아무런 혜택도 없는 것은 너무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참깨는 가물어야 잘 되는디 올해는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걱정”이라는 양씨는 고향인 동강면에서 9살 때 부모님이 이 마을로 이사왔다고 한다.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직장생활도 하고 식당도 하고 가축도 키웠다”는 황의천(72세) 씨는 “2015년에 수술한 뒤로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데도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소변 때문에 아무데도 못 가고 집만 지키고 있다”고 속상해한다. 하지만, 공고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큰 아들이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와 살겠다’고 해서 든든한 위안이 된다고 한다.

 

다도면 신동리가 고향인 김수자(73세) 씨는 23세 때 결혼하면서 송산마을 사람이 됐다. “큰 아들과 딸은 결혼해서 아들 둘씩 낳아 잘 살고 있는데 작은 아들이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해서 걱정”이라는 김 씨는 “평생 깨랑 콩 심어 자식들 키운 기억밖에 없다”고 한다.

 

▲ 마을 초입에 있는 당산소나무 언덕은 마을사람들의 어릴 적 놀이터였다.

 

열아홉살에 직장생활을 위해 고향을 떠나 경기도 부천시에서 살다 10여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황영숙(74세) 씨는 “홀로 되신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올 수 밖에 없었다”며 “부모님이 사시던 집이 있고 어릴 적 함께 놀던 친구가 있는 고향이라 생활에 큰 불편은 없다”고 한다. 송산마을에 선산이 있어 매년 6월6일에 가까운 사촌들과 가족모임을 갖는다는 황 씨는 “일하는 거나 사는 거나 마찬가지로 제 하기에 달려 있다”고 덧붙인다.

 

“해마다 농자재값과 비료값 등 생산비는 꾸준히 올라가는데 반해 농산물 가격은 불안정해서 농사짓는 재미가 없다”는 김형렬(68세) 씨는 “광주에서 직장에 다니는 아들이 30대 후반이 다 되도록 짝을 못 만나는 것인지 결혼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속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인근 4만여 평에 벼농사만 짓는다는 김 씨는 “아들만 결혼하면 걱정할 일이 없다”고 웃음짓는다.

 

마을 사람들은 ‘다른 마을에 비해 농토는 적지만, 공직자는 공산면에서 한두 손가락에 꼽을 만큼 많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공산초등학교 우등상을 독차지하다시피 했고 지금도 공무원이며 교사, 경찰 등으로 근무하는 마을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지난 4월까지 목포대학교 사무국장을 지낸 행정안전부 이병철 국장도 이 마을 출신이다. 한 때 50여가구 100여명이 넘던 마을은 20여가구 3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마을사람들이 함께 쉴 수 있는 우산각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는 배강욱(68세) 이장은 “나주시 전체에서 우산각 없는 마을은 우리 마을 뿐일 것”이라고 한다. 면장에게 건의해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는 배 이장은 “조만간 성사되길 기대하고 있지만, 예산 탓을 하는 공무원들에 여간 실망한 게 아니다”고 한다. 

 

최근 배 이장은 마을 뒤 삼거리가 어두워 가로등 설치를 요청했다. “전봇대에 등만 달면 될 일을 신경 쓰지 않고 관련 예산이 없다는 말만 하더라”는 배 이장은 “차라리 우리가 직접 달 수 있게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한다. 2000년에 지어진 마을회관 곳곳의 균열이 심각하다는 배 이장은 “둠벙을 메워 지어진 탓에 지반이 침하되어 곳곳이 쩍쩍 벌어져 위험한데도 제대로 현장점검조차 하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토로한다.

 

올해 처음으로 이장을 맡아 마을 일에 의욕을 보이지만 번번이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좌절하고 있다는 배 이장은 “없는 예산이라도 아껴서 더 잘 쓸 생각을 해야는데 그렇지 않는 거 같아 아쉽다”며 “최근 배수로 정비하는데 2,500만원이 들었다는데 우리가 했으면 절반 이상을 아껴서 마을의 다른 필요한 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