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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기반성
이철웅 편집국장  |  njt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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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 승인 2003.05.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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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웅 편집국장
"KBS는 뉴스 시간 내내 진상을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괴뢰(의 책동)' 운운하면서 광주시민을 위협하고 있었다. …화면 속의 광주는 어처구니없게도 평화로웠다. KBS는 국민을 속이고 진실을 감추는데 성공했다. 끝까지 씻을 수 없는 엄청난 죄를 짓고 말았다." 지난 18일 저녁 8시 KBS-1 TV를 시청하던 시청자들은 잠시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KBS는 5·18 광주민중항쟁 23주년을 맞아 당시 이 사건을 전 세계에 자세히 알렸던 독일 기자의 이야기를 '일요스페셜-푸른 눈의 목격자'라는 제목으로 다뤘다.
'푸른 눈의 목격자'는 1980년 5월 광주를 목숨을 걸고 현장 취재했던 독일 제1공영방송 ARD의 카메라 기자 유르겐 힌츠피터의 이야기다.
이 필름은 그가 5·18 당시 광주에서 두 번에 걸쳐 촬영한 내용을 50분 짜리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그 해 5월 22일 독일에서 첫 방영한 것으로서 80년대 국내 대학과 성당 등에서 몰래 상영되던 이른바 '독일비디오'가 바로 그것이다.
일요스페셜에 의하면 힌츠프터는 이 '독일비디오'로 한국정부의 감시대상이 돼 86년 서울의 한 시위 현장에서 사복경찰에 집단구타를 당해 그 후유증 때문에 기자생활을 끝내야 했다고 전하고 있다.

신선한 충격

지난 18일 일요일 밤 8시 KBS 일요스페셜 프로에서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프로그램 속의 잔인한 내용이나 힌츠프터 기자의 목숨을 건 취재활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KBS 측의 뼈를 깎는 자아비판이요 자기 반성적 태도였다.
23년 전, 그 해 5월의 광주는 국내 언론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한 고립무원의 도시였다.
진실은 유언비어로 둔갑해 민주항쟁은 폭동이었으며, 광주시민은 폭도였고, 진압군은 광주의 해방군이었으며, 진압군의 작전이 끝난 광주시는 해방구였다.
당시 한국의 언론은 침묵한 게 아니고 광주를 외면했으며 새로운 권력의 나팔수를 자임하며 신군부에 줄서기 위해 열중이었다.
신군부의 선전원으로 전락한 그들은 이동된 권력과 철저하게 흥정하고 야합했으며, 광주시민의 민주화를 위한 피와 죽음을 애써 외면한 체 '전(全)비어어천가'를 지어 부르기에만 혈안이 되었던 언론들.
그러나 지금까지 언론이기를 스스로 포기했던 그 날의 '매춘 언론'들이 그 때의 추잡한 야합과 혹세무민을 솔직히 고백하고 반성한 일이 있었던가.
이렇듯 '선택받지 않은 권력'들의 뻔뻔스러움이 지금도 활개치는 한국언론의 풍토 속에서 지난 18일 밤 'KBS 일요스페셜-푸른 눈의 목격자'는 우리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23년 전, 5월 광주의 진실과 진상을 단 한마디도 시청자에게 전하지 못한 KBS가 자신의 잘못을 과거 어느 특집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직설적인 표현을 써가며 사죄한 것이다.
다른 언론들과 함께 신군부에 '간과 쓸개'를 내놓았던 KBS가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스스로 감수하며 광주 시민 및 대한민국 국민에게 속죄한 것이다.

언론은 도덕의 상징

2차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의 드골 장군은 나치협력 민족반역자를 숙청하면서 가장 먼저 언론인들을 심판대에 올렸다.
주위에서 언론의 자유를 들먹이며 반대의 목소리도 많았으나 드골은 그 어느 집단보다도 언론인들을 엄하게 처벌했다.
드골은 그 후 그의 회고록에서 '언론인은 도덕의 상징이기 때문에 첫 심판에 올려 가차없이 처단했다'고 기록하고 있듯이, 언론은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의사표현의 수단을 확보한 관계로 그들의 국가와 국민에 대한 도덕성의 상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변명이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2차대전후 프랑스의 언론인 숙청은 단순히 반민족세력의 처벌이 아닌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거듭하는 부도덕한 인간들이 또다시 언론에 종사한다든가 언론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23년이 지난 지금도 묘비를 부여 앉고 오열하는 5·18 유족들의 마르지 않는 눈물 앞에 그 날의 언론과 언론인들은 이제라도 무릎 꿇어 사죄해야한다.
23년 전, 5월의 광주에서 그들이 침묵하지 않았던들 야합하지 않았던들 언론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들, 침묵하지 않은 만치 야합하지 않은 만치 포기하지 않은 만치 광주의 희생은 줄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파리가 해방되면서 많은 나치의 '지적 협력자'들이 변명에 급급할 때 드리유라 로셀은 "지식인은 다른 시민과 다르다. 지식인은 다른 시민보다 더 높은 차원의 의무와 권리를 향유한다."라는 참회의 글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를 23년 전 5월의 한국 언론들은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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