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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봉황양민학살Ⅳ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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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호] 승인 2007.04.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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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양민 죽였다는 주민들 항의에 경찰옷 벗어

곧바로 경찰청 인사카드를 찾아보았더니 '공명의'라는 이름은 없었지만 '공명희'하는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1925년생인 공명희는 1949년, 그러니깐 25살에 경찰 특공대에 입대해 전쟁 중에 순경으로 임용되었다. 1952년에 직권 면직되었지만 곧바로 복권돼 그해 6월 25일 공비토벌 공로로 상을 받았다. 그리고 3년 뒤 1955년에 경찰을 그만 두었다.

"운산리에 공씨가 5~6집 살았는데 모두 양반들이었어. 공명은 얼굴이 잘생겼는데, 그때만 해도 사람 뺨 한 대 때릴 줄 모를 정도로 순진했지. 그런데 특공대에 들어가더니 사람이 180도 변해버렸어."(같은 마을 주민 이OO, 76세)

전쟁이 끝나고 경찰 내부에서 '공명희'가 무고한 양민을 수없이 죽였다는 비난과 다도와 봉황면 주민들의 빗발치는 항의가 쏟아져 1955년 경찰 옷을 벗게 된다.

경찰을 그만둔 공명은 이때 동강면 주조장에서 잠깐 술 배달을 했으나, 이도 여의치 않자 지금의 신문 보급소에서 일을 하면서 가방 하나를 들고 다니며 기자행사를 하였다.

하루는 이OO 순경이 해안 경비를 서고 있었는데 한 척의 배가 지나갔다.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공명이 즉시 신문사에 제보하였다.

"이만석이가 소금 7가마니를 받고 소금배를 봐줬다."

소금은 당시 통제품이었다. 근무를 섰던 이 순경이 소금 배를 봐줬다라는 내용이 신문에 실리자 이 순경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공명을 찾으러 동네방네로 다녔다. 주막에서 공명을 만난 이 순경이 주먹을 날렸다.

"그런 사실이 없는데 제보를 해. 너도 경찰한 놈이 아니냐"

이 순경에게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들겨 맞은 공명은 이 사건을 계기로 신문사 보급소 일도 그만 두었다. 이후 공명은 거의 패인처럼 동네에서 돌아다니다가 56년경에 고향을 떠나게 된다.

다도에서 특공대 소대장으로 있을 때 좋은 목재를 가져와 지은 집을 팔고 송정리에 혼자 사는 장모 집으로 처와 자식을 데리고 들어갔다.

그의 어머니를 남겨두고 처와 자식을 데리고 고향을 떠난 공명은 몇 년간 동강면 운산리를 왕래하다 1960년이 넘으면서 소식이 끊긴다.

그의 동생에 의해 1971년 경기도에서 객사했다는 소식이 친척들에게 알려졌다. 그의 어머니는 자식의 소식을 10년이상 듣지 못해 공명이 죽기 1~2년 전에 화병으로 숨졌다.

경기도에서 1971년에 객사했지만 그의 재적에는 9년 뒤 1980년에 고향인 동강면 운산리에서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큰아들은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살고 있다.

현장목격자 증언

강상원(화장실에서 도망, 현재 서울 거주)

결혼 전에 동네 사랑방에서 자주 잠을 잤어. 우리 집이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저녁에 놀다가 사랑방에서 자고 아침에 집에 갔거든.

그 날도 사랑방에서 일찍 나와 집으로 가는데 경찰관들이 총을 메고 오더라고, 가는 길에서 마주쳤는데 "어디 갔다 오느냐?", "누구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그길로 경찰은 마을로, 나는 집으로 내려왔지.

"사랑방에서 미처 나오지 않았다면 무슨 꼴을 당할 뻔했겠구나!" 생각하고 집에 와서 아침을 먹으려는데, 동네 아이가 왔어. 경찰이 아이를 보낸거야. 마을 앞으로 안 가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괜스레 안 가면 의심할 거 아니냐. 떳떳하게 자수했다고 말해."라면서 등을 밀더라구. 아버지 말도 일리가 있어서 마을 앞으로 갔지.

경찰에게 "자수했니, 뭐했니." 말하기도 전에 불러서 왔다고 하니까 "너 저기 서 있어." 그래. 이미 이름을 불렀던지, 아니 이름을 부른 게 아니라 봐서 젊고 활동했겠다 싶은 친구들이 논에 있더라고.

마을 앞 논에 주민들을 앉혀 놓고 그중에서 청년 10여 명을 한쪽에 세워 놓았는데 그 쪽으로 가라는 거야. 그 곳에 성일이 아버지가 있더라고 성일이 아버지가 진외가로 형님이야. 나더러 "너 뭐하러 오느냐. 우리 오늘 죽일 것 같다." 그 형님 예감이라는 게 있나 봐.

"설마 죽이기야 하겄고"하면서 함께 논 한가운데에 서 있는 거야. 벌판이라 어디 숨을 데도 없고 꼭 어디로 가고 싶은 심정이 들더라고. 그런데 송현리 두리봉 마을에서 몇 사람을 데리고 왔어. 촌명이 두루봉인가 두리봉인가 그렇게 이야기를 해.

나중에 들으니까 거기 들려서 데리고 왔다고 그래. 별도로 앉혀놓고 우리 마을 청년들을 그쪽으로 가게 하니까 합류가 됐지. 그 사람들하고 같이 마을 앞에서부터 철애로 넘어가는데, 철애로 가려면 등내를 지나야 해. 길 양옆에 대나무가 우거져 있는데 마음 같아서는 대받으로 들어가고 싶더라고.

그런데 경찰이 총을 메고 앞에 가고 뒤에 따라와 도망을 갈 수 없잖아. 그런 심정으로 만호정에 도착했어. 마호정에 갓서도 경찰이 동네 사람들을 불러내는 거야. 우리는 마호정에 앉혀 놓고 철애 사람들을 불러내는 거지. 번호를 부르더라고. 어디로 도망을 갈까 생각하다가 내 번호를 깜박 잊어버렸어.

지금은 없어졌는데, 만호정에서 조금 떨어져 측간이 있었어. 벽을 나무와 흙으로 발라서 밖이 다 보여, 내가 화장실을 갔다 온다고 하니까 순경 하나가 나를 측간까지 데리고 가더니, 측간 옆에서 기다려.

측간에는 가마니 데기를 쳐 놓았어. 변도 나오지 않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앉아 있었지. 만호정 앞에서 내 번호를 부르더라고. 아까 인원파악을 했는데, 숫자가 모자라면 나를 차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거야.

근데 측간 옆에서 나를 기다리던 그 순경이 알면서도 모른 척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순경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렇게 해서 내가 화장실에 숨어 있는 동안 인원파악이 대강 넘어갔어. 번호를 부르고 나서 사람들을 데리고 이장 집으로 밥 먹으러 간다는 소리만 들었어.

나머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가만히 밖을 보니까 쥐새끼 하나도 안 보여.그래서 변소에서 나와 집으로 간 거야. 그래서 살았어.
집에 와서 밥을 먹고 한참 있으니까 저기서 산을 넘어가더라고. 산을 넘어갈 적에 "인민군들이 쌀을 숨겨 놓았다. 그걸 가지러 간다."고 하는 거야. 그런 줄로만 알았지. 동박굴재에서 쉬어간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앉혀 놓았다 그래. 거기서 죽인거지. 영태하고 서찬수, 서상빈이는 도망쳐서 살았고 김영희는 시체속에 숨어서 살았어.

그때 사실 우리 마을에 부역한 사람은 거기에 없었어. 다 입산했거든. 조금만 의심해도 다 입산해서 산에서 살았지.

봉황이 진주를 늦게 했는데 그날 온 경찰은 봉황지서 순경들하고 의경들이었어. 공명이는 장흥유치 할 것 없이 깊은 산골에 주둔해서 인민군 토벌을 했는데 거기 부대장이었지, 여기하고는 상관없는 데 온거야. 이날 경찰이 2~30명 정도 왔다고 봐야지.

선동에 그 때 약 95가구 또는 97가구가 살았어. 그렇게 많은 집을 경찰이 어떻게 다 수색을 해. 공포탄을 쏘면서 집에 남아 있다가 걸리면 다 죽인다 하니까 떨려서 다 나온거지.집이 동네하고 떨어져 있고, 내가 자수자 명단에 있으니까 우리 집에서 나만 불려 나갔어.

안학봉씨가 분주소장이었는데 왜정 때 면에서 면서기를 했어. 안학봉씨 아버지는 선동에서 소작료를 몇백 가마씩 받을 정도로 부자로 살았지. 안학봉씨가 조금 거만했다고 할까? 분주소장 할 때 긴 칼을 차고 다녔다 그래. 닛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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