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이 즉위하면서 조정 대신들에게 개혁적이면서 참신한 인물을 찾아 이조판서로 추천해 올리라는 전교가 떨어지자 대북파 이이첨과 정인홍이 자기 사람을 이조판서로 추천하였다.

조정 인사를 총 책임질 이조판서 자리를 이이첨과 정인홍이 자기 사람으로 심어 놓으려 했으나, 조정 대신들은 실세 정인홍의 위세에 눌려 모두 입을 다물었다.

당시 상황을 “입을 다문 채 두려움에 위축되어 수수방관하면서 숨소리조차 못하고 있었다. 임금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의 몸 보존하는 것만을 좋은 계책으로 여겼다”라고 광해군 일기는 적고 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대구부사 정경세가 선조의 실덕과 함께 ‘이조판서 제수가 잘못되었다’는 소장을 올린다.

선조말년 지방관으로 나가는데 값이 정해지고 이조판서 제수 또한 부당하다는 내용이 담긴 정경세의 상소가 올라오자 조정이 발각 뒤집어졌다. 그는 만언소(萬言疏)를 올려 사치의 풍습을 경계하고 인물의 전형을 공정히 하며 학문에 힘쓸 것을 강조하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선조의 실덕(失德)을 꺼리김없이 말하는 대담성까지 보였다. 선조시절 변방으로 나가는 장수와 수령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정해진 값이 있었는데 말년에 이르러서는 극해 달했다며 선조의 잘못된 정사를 과감없이 적어 올렸다. 광해군 일기에 당시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경세는 멀리 시골에 근무하는 지방관으로서 상소하여 직접 반대하고 숨김없이 다 말하였는데, 말 뜻이 모두 강개하고 준절하니, 뭇 소인배들은 간담이 떨어지고 선비들은 기운이 솟았다. 그리하여 온 조정의 벼슬아치들로 하여금 임금을 섬기면서 기쁘게 하기에만 급급한 것이 부끄러운 행동임을 알게 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위로는 왕의 노여움을 사고 아래로는 권력자의 뜻을 거슬러 장차 어떤 화를 닥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대신(大臣)의 구원에 힘입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 나주목사 정경세가 쓴 글씨

나주목사 2차례 지낸 유석증, 정경세 상소에 사직서 제출

목을 내놓고 정경세는 상소를 올렸지만 눈치만 보고 있던 조정 대신들은 오히려 광해군에게 정경세을 문책해야 한다고 간청하였다. 장령 윤양과 유경종은 이조 판서 제수와 관련해 ‘삼사에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라는 정경세의 상소 내용을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반려됐다.

나주목사를 2차례 역임했던 지평 유석증 또한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다며 체직을 아뢰었다.
지평 유석증의 임무는 백관을 규찰하고 백관의 비위사실에 대해 탄핵감찰권과 일반범죄에 대한 감찰권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유석증은 광해군에게 “제수할 때에 공의(公議)를 만족시키지 못했는데, 신은 시종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지금 정경세의 기롱을 받았으니 신의 직을 체차시켜 주소서”라고 사직을 원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정경세를 제수할 때 이런 저런 공론이 오갔는데 시종 입을 다물고 있어 오늘에야 정경세에게 기롱을 당했다며 유석증이 원통해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 2년 후에 유석증은 나주목사로 제수되었다.

유석증은 나주목사로 부임된 지 2달만인 광해군 2년 10월 23일 체직되어 올라가지만 우연의 일치처럼 그 뒤를 정경세가 이어 받는다. 정경세는 12월 22일 나주목사로 부임하게 된다.

정경세의 상소를 본 광해군은 정경세를 잡아 국문한 뒤 법에 따라 처단하려는데 대신들의 의견은 어떠한 가를 묻는 전교를 내린다.

“정경세의 실덕 가운데에서는 이제까지 돌아보지도 못했던 선조(先朝)의 실덕과 잘못된 정사를 주워 모아 있는 힘을 다하여 차마 들을 수 없는 패만(悖慢)한 말을 하였다. 내가 그 소장을 그대로 안에 두려고 하다가 다시 조정의 신하들이 그의 죄악을 알지 못할까 염려되었기 때문에 하달하고 나의 뜻을 간략하게 말했던 것이다. -생략- 내가 비록 노둔하고 졸렬하지만 선왕을 위해서 치욕을 씻는 일은 그만둘 수 없다. 정경세를 잡아다 국문한 뒤 율에 따라 처단하고자 하니, 이러한 뜻을 대신들에게 물어보고 아뢰도록 하라”

다음날 금부에서 정경세가 단지 숨김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려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사이에 경솔하게 망발을 한 것이라며 선조의 잘못을 주워 모으려는 데 뜻을 두지 않은 것 같다고 아뢴다.

이어 금부에서는 ‘말한 것 때문에 죄를 얻은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므로 넓은 도량으로 포용해 주워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우의정 심희수 또한 “비록 변변치 못하지만 정승으로 있으면서 백발이 성성하니, 어찌 감히 일개 나이 어린 후배를 감싸주어 국은(國恩)을 저버린 자가 되는 것을 달게 여기겠습니까”라며 언로를 막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경세를 용서해 달라고 요청한다. 광해군의 전교가 떨어진 다음날 정경세의 상소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경세의 상소는 조금도 거리낌없이 잘못된 정사를 그대로 말했을 뿐 별로 패만한 말을 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왕은 그가 숨기고 있는 것을 건드린 것 때문에 화를 내고는 소장 가운데에 있는 ‘변장(邊將)과 수령(守令)은 모두 정해진 값이 있는데, 선왕 말년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는 말을 죄안으로 삼아 반드시 끝까지 추궁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대간 중에 어떤 이는 왕이 뜻에 영합하고 어떤 이는 왕의 위엄에 겁을 먹어 모두 패만하다고 피혐하는 말을 하였다. 만일 대신이 보호해 주지 않았다면 경세는 처벌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왕이 간하는 것을 막고 스스로 성인인 체하다가 결국 전복되는 데에까지 이른 것은 왕의 죄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의 신하들도 임금의 악을 조장한 잘못을 면하기 어렵다”

‘정경세의 상소는 잘못된 정사를 그대로 말했을 뿐이라며 패만한 말을 한 것이 없다’라고 평가한 뒤 광해군이 선조가 말년에 변장과 수령은 모두 정해진 값이 있다는 대목을 빌미로 정경세를 추궁하려 했던 것이라고 적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조정 대신들이 광해군 뜻에 영합해 정경세를 처벌해야 한다는 자들이 많았으나, 이원익과 심희수 등 대신들이 나서 그를 보호해 주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대신들이 의논을 들은 광해군은 “특별히 너그럽게 법을 적용해 먼 지역으로 내쫒아 그와 같이 한 나라에서 살지 않으려 한다“며 정경세를 먼 지역으로 내쫓으라고 지시하고 이를 대신들에게 의논하라고 하였다.

다음날 좌의정 이항복과 우의정 심희수가 나서 먼 지역으로 내쫓기보다는 정경세를 사판(仕版)에서 삭제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이 있는 뒤 정경세는 1년 뒤 동지사로 중국을 다녀왔으며, 광해군 2년에는 대사성을 거쳐 나주목사로, 다시 전라감사로 승진하였다.

전라감사로 영전된 그는 그 뒤 도정(道政)에 전념하였으나, 이듬해 8월 정인홍 일당의 사간원 탄핵으로 해직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세상이 바뀌자 홍문관부제학으로 제수된 그는 그 뒤 대사헌과 승정원도승지, 예조판서, 이조판서, 대제학 등 관직을 거쳤다.

인조에 의해 대제학 장유가 나주목사로 좌천되자 정경세가 장유를 대신해 대제학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인조실록에 따르면 인조 7년(1629) 대제학 장유(張維)를 특별히 나주목사(羅州牧使)에 보직(補職)하고 삼공(三公)․육경(六卿)과 의정부 동․서벽(東西壁)․한성판윤(漢城判尹)을 불러서 그 후임(後任)을 회권(會圈)하라고 명하였다.

우의정 김유가 일찍이 문임〈文任 대제학〉을 지낸 까닭으로써 의논하여 정경세(鄭經世)를 천거하였다. 유석증에 이어 나주목사가 된 정경세는 인조 때에는 나주목사로 좌천된 대제학 장유의 자리로 천거되어 대제학에 오른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주가 있었던 정경세는 7세에 ≪사략 史略≫을 읽고 8세에 ≪소학≫을 배웠는데, 불과 절반도 배우기 전에 문리가 통해 그 나머지 글은 스스로 해독할 정도록 뛰어났다. 

≪참고문헌≫ 愚伏集, 國朝榜名錄, 朝鮮儒敎淵源. 朝鮮王朝實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