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

애기주먹만한 우박덩이가
쨍쨍한 유월에 쏟아져 내렸다
푸나무 무성한 가지 마구잡이로 잘라내듯
어린 배 주렁주렁하던 배나무는 회초리가 되고
깨 모종이며 이제 막 땅 맛들이기 시작한 고추며
내일부터 따낼 담뱃잎이 몽땅 사라져버렸다
아직도 지켜낼 무엇이 있다는 듯
허수아비가 된 대궁만 하늘 바라고 서있다
칠팔십 고개 넘어온 어르신들도
이런 우박 난생 처음이란다
누군가 크게 잘못해서
하늘이 역정 낸 게 틀림없다고들 수군대는데
우박덩이에 맞으니
덕석몰이에 몽둥이찜질 당한 기분이다
나랑 저 배나무랑 저 어린 고춧대랑 깨 모종이랑
담뱃잎이랑 모두 잘못된 누군가의 옆에 서 있다가
산벼락 맞은 것일까?

허리 펼 틈새도 없이 새벽부터 밤중까지
지극정성으로
밭 갈고, 제초제하고, 물주고, 모종 옮겨 심고.......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혹여 나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