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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대학교 문화인류학전공 교수 윤 형 숙
홍어는 흑산도라는 특정 섬지역과 연결되어 이야기 된다. 홍어가 나오지 않으면 전라도 잔치라 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홍어의 특산지로 흑산도를 암묵적으로 전제한다. 흑산도는 국내산 홍어, 국내산 중에서도 진짜 맛을 가진 홍어의 산지라는 중층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홍어가 전라도를 대표하는 상징어가 되는 과정에서 생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조리와 소비의 과정이다. 현재 한국에서
소비되는 홍어의 대부분이 수입산이다. 그러나 수입산 홍어의 대량 소비가 홍어는 전라도 토속음식이라는 이미지를 약화시키기보다 오히려 강화시키고
있다. 홍어의 유통, 조리와 소비과정에 전라도(토속음식의) 정체성이 전략적으로 부여되고 전유되기 때문이다. 음식의 소비는 음식이 주는 영양과 맛
뿐아니라 문화적 의미를 소비하는 행위가 된다.
이 장에서는 전통적으로 전라도 지역에서 홍어가 어떤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소비되었으며, 외국산 홍어가 수입되고 지역의
토속음식으로 상품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전라도 정체성이 어떻게 부여되고 강화되는가를 살펴본다. 특히 전라도의 일상 음식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되어 소비되던 홍어가 ‘별미' 토속 요리(cuisine)로 상품화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맛의 동질화와 차별화가 동시에 진행되는가를 논한다.
동질화는 전라도 지역 안에서 다양하게 조리되고 소비되던 홍어가 전라도식 '삭힌' 홍어로 단일화되는 과정과 전국적 소비자를 위한 ‘삭힌' 정도의
조정을 동시에 수반한다. 홍어 요리맛의 동질화는 ‘진짜' 전라도식 음식을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를 창출한다. 이는 맛의 명인과 고수의 출현을
가져온다. 마지막으로, 차별화된 ‘진짜' 홍어요리는 전라도라는 역사적·공간적 정체성을 통해서만 완성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홍어의 독특한 맛이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에 관한 ‘이야기'들이 생기며, 진짜 맛의 체험은 전라도로의 여행을 통해서 완성된다.
이 글을 위해서 홍어 판매자와 홍어 전문 식당주인과의 인터뷰 자료, 홍어 소비의 경험과 기억에 관한 전라도 (출신)
사람들과의 인터뷰 자료, 홍어요리에 대한 각종 인터넷 및 신문 자료 등을 활용한다.
2. 홍어요리에 대한 경험과 기억
홍어는 언제부터 전라도를 대표하는 토속음식이 되었을까? 홍어는 전라도 사람들만 먹었을까? 전라도라는행정지역 경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홍어를 먹었을까? 전라도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홍어를 요리해 먹었을까?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수원도호부」의 토산물 조에 병어, 석수어(조기) 등과 함께 홍어가 나오는 것을 보면 적어도
조선시대에 홍어는 전라도 사람들만 먹거나 전라도에서만 잡히는 어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국내산 홍어의 산지는 흑산도로 알려져 있지만
국내산 홍어는 흑산도뿐 아니라, 군산, 인천, 대청도, 소청도, 백령도 등 서해안 일대에서 잡힌다. 오랫동안 홍어판매업에 종사해온
안○현(52세)은 흑산도보다 오히려 대청도, 백령도에서 홍어가 더 많이 잡힌다고 한다.
홍어는 때로 부안 위도, 군산, 인천 등에서도 잡힌다고 한다. 홍어가 잡히는 부안 위도, 군산, 인천,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 등 서해안 일대는 조기잡이 배가 다니는 곳이기도 하다. 홍어는 조기 및 다른 어류 등과 함께 잡히는 어획물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함평 출신 한 여성(임○성, 85세)은 “옛날에는 함평의 주포까지 커다란 중선배가 들어와 조기를 막 펐는데 그 때에 홍어도 많이 들어
왔다. 주포에 중선배가 들어와 고기를 막 푸면 생선 장사를 하는 여자들이 ‘다라이’로 받아와 동네마다 이고 다니면서 곡식과 바꾸어 갔다”고
말한다. 홍어배가 아닌 일반 고깃배도 다른 고기와 함께 홍어를 잡거나 판매했음을 시사한다.
서해안에 사는 전라도 사람들은 홍어뿐 아니라 다른 여러 종류의 어류를 소비하였다. 특히 조기는 영광, 함평, 부안 등
전라도 서남해안 지바에서 많이 소비되었다. 조기는 영광 칠산도에서 많이 잡혔으며 조기로 조기부꾸미, 조기식혜, 조기젓, 자발굴비구이, 굴비장아찌
등 각종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조기를 말려서 만든 영광 굴비는 임금님에게 바친 전라남도의 진상품이었다. 조기뿐 아니라 숭어도 전라남도 지역의
특산물로 진상품이였는데 함평, 무안, 장흥, 진도, 강진, 해남, 순천, 낙안, 보성, 광양 등에서 많이 났으며 숭어는 “조선왕가의 전용 어
재료라 할 정도로 찜, 회, 구이 등으로 쓰였다.
전라도(출신) 사람들에게 전통 전라도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홍어와 함께 자신들이 명절 혹은 잔치 등 특별한 때와
일상적으로 많이 먹어본 음식을 든다. 낙지, 상어, 꼬막, 비빔밥, 조기, 홍어 등 다양하다. 영광이 고향인 한 여성(조○, 61세)은 전라도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홍어에 앞서 조기를 든다. 영광에서 조기가 많이 났고, 임금님에게 바친 진상품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북 군산, 김제,
전주 출신의 여성들(박○남, 62세; 안○순, 57세; 김○랑, 57세)은 홍어와 함께 상어를 제사나 명절에 많이 먹는 대표적 음식으로 꼽는다.
상어로 ‘꼬챙이’, 찜, 전 등으로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기억에는 상어는 홍어 못지않게 중요한 명절 음식이었다.
그러면 전라도 지역에 사는 사람들 대다수가 홍어를 먹었을까? 전라도 안에서도 홍어는 목포, 무안, 영암, 나주, 광주
등 영산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많이 먹었다. 여수, 순천, 광양 등에서는 홍어를 먹지 않았다(이○좌, 57세, 남, 박○양, 60세,
남). 여수, 순천, 광양 등은 홍어를 먹지않고 (황)가오리를 먹는 ‘가오리’권이라고 한다. 여수 출신의 한 남성(이○좌, 57세)은 “목포
사람들은 냄새 나는 썩은 고기를 뭐하러 먹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삭힌 홍어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는가 하면, 순천 출신의 한 여성(이○숙,
58세)은 광주로 시집와서 “시어머니가 항아리에 짚을 깔고 홍어를 삭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