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에 대한 나의 생각

논설위원 김노금

남들이 다 들 못 참고 못 보는 꼴도 제법 너그럽게 보아주는 성격이라는데도 유난히 호칭에는 면도날처럼 민감한 사람임을 어쩌랴. 상대가 별 생각 없이 부르는 호칭에도 나름의 기준과 잣대를 대고 기어이 내 생각을 말 해버리는 것 때문에 인간관계가 서먹해 지는 것을 몇 번이나 경험하고서도 나는 다시 또 이런다.

다행히 지금까지 언니, 동생 하는 사이로 편하게 지내는 사이 이기에 말하기 그리 껄끄럽지 않은 십여 년 전의 일이 생각난다. 지역에 큰일을 도모하려 내려오신 어느 분의 부인께서 당신의 일을 도와주시는 이들을 부를 때  몇 번의 만남이 있은 후임에도 누구씨, 누구씨 하고 부르는 것 이었다.

▲ 논설위원 김노금

그 분들은 한 목적을 이루어가기 위한 조직안의 구성원들로서 따지고 보면 여성임에도 모두가 작으나마 지역의 회장직함을 가진 분들이었다. 00씨를 00씨로 호칭하는 것을 나이도 어린 사람이 이래라 저래라 한다는 것이 격에 맞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기어이 한마디를 해버렸다.

그 분은 모든 여성들이 결혼과 함께 자기 이름이 잊혀져가고 누구 엄마, 누구 아내로 불려지는 상황에서 자기 이름이 불려 지는 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냐며 오히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셨다.  별일 아닌 일을 가지고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는 눈치였으나 나도 양보할 수만은 없었다.

결국 그 분에게 인간관계의 기본인 것이 호칭인데, 나름대로는 다들 자기 지역에서 회장님 소리 듣고 평생을 사신 분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입장의 당신이 부를 호칭은 정말 아니라고 냅다 소리를 질러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불러 준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 진심으로 당신을 위하는 충정에서 드리는 말씀이니 한번만 그 분들을 그렇게 불러 드려 보라고 했다. 효과는 생각 보다 컸었다. 몇 번의 만남에서도 중구난방, 누구씨들로 술렁이던 조직체가 하나로 빠르게 결속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호칭으로 불림 받은 이들이 눈에 띄게 당신 주변에서 몸과 마음을 다해 충성해 주었고 나아가 그분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일순에 잠재우고, 지금까지도 그분을 다정하고 따뜻했던 좋은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 좁은 생각은 이렇다. 누구씨를  누구씨로 부른다는 것은 그야말로 공적인 자리에서나 행해져야 할 일이며, 관공서에서도 동사무소에 주거지 변경하러 가서 서로가 서로를 모를 때에나 있을법한 일이라 생각한다. 

콩나물 천원어치를 사면서도 고객님 님자를 평생 들어왔고 할아버지 보다는 어르신으로 불러드리는 것이 예법에 맞는다는 것을 공감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내가 누군지를 뻔히 알면서, 또 당신과 나와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지역공동체속의 일원이 분명함에도 누구씨로 불린다는 것은 정말이지 정나미 떨어지는 일이다. 이런 만행을 저지르는 이들은 자기 자신이 쥐꼬리만한 권력의 자리에 있다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혐오스럽다.

하물며 내 앞에서는 누구누구님이라며 곰살을 떨던이가 다른 사람, 특히나 나와 그의 30여년 다되는 세월의 함수관계를 다 아는 이들 앞에서 전혀 별 볼일 없었던듯 드라이하게 누구 씨로 호칭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머리끝이 쭈뼛해 진다. 예닐곱살짜리 아이들도 어머니 어디 가셨니와 느그 엄마 어디 갔니의 미묘한 차이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그분들의 인품을 상기하는 것을 봐왔다.

상대를 배려하는 한마디의 따뜻한 말은 삶을 포기하고 자살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녹여 주는 것을 잘 알지 않은가. 역으로 생각해 보면 이말은 부주의한 호칭 한마디가 평생을 공들여 쌓아온 인간관계를 깨어 질 수 있게도 한다는 말이 될 것이며 그 사람의 인격에도 치명타를 줄 수 있다는 것임을 명심 할 일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대를 높여주는 고상한 인격은 참으로 향기롭다. 그 향기는 말하지 않아도 사람의 입을 타고 천리만리를 간다. 톨스토이는 단 한번 만난 거지에게 조차도 형제여! 라고 불러주었다는 일화로 오늘날까지 우리 가슴을 훈훈하게 해 주고 있다.

자신에게 힘이 주어 쥐어졌다고 생각 하시는 분들께 삼가 다시 아뢴다. 주인 된 이들이 당신들에게 부여해준 것 그 것.... 그것이 힘이라 생각하신다면 목에 힘주지 마시고 부디 나보다 못한 이들을 찾아 배려하고 나누는데 쓰시옵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