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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대학교 문화인류학전공 조교수 박 정 석
수입홍어가 들어오면서 가격이 하락된 다음에도 그 가격의 하락폭만큼 소비재로서의 홍어의 가치는 하락하지 않았다. 홍어의 가격이 하락하자
홍어를 쉽게 소비할 수 없었던 일반인은 고가의 홍어(흑산홍어) 대신에 수입산으로 홍어의 맛과 ‘품격’을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1) 목포와 홍어
남도의 음식을 소개하고 있는 책자에서 송수권은 홍어의 맛을 ‘그로테스크한 맛’이라 정의하면서, 이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목포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송수권이 소개하고 있는 목포의 대표적인 홍어 요리집은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이 식당에는
방이 두 개 있다. 두 방의 벽면마다 관광객들이 홍어를 맛보고 난 뒤 감상문을 쓰고 코팅 처리한 글귀들이 붙어 있으며, 각종 대중매체에 소개된
자료를 ‘메달’처럼 액자 속에다 장식해 두었다. 그냥 홍어가 아니라 ‘목포의 홍어’를 맛보기 위해 들린 사람들이 남긴 소감문이다. 벽에 붙어
있는 많은 글귀들은 홍어를 ‘맛’봄으로써 목포의 맛 혹은 남도의 ‘멋’을 체험했음을 확인하거나 확인시켜주는 일종의 기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호를 통하여 사람들이 홍어를 단지 음식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인지하든 그렇지않든) 홍어에 담긴 관념까지 소비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목포에서 홍어는 ‘홍탁삼합’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된다. “전라도 사람들은 홍어의 맛 중에 ‘목포 홍탁’을 제일로 친다.”는 말처럼 목포에서
홍어는 술과 함께 먹는 안주로 널리 알려졌었다. 다시 말하면 홍어는 밥과 함께 먹는 대중적인 요리라기보다는 술과 어울리는 안주거리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또한 홍어는 묵은 김치 그리고 돼지고기가 합쳐져 ‘삼합’이라는 이름을 덧붙이게 된다. 발효시킨 홍어가 잔칫상에서 삶은 돼지고기와
김치를 만나 새로운 ‘음식’으로 둔갑한 것이다. 홍어의 얼큰하고 싸한 맛을 막걸리와 함께 먹으면서 잔치 분위기를 만끽했던 기억은 홍어를
잔치음식에서는 빠져서는 안 될 음식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목포는 다물도와 태도 등 흑산도 인근바다에서 포획한 홍어를 소비하는 중간 기착지였다. 당시 홍어는 가마니에 담겨 여객선이나
화물선(상고선)으로 목포까지 운송되어 공판장을 통하여 여러 지역으로 팔려 나갔다. 50년 전쯤에는 태도에서 들어오는 홍어가 많았지만
30년전쯤부터는 대청도에서 잡은 홍어가 인천을 통하여 목포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태도에서 잡은 홍어를 목포에서 팔다가 다 처리하지 못하면
영산포로 싣고 가서 팔았기 때문에 영산포의 홍어는 삭은 것이 많았다.
스물여섯 살 경에 홍어(중매인)를 시작했죠. 그때는 태도 홍어가 많았습니다. 한 가마니에 열 마리씩 담아 배에서
팔고 그랬어요. 그 시장통 앞에까지 가서 팔고. 태도에서 오는 그 배가 며칠씩 걸렸어요. 그라고 그 중간에 내가 한 마흔 넷 다섯 살 무렵에
대청도 것이 많이 나왔어요. 태도에서는 주낙으로, 대청도는 건착 배 그물로. 백령도까지 가서 물건을 받아오고. 대청도나 저 어청도까지 받아서 또
차로 내려서 기차로, 물건을 화물로 보냈습니다. 태도 배는 내가 쉰다섯 살 경에 없어졌어요. 홍어가 인자 없어졌어요. 그 이후 쉰일곱에 수입산
홍어를 받아 왔죠. 칠레산 홍어를. 내가 제일 먼저 수입산을 받았죠. 쉰일곱에.
박○양, 남, 73세, 동명동 홍어상인
현재 수입산 홍어는 포클랜드,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등지에서 들어오고 있다. 수입산 홍어 중에서 먼저
들어온 것이 칠레산 홍어이며, 그것은 수입산 중에서 홍어 맛이 국내산과 가장 비슷하다. 그래서 수입산 홍어는 대개 칠레산으로 통용되었다. 국내산
홍어의 고갈로 인해 처음에는 북한산이 중국을 통해 국내로 수입되었다. 홍어의 맛은 생산지와 생산시기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관리와 숙성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홍어는 빙장(氷藏)을 하게되면 찰기가 나오지 않고, 얼음을 쓰지 않고 냉동을 시킨 것은 홍어 몸의 수분이
빠지면서 찰기가 남는다고 한다. 겨울에 나는 홍어는 조금 더 맛이 있고 여름 홍어는 살이 없어 맛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런 맛의 차이는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된 것으로 ‘전문인’이 아니면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지역정체성과 결부된 음식은 ‘특별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지역의 다른 음식과 차별성이 있으면서 역사성을 지닌 음식인 경우에는 그
상품적 가치가 더해진다.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도 입맛에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음식은 본래의 사회문화적 맥락과 상관없이 그 지역의
‘문화적’ 음식으로 자리를 잡는다. 음식은 입으로 먹지만 그 음식의 독특함을 음미하는 것은 사람들의 인지기능에 속하는 영역이다. 그래서 음식의
문화적 차별성은 음식 본래의 맛의 차이 못지않게 중요하게 작용한다. 목포에서 홍어는 홍어 그 자체의 맛 때문이라기보다는 목포라는 지역의 문화적
차별성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세발낙지와 함께 목포의 상징적 음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2) 동명동 어시장과 수입홍어
목포에서 홍어소비는 홍어를 수입하면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지고 또한 관광문화의 활성화로 인해 부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목포에서 수입산 및
국내산 홍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수산물시장은 여객선 터미널과 이어지는 도로변에 위치한 동명동 어시장이다. 동명동 어시장(현재의
목포종합수산시장)의 전신은 동명동 부두에 가건물 형태로 조기와 병어 등을 파는 어물전이었다. 1980년대 초반부터 형성된 어물전은 해안도로
확포장 사업으로 가건물이 철거되고 지금의 자리로 이전되면서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다. 2004년 재래시장 환경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동명동
어시장’에서 ‘목포종합수산시장’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아케이트 설치, 상하수도 정비, 전기소방공사 등을 통해 현대식 시장으로
탈바꿈되었다.
목포 동명동 어시장은 지금처럼 홍어를 전문으로 하는 어시장이 아니었다. 홍어는 뒷전에서 일부 상인들이 낱개로 취급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동명동 어시장의 현대화와 새로운 여객선 터미널 신축 등과 맞물려 동명동 어시장은 흑산도와 홍도를 찾는 관광객들과 외지인들이 한번 쯤 들리는
곳으로 변화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