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대학교 문화인류학전공 조교수 박 정 석

맛은 객관적인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또는 요리한 음식에 따라 달리 느끼는 주관적인 판단이자 경험이다. 즉, ‘맛’이란 개인적인 느낌이면서도 동시에 축적된 경험의 소산이기에 문화적으로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흑산도라는 이름과 홍어라는 상품은 서로 연계되는 이미지이다. 대청도산 홍어에 비해 흑산도산 홍어는 두배 정도 비싸게 팔린다. 그래서 흑산도 근해에서 작업을 하는 홍어잡이 배는 모두 흑산도 수협에서 홍어를 위판한다. 다른 곳으로 싣고 가서 팔 경우 흑산도에서 받는 가격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에서 거래되기 때문이다. 흑산도에서 위판하고 있는 어선들에서는 아예 자신들이 잡은 홍어에다 명함을 붙이기도 한다. 이렇게 생산지와 생산자를 표기하는 방식으로 상품가치를 높이고 상품의 ‘순수성’을 보장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대청도나 인천에서 나오는 홍어하고 외관상 전혀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단지 그냥 맛에서… 삭혔을 때는 잘 모르고 생것으로, 막 잡았을 때 그때는 우리는 알 수 있어요.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는 살이 두텁고 찰져요. 그라고 껍질도. 이쪽(흑산도) 사람들은 껍질을 벗겨놓으면 맛 없다고 안먹어요. 그란디, 저 대청도 홍어 같은 경우는 살이 엷은데 비해서 조금 그 찰진 맛이 덜하고 물기가 많아. 그리고 껍질이 엄청 딱딱하고 껍질을 씹을수가 없어요. 여기 홍어는 껍질채 홍어를 먹는다니까. 여기 사람들은 껍질 벗겨버리믄, 뭔 홍어를 껍질을 벗기느냐고 맛없다고 안먹어요. 겉보기에는 표가 안나도 그래도 먹은 본 사람들은 알데요. 자주 먹어 본 사람들은.
(이○수, 남, 45세, 홍어배 선장)

홍어가 흑산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은것은 홍어가 일상화되었거나 선호되는 음식이어서가 아니라 ‘흑산도’와 관련해서 외부인들이 ‘생각하기에 좋은’ 매개체였기 때문이다. 홍어는 흑산도라는 지리적 ‘장소’와 관련된 음식이다. 흑산도에서 홍어는 ‘음식’으로서가 아니라 생산지라는 이미지와 강력하게 연계되어 있다. 즉, 흑산홍어는 그 생산지인 ‘지역’은 강조되지만 특정한 방식으로 조리된 ‘음식’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비교적 최근까지 흑산도에서 홍어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취향이나 선택의 문제였지 사회적 혹은 집단 정체성의 표시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흑산홍어가 흑산도의 ‘향토’ 요리로 등장한 것은 대중매체의 힘이 크다. 흑산도에서 ‘삭힌’ 홍어요리로 널리 알려진 사람은 예리에서 조그만 식당 겸 술집을 경영하고 있는 손○○(여)씨이다. 여러 작가들과 TV에 소개되면서 ‘흑산도’의 홍어요리 식당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식당이다. 대중매체의 지방문화 소개와 맞물리면서 등장한 소위 ‘정통’, ‘향토’, ‘원조’, ‘할매집’ 등의 말과 어울리는 인물로 손씨와 그녀의 식당이 소개되었다. 흑산도에서 홍어요리 특히 ‘삭힌’ 홍어는 일상 음식이 아니었으며, 대중매체에 의해 소개될 당시 손씨는 흑산도에서 유일하게 홍어를 술과 함께 팔았을 뿐이었다. 대중매체에 홍어요리가 소개된 이후 흑산도에서 홍어를 요리해서 파는 음식점이 하나 둘 늘어났는데 그곳에서는 주로 홍어국과 홍어회를 취급하고 있다.

아까 저 흑산도 아주머니 그 집에서 그냥 그 당시에 많이 팔도 안했어. 홍어 그냥 막걸리식으로 특별한 안주할 것이 없으니까, 그냥 사시미로 해서… 전문으로 안하거든. 그래서 막걸리도 팔고 그렇게 해서 그냥 사시미로 발효된 거. 인자 손님이 오고 하다보니까, 홍어잡이 인자 세집으로 늘어난거예요. 홍어집이 세집으로 늘어나면서, 유람선에서 계속 선전하면 아! 홍어다 해가지고 자꾸 먹고 하다보니까… 또 식당하다가 홍어도 이렇게 (팔고).
문○채, 남, 63세, 흑산도 주민

흑산홍어의 ‘순수성’은 흑산도 주민들의 입장에서 생성되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흑산도의 ‘바깥’ 육지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인식이 거꾸로 흑산도로 전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원래의 생산지에서 벗어나 단일화 되고 균질적인 음식 체제에 대한 불신 혹은 부정적인 시각이 새로운 형태의 ‘순수성’에 대한 향수를 만들어 내었다. 따라서 ‘시골’ 혹은 ‘원산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사실상 도시적인 가치들인 셈이다. 이와 더불어 흑산홍어의 순수성에 대한 강조와 집착은 순수하지 못한 즉, 수입산 홍어에 대한 반발과도 맞물려 있다.

3. 수입홍어와 목포

세계화는 주로 쉽게 이송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으며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 적합한 문화적·사회적 혹은 상징적 물질의 교환을 통하여 발생한다. 눈에 드러나는 문화의 구성요소로서의 음식은 이런 두가지 기준을 충족시키는 매개물이다. 여러 언론 매체들이 생산지가 곧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운송수단의 발달로 인하여 지역과 나라를 넘어서 시장이 형성된다. 그 결과 소비자들과 생산과정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생산지가 음식의 맛을 결정한다는 문화적 차원의 담론은 점차 실종되었다. 냉장·냉동 시설의 발달과 수송과 상업조직의 거대한 변환 때문에, 음식이 원래 계절에 따라 다르고 기후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망각하게 되었다.

수입 자유화 이후 국내에서도 외국산 수산물 유통이 급증하게 되었다. 국내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던 홍어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수입이 늘어났다. 홍어는 수입 식품이면서도 국내에서 가공을 거치면서 지역의 명칭을 상품명처럼 달고 소비되고 있는 음식이다. 홍어에 대한 선호는 과거에 종종 그것을 먹었고 또 즐길만큼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과거에는 홍어를 구하기 어려워서 먹어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 새로운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생겨난 것일수도 있다. 홍어가 수입되기 이전에는 품귀현상으로 인하여 고가에 거래되면서 홍어가 일부 상류층의 소비재, 즉 선물로 소비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