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나주목사이야기
나주목사이야기28- 원두표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218호] 승인 2006.06.23  00:00:0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적곡 납입실적 저조해 감사에게 형벌 받아
인조반정 일등 공신인 그가 곤장을 맞았을까?

 

나주목사 시절 흉년이 들어 관아에서 백성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적곡(積穀) 납입실적이 형편없어 전라감사로부터 벌을 받은 적이 있다. 적곡 실적이 부실할 경우 고을 수령과 색리(色吏)에게 돌아가는 형벌은 곤장이었다. 곤장을 맞은 뒤에는 으레 관직을 버리는 수령이 많았다. 때문에 인조반정의 일등공신이었으며,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원두표가 전라감사가 내린 곤장을 맞았는지 궁금해진다.

 현종 3년 2월 3일 진휼어사 남구만과 이숙이 미곡을 받고 공천을 면천해주는 일에 대해 대신들과 의논하는 자리에서 우의정 원두표는 "나주목사로 재직할 당시 적곡 실적이 저조해 전라감사로부터 벌을 받았다"라고 이야기한다. 조정대신들이 모인 가운데 어사 남구만은 흉년이 든 관계로 조세 납부실적이 저조해 백성을 구제하기 힘들다며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지를 물었다. 이에 현종은 "적곡 납입 실적이 더욱 형편없이 부실한 고을은 벌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으니, 수령은 어사가 잡아들여 결장(決杖)하거나 파출(罷黜)하고, 색리는 형추(刑推)하도록 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러자 남구만은 수령이 곤장을 맞은 뒤에 그 직책에 그대로 있지 않고 으레 관직을 버리는 자가 많다며 염려스러운 점을 말한다. 이때 우의정 원두표는 "신이 나주목사로 있을 때 또한 이 벌을 받았는데, 지금은 이 법을 제대로 시행하는 감사가 대체로 드무니, 날로 기강이 무너지는 것을 점칠 수 있습니다"라고 과거 경험을 현종에게 이야기하면서 수령들의 기강이 흐트러 진 점을 꼬집는다. 원두표의 말을 들은 현종은 "멋대로 관직을 포기하는 자는 등급을 올려 죄를 논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리게 된다.

 이 기사를 통해 우의정 원두표는 당시 벌을 받은 것으로 말하고 있지만, 영광군수 시절 2명을 죽였어도 모른 체 했던 전라감사가 전주부윤을 거쳐 나주목사까지 오른 원두표에게 곤장을 내렸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또한 앞서 어사 남구만이 염려했던 것처럼 일반적으로 곤장을 맞은 수령은 수치심 때문에 수령직을 그만 두었다. 하지만 원두표는 나주목사를 그만두지 않고 곧바로 전라감사로 자리를 옮긴 점을 감안할 때 실제 곤장을 맞았다기 보다는 형식상 맞은 것으로 처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녹훈된 원두표는 '논공행상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반정을 일으킨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1625년(인조3) 전주부윤이 되었다. 전주부윤을 거쳐 나주목사 부임한 그는 전라도 관찰사로 자리를 옮기는 등 쾌속 승진을 하게된다.

전주부윤으로 부임하기 전 나주목사로 천거
최명길 추천, 이조판서 김류 반대로 좌절


 전주부윤으로 부임되기 7개월 전에 이조참판 최명길이 원두표를 나주목사로 천거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인조반정 때 정사(靖社) 1등공신에 책록되어 정치적 전성기를 맞았던 이조판서 김류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최명길이 원두표를 천거하자 이조에서 원두표 신상에 대해 보고한다.

"원두표는 영광군수로 있을 때에 꽤나 잘 다스린다는 명성이 있었으니, 중요한 지역에 임명되어 치적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조정 안에 재주가 원두표보다 뛰어난 사람을 구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원두표만한 사람이라면 또한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원두표가 이미 죄를 용서받았다고는 하지만 서용(敍用)하라는 명이 없었으니, 아래에서 감히 멋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위에서 처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조에서 재주는 뛰어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인재가 조정안에 많이 있을 뿐 아니라, 6개월 전에 살인사건을 저지른 원두표를 나주목사로 임명하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내비친다. 이조의 보고를 받은 현종은 원두표를 나주목사로 임명하는 것을 보류하고 7개월 뒤 전주부윤으로 보낸다. 그 뒤 전주부윤으로 재직한 다음에서야 나주목사로 부임하게 된다.
이 사건과 관련해 조선왕조실록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때 판서 김류가 보고했는데, 그 뜻이 실은 최명길이 개인적인 감정을 쓰는 것을 배척하는 것이므로 최명길과 김류의 원한 관계가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원두표가 왕옥(王獄)에서 나오자마자 최명길이 큰 고을에 임명하기를 청했으므로 역시 이를 그르게 여겼다"

 실록의 기사처럼 6개월 전 살인죄를 저질러 왕옥에 갇혔던 그는 풀려나자마자 큰 고을인 나주목사로 천거된 것이다. 여기서 원두표가 당시 개혁정치가였던 최명길의 심복이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살인사건을 알아보자. 원두표가 영광군수로 있을 때 하루는 군사를 거느리고 정읍에 들렀는데 개인적 친분이 있는 군관(軍官)의 청탁을 받아 관노 부부를 장살(杖殺) 한 일이 있었다. 숨진 부부의 친척이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정장(呈狀)냈지만 원두표의 기세에 겁이나 정읍현감과 전라감영에서 모른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건은 사헌부에 발각되어 원두표는 옥에 갇히고 정읍현감 이인부는 파직, 감사는 추고되었다.

당시 최명길과 김류가 권력의 핵심부에 있으면서 파워게임을 했던 터라 원두표와 이조판서 김류 간의 사이도 그리 좋지 않았다. 김류와 불편한 관계는 그 이전에 이미 있었다. 영광군수 시절 원두표가 도성을 떠날 때 말을 타고 곧바로 빈청 문밖까지 들어와 병조판서 김류를 만났는데, 군수 직분인 그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지금의 국방부 장관에게 공손한 말투로 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격인 승지 홍서봉에게는 반말 투로 하대를 하기까지 하였다.

이 이야기가 사간원에 들어가자 "조정에서 믿는 것은 명분인데, 명분이 한번 무너지면 아래에서는 능멸하고 위에서는 위세가 깎이게 될 것"이라며 궐정(闕廷)에서 말을 타고 병조판서에게 능멸한 죄를 물어야 한다고 강하게 나왔으나, 크게 죄를 주지 않았다.

이야기를 본론으로 돌아와 이조판서 김류는 이조참판 최명길 간의 미묘한 원한관계와 원두표의 좋지 않은 옛 추억이 떠올라 원두표를 나주목사로 제수하는 것을 반대했던 것이다. 

 -다음 호에 '원두표' 이어집니다. -
 

신광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특정나주시장후보 박근혜 정부 부역논란
2
나주지역 특정 조합장 아들 '아빠 찬스' 논란 가중
3
이게 공정을 담보한 나주시장 선거냐?
4
나주시 인사발령 2022. 1. 7.자
5
2022년 나주투데이 이철웅 편집국장 신년사
6
나주시의회 인사권 독립, 올해부터 본격 시행
7
성북동 쌈지공원 웬 율정정?
8
분란 끝나지 않은 나주배원협
9
나주시, 29일 청사 건물 임시 폐쇄…청내 직원 코로나 확진
10
‘입시 돌풍’ 한국에너지공대⋯정시 경쟁률 95.3대 1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전남 나주시 예향로 3803 (이창동) 2층 나주투데이  |  대표전화 : 061)334-1102~3  |  팩스 : 061)334-1104
등록번호 : 전남 다00334   |  발행인 : 윤창화  |  편집인 : 이철웅  |  e-mail : njt2001@hanmail.net
Copyright © 2013 나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