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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금하 서상록(徐相錄) 17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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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호] 승인 2009.08.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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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발발, ‘피스톨을 만들자’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9년 일본 경제 사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해 4월 일본 전국에 3,8074개에 달하는 극우 산업보국회(産業報國會)가 생겼으며, 이들은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일동포들은 언제 그 여파에 휘말려 희생될지 모르는 위기감이 팽배하였다. 재일동포들은 저마다 불안에 떨었다.

“이처럼 숨 막히는 상황에서 우리 동포에게 과연 어떤 미래가 다가올 것인가? 우리를 묶는 어떤 운명의 사슬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에 메여 태어난 것 아닌가!”

서상록은 우선 주위에서 눈치 채지 못하게 동포들의 민생고를 해결해 주며, 자녀들의 학자금을 대주는 일부터 실천에 옮겼다. 경조사가 있으면 빠짐없이 찾아가 그들과 기쁨과 슬픔을 나눴다.

1941년 6월, 미국이 일본의 만주군 증강을 적대적 행위로 받아들여 경제 분야에 대한 제재 조치를 강행하였다. 그때까지 일본은 국내석유 사용량의 90%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경제 제재로 석유수출을 중단하였다. 이와 함께 미국 내 일본인들의 자산을 미국 정부의 관리 하에 두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에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

석유도 석유지만 일본인들은 재미 일본인의 자산 동결에 특히 과민반응을 보여 이를 ‘억류’조치로 받아들였다. 고노에 내각은 그 즉시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고, 도죠오 히데끼(東條英機) 대장이 이끄는 내각이 이어받았다.

일본 국민의 여론은 물 끓듯 하였다. ‘미국이 이미 일본을 적성 국가로 간주하고 나섰으니 당연히 응징해야 한다’는 주전파(主戰派)의 논리가 점차 설득력을 얻어갔다.

도죠이는 이러한 국민 여론을 교묘히 이용해 한 판의 도박에 나섰다.

그해 12월 8일 하와이 진주만에 대한 일본 전투기의 대대적인 공습이 벌어졌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반도에 일본군이 기습 상륙을 강행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동아시아에서의 국지전을 넘어서 본격적인 세계대전에 휘말리자 일본 내에서의 기초 물자 생산은 이전에 비해 현격이 줄어들었다.

일본 정부는 1943년 철강, 석탄, 경금속, 선박, 항공기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권한을 만들의 전쟁의 총책임자인 도죠오에게 바쳤다. 이른바 ‘전시행정특례법’이 그것이었다.

대기업 대다수가 군수 산업에 매달리다 보니 생활을 위한 민수용 기간산업은 점차 낙후되었다, 그나마 도시까와 공업과 같은 중소기업이 있었으므로 그 부족분을 채울 수 있었다.

갈수록 전쟁터는 넓어지고 전사자가 늘어나면서 병력이 부족해지자 징병제도가 강화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노동력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게 되자 이번에는 강제징용제도가 시행되었다.

1943년 8월부터 남자는 이발사, 차장, 사무원 등 17종에 대한 취업이 제한되었고, 여성이 이를 대신하도록 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군수 생산과 관계없는 업종은 강제로 폐업 내지 전업되었고, 종업원은 강제징용으로 차출되어 갔다.

이처럼 징용된 근로자 수는 패전 직전에 무려 616만명에 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천공업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급기야 인력난이 닥쳐오더니 억센 남자들도 감당하기 힘든 금속 성형 작업을 급히 모집한 여자와 노약자들에게까지 맡겨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군부의 지원을 받겠다고만 하면 문제는 일거에 쉽게 해결될 수 있었지만 상록으로선 선뜻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상록에게도 군부의 손길이 뻗쳤다.

남태평양까지 전선이 확대되고 전투가 점차 치열해지던 1943년 초여름 평소 오오사까의 공업지대를 관장하던 해군 장교가 상록에게 접근해 왔다.

“전방에서 지원 요청이 빗발치듯 하니 피스톨을 만듭시다. 내 말대로 한다면 당신 마음에 맞는 공장도 마련해 주겠소.”

오오사까에서 가까운 거리에 마에쓰루에 있는 해군 기지에 이미 상당한 시설과 인력을 집결해 놓은 상태에서 자신이 책임지고 그 인력과 시설을 무상으로 제공해줄 테니 기술이나 제공하고 이득을 챙기라는 제의였다.

상록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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