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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 지석강에 '엄마야 누나야' 노래비 제막월북 작곡가 안성현 선생 기리는 노래비 건립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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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호] 승인 2009.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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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에 곡을 붙인 음악가 고(故) 안성현 선생(1920~2006)을 기리는 노래비가 건립됐다.

'엄마야 누나야 노래비 건립추진위원회'와 나주시는 지난 30일 남평 지석강 솔밭유원지에서 노래비 제막식을 가졌다.

이날 제막식에는 고 안성현 선생의 미망인 성동월 여사(87.여)와 최인기 국회의원, 신정훈 나주시장, 강인규 나주시의회 의장, 주민 등이 참석했다.

노래비는 나주시의 예산 지원과 주민 모금 등 3000만원을 들여 엄마와 누나의 모습을 형상화한 청동상 옆에 높이 3.15m 크기로 제작됐다.

   
▲ 지난 30일 남평 지석강 솔밭유원지에서 ‘엄마야 누나야 노래비 제막식’을 가졌다.
조각은 동신대학교 김왕현 교수가 맡았다.

고 안성현 선생은 남평 지석강 솔밭유원지 백사장을 연상해 '엄마야 누나야'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20년 나주 남평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 동방음악대학을 졸업하고 광주사범학교를 거쳐 조선대, 전남여고, 목포 항도여중에서 재직했으며, 부용산, 낙엽, 앞날의 꿈, 진달래, 내고향 등 23편의 작품을 남겼다.

특히 안씨가 목포 항도여중에 근무하던 1948년에 작곡, 호남에서 애창됐던 '부용산'은 월북 인사가 곡을 만들고 빨치산에 의해 널리 불렸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묶이기도 했다.

월북 무용가 최승희씨 남편의 조카이기도 한 안씨는 6·25전쟁 당시 최씨와 함께 월북, 그동안 북한에서의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난 2006년 4월 86세로 타계한 사실이 전해지고 나서 재조명 움직임이 일었다


안성현의 집안 두루 예술가의 피 흘러

안성현은 1920년 7월 13일 전남 나주시 남평읍 동사리에서 태어났다. 남평초등학교를 제21회로 마치고 청소년기를 이곳 고향에서 보낸 그는 17세가 되던 1936년말 아버지 안기옥(安基玉)을 따라 함경도 함흥으로 이거해 갔다.

안성현의 아버지는 자신만의 가야금 산조를 창안할 만큼 독보적인 국악인이었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머나먼 북쪽으로 주거지를 옮긴 것이다.

집안 아저씨뻘이라는 안막(安漠)은 리얼리즘 문학 비평가이며 전설적 무용가 최승희와는 부부사이였다. 그러니까 안성현의 가계는 두루 예술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함흥 이거 이후 안성현은 일본 유학길에 올랐고 도쿄(東京) 도호음악학교(東邦音樂學校) 성악부(테너)를 마쳤다. 곧바로 귀국한 안성현은 고향으로 돌아왔고 이웃한 광주로 옮겨 전남여자고등학교, 광주사범학교(현 광주교육대학교), 조선대학교 등에서 강의하면서 바쁘게 생활하였다.

안성현을 기록에 남긴 『신동아』(2001년 11월호)의 글은 호주에 살고 있는 윤필립 시인의 집필이며 ‘벌교〈부용산〉노래에 얽힌 사연’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글쓴이는“꽃다운 나이에 죽은 여동생을 추모하면서 쓴 시 ‘부용산’(芙蓉山)에 월북음악가 안성현이 곡을 붙이고 그 노래를 빨치산들이 즐겨 불러서 일명‘빨치산의 노래’가 됐다는 이유로 한 평생을 쫓기고 얻어맞고 천대받다가 끝내 이역만리 호주로 떠나와야 했던 박기동(朴璣東) 시인을 소개”한다는 집필의도를 담고 있다.

박기동 시인은 1957년 목포사범 국어교사를 끝으로 교직을 떠나 서울로 이주했고 이루 형언할 수 없었던 가시발길의 생애가 이어졌다. 툭하면 가택수색과 연행, 구금을 당해야 했다.

1980년에 겪었던 죽음 직전까지의 사연 등이나 생계유지를 위해 번역일을 하면서 몇 차례 시집출판을 시도했건만 ‘번번이 원고를 빼앗기는 사태가 벌어져’ ‘자유의지와 더불어 다시 한 번  시창작을 시도해보겠다는 궁여지책’으로 1993년에 호주로 이민 간 사연 등을 소상히 소개하고 당초 1절 밖에 없었던 ‘부용산’의 가사가 52년 만에 2절을 추가하여 태어나게 된 사연 등도 담겨져 있다.

그러면서 박기동의 안성현과의 소식소통 유무, 안성현의 월북으로 인한 신산한 세월에 대한 소감 등등이 술회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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