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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중국의 상징, 대역사의 경항 대운하!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 역사의 산물이 운하다. 운하를 타고 북경까지 가는데 5일이 걸린다. 오늘날은 신속한 철도, 고속도로가
있고 빠르고 안전한 고속전철은 겨우 5시간에 주파한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운하는 대량의 화물운반과 오직 걸어서 다녀야 했던 그 시절에는 다리도 아프지 않았던 환상적인 꿈의 이동 통로였던
것이다.
중국역사상 남북을 연결하는 최초의 대동맥이라 하겠다. 양자강 삼각주 일대의 풍부한 경제력은 중국 전체로 번져갔다. 물을 이용할 줄 아는
자는 새로운 세상을 열었던 것이다.
지역별 문화 교류에도 크게 이바지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었다. 운하는 견디기 힘든 결점이 속도의 늦음이었다. 물론 장점도 많았다. 대량의
운반이나 낮은 비용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이 또한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지 못했다.
19세기 청나라 중엽에 남북 간의 해운업이 발달하고 신속한 철도가 부설됨으로써 운하의 입지는 좁혀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황하강의
물줄기를 새롭게 변경함으로서 산동성으로 흘러가는 물의 양이 적어지고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이에 따라 운하의 운행이 뜸해지고 운하의 수심이 얕아지면서 큰배의 운항이 조금씩 어려워졌다. 급기야는 전운하의 통행이 금지되기에 이르고
말았다.
수초만 무성했던 수로를 확장하고 다시 파낸 것은 중국이 건국된 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의 일이었다. 동원된 삽과 곡괭이는 흙으로
메워진 수로를 다시 파내고 물이 흐르게 했다.
평지보다 더 높아져서 천정천이라 부르는 강의 바닥을 파내는 구간별 준설이 끝나자 폭을 고르게 넓히며 시설도 보완했다. 수심이 낮아진 곳은
물을 채워 남북으로 배가 다닐 수 있게 했다. 접안 시설과 새로운 항구도 건설했다. 새로운 시설의 갑문시설로 튼튼한 철제 선갑(船閘)도 만들어
현대화했다.
대운하의 새로운 활력을 기어이 되찾은 것이다. 세계최초의 운하는 이렇게 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운하를 통과할 동안에는 굳이 걸 필요가 없어서 최부의 망가진 몸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제자리에 서서 걷기조차 힘들었던 다리의 상처는
거의 회복되었다. 호송군이 정한 일정에 따라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강물이 적은 곳에서는 배를 소가 끌거나 사람들이 밀기도 했다. 수문을 막고 물이 찰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운하는 중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남에게 내보이며 자랑한 만큼 자존심을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넉넉하고 편안하기로는 운하가 제일이라 여겼던 것이다.
수정호를 탔던 사람들은 이미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상황에서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자족하며 행운으로 여겼다. 최부 일행 43명 모두가
건강한 것이 무엇보다 안심이었던 것이다.
지나가는 곳마다 볼거리가 많았지만 진행 중인 여행코스를 정지시킬 수는 없고 틈틈이 그를 따르는 배리들을 시켜 살펴오게 했다.
다행이 광주목리 정보나 화순현리 김중, 이정, 나주배리 손효자는 한자를 깨우친 자들이라 보이는 글자는 그대로 적어와 가는 길이 어디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최부 일행은 어느새 양자강변의 태호(太湖)에 이르렀다. 강소성과 절강성 사이에 자리한 호수로 중국에서는 가장 큰 담수호인 것이다. 태호는
우공에 나오는바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태호는 저정(抵定)했다.”
태호가 양자강변에 널따란 호수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이다. 강의 줄기가 이리저리 변해도 끄덕 없이 제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뜻이다.
타이후[太湖]는 오른쪽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갈대밭을 지나면 타이후의 찰랑이는 물이 반짝거린다. 경항 대운하를 지나가는 길에서는
필수적으로 타이후를 거쳐 지나가야 한다.
태호를 가로지르면 소주에 닿는다. 제주도 보다 더 큰 호수는 이름도 너무 커서 태호다. 항주에서 서호를 보고 크다는 느낌에 취했던 최부는
두 눈에 전부가 보이지도 않고 끝이 어디인지 도대체 짐작이 안 되는 호수는 넓고 크기만 했다.
태호 수면지름의 둘레길이가 17km라니 놀라울 뿐이다. 너무 커서 놀랐던 서호가 1400개가 더 있어야 태호가 된다는 말에는 아연 질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
태호 속에 들어있는 크고 작은 섬이 72개나 된다고 하니 호수의 크기가 짐작된다. 최부 일행을 인솔하고 있는 관리의 말에 의하면 태호의
길이가 5백여 리가 넘는다고 허풍을 떨었다. 바다 같은 호수는 그래서 오호(五湖)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호수의 가운데에는 동동정산(東洞庭山)과 서동정산(西洞庭山)이 있었다. 포산이라고 하는 이 산에는 높다란 바위가 겹겹이 둘러쳐져 있었는데
수면은 저 멀리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태호의 동북쪽에는 영암산(靈岩山)이 솟아 호수와 어울렸으며 아래를 굽어본다. 산의 정상에 있는 바위들의 그림자가 수면에 떠올라 그늘로 다시
보여준다. 옛날에 이곳이 오나라였을 때 연석을 가져와 산에 관와궁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태호에서 10리쯤 가면 고소산인데 연이어진 산세는
태호를 둘러싸 품고 있었다. 호수 북쪽으로 아득하게 보이는 산은 횡산이라고 했다.
태호를 둘러싼 파(坡)에 이르렀다. 파는 호수 안에 물을 넣거나 흘러나가게 할 때 열고 닫는 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무거운 무쇠로
만들어 양쪽에서 동시에 여닫을 수 있게 했다.
호수를 막은 제방은 호수의 남북으로 길게 쌓아 만들었는데 그 길이가 50여m 쯤 되었다. 수홍교라는 다리에는 무려 400여 개의 홍문이
줄지어 이어졌는데 긴 것은 30m를 넘는 것도 있었다.
태호파를 따라 북쪽으로 한참을 지나갔다. 축성문 앞에는 누각 식으로 된 14층탑이 보였다. 멀리서 바라보니 마치 하늘나라로 올라가기 위한
사다리인양 아슬아슬해 보였다.
최부 일행은 주절문을 경유하여 송릉역에서 배를 멈추고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육지 속에 이렇게 큰 호수가 만들어지다니, 양자강이 만들어
낸 삼각주평야는 물길 따라 굽이지며 만들어진 자연의 창작품이자 예술품이라 하겠다.
최부 일행이 지나간 운하에서 돌로 만들어진 큰 홍문 70여 개를 지났다. 역과 현청은 모두 태호 안에 있었는데 청사는 돌로 만들어진 주춧돌
위에 돌기둥을 세위 잔잔한 호수 면에 그림자로 떠올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가끔 호수 위를 왕래하는 배들은 마치 호수를 포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높은 돛대를 묶어서 동네 가운데 새운 듯하다. 일행을 태운 배의
속도가 떨어지자 기운껏 노를 저었다.
삼리교와 영은암을 지나 윤산호를 거슬러 올라갔다. 서쪽으로 아늑한 산이 있어서 최부가 이름을 물었다.
“저기 능선이 부드러운 산은 무슨 산입니까?”
“사자산(絲子山)이라 하오.”
그 북쪽에 있는 산이 고소산(姑蘇山)이었다. 5백18년 전에 최부가 타고 갔던 경항 대운하의 푸른 물은 오늘도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