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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금하 서상록(徐相錄) ⑫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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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호] 승인 2009.04.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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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

부친상을 당해 5년여 만에 집으로 돌아 온 상록은 그동안 일본에서 고생한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하였다.

"지금은 오사카 공장에서 기술을 배워 예전처럼 고생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남들은 10년 가까이 탄광에서 일을 해도 그 모양 그 꼴인데, 상록은 5년도 안되어 큰 공장에서 일하는 기술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눈덩이처럼 부풀려 퍼져나갔다. 마치 상록이 큰 성공이나 거둔 것처럼 동네에 소문이 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매파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 앞에 줄을 서다시피 했고, 상록의 어머니는 그들을 맞아 일일이 응대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상록은 아내를 맞을 형편이 못되었다.

"빌어먹을 대책이 없으니 아직 아내를 얻을 자격이 없습니다. 같이 살면 자연히 애도 낳을 터인데 아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없으니 아버지 될 자격도 없는 셈이지요."

매번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면서 매파를 놓으려는 동네 아주머니를 돌려보냈지만 친척 아주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집으로 찾아왔다.

상록은 마지못한 척 친척 아주머니가 수차례 일러준 집을 직접 찾아 나섰다. 이번 기회에 직접 찾아가서 아예 말이 나오지 못하도록 자신의 의사를 밝힐 참이었다.

집에 들어서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듯 아주머니가 마루에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 첫눈에도 아주머니의 인상이 낯설지 않았고 집안도 편안한 분위기였다. 상록은 잘됐다 싶어 아주머니 앞에 무릎을 조아리고 앉아 일본에서의 생활과 지금은 무일푼이라는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제가 일본까지 간 것은 단순히 돈벌이가 아니라 기술을 배우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운 좋게 호구지책은 마련했을지 모르나 아직 배움을 마치자면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그래서 결혼은 도저히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일언반구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오랜 시간동안 상록의 이야기를 듣던 아주머니는 어느 겨를엔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구먼"

그러더니 갑자기 안방에 대고 딸의 이름을 불렀다.

"봉금아!"

그러자 방 안에서 처녀가 몇 발짝 나오더니 옆모습만 슬쩍 보여주고는 다시 방으로 급하게 들어가는 게 아닌가. 아마 그런 식으로 딸을 보여주기로 미리 약속을 했던 모양이었다.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지만 상록의 가슴이 '콩닥콩닥' 빠르게 띄기 시작하였다.

혼자서 이겨내 온 이국에서의 숱한 날들, 마땅히 붙잡고 하소연 할 사람도 없는 처지에 상록 또한 사람이 그립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 여자가 첫눈에 맘에 들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정중히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방금 전에 보았던 처녀의 옆모습이 아른거렸다. 다소곳이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그 아주머니의 인자했던 눈빛도 떠올랐다.

어느새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집으로 가면서 가끔 발길을 멈추었지만 그때마다 상록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목표를 이루기에는 까마득한데……."

여러 가지 잡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사정은 그게 아니었다.

이미 친척 아주머니를 통해 어머니에게도 그 처녀에 대한 얘기가 자세히 들어갔다.

그때까지 상록의 의견을 존중했던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마음을 돌려보라고 권유하였다. 상록은 거듭 고개를 가로었고 그때마다 어머니의 권유는 점점 더 강해졌다.

"장차 살아가는 문제는 네가 하자는 대로 할 터이니 일단 혼사부터 치르자."

잠깐이나마 그 처녀의 옆모습을 보고 마음이 흔들린 터에 어머니마저 적극적으로 나서자 상록은 못이기는 척하며 결혼을 승낙하였다.

하지만 상록은 결혼에 동의하면서 조건을 내세웠다.

"아직은 일본에서 집을 구하고 살림을 할 형편이 못되기 때문에 당분간 고향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이 그 조건입니다."

결혼식을 올린 지 1주일 만에 상록은 혼자 일본으로 향했다. 21살에 결혼한 상록은 3년이 지난 뒤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그때서야 아내를 일본으로 데려갔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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