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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금하 서상록(徐相錄) ⑪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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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호] 승인 2009.04.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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곗돈을 모두 날리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니면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낸 상록은 근검, 절약하는 태도를 잃지 않았다. 터럭만큼의 여유도 없는 생활이었지만 근근이 모은 돈만이 일본에서 상록이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끼니 한번 먹어보지도 못하고 모은 돈으로 상록은 계를 하였다. 과거에는 '계'를 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행처럼 번져 있었다. 지금도 담보나 신용 없이는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기 힘든 서민들이 순번을 정해 놓고 목돈을 챙기는 '계'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상록이 '계'를 넣고 있는 와중에 계가 깨졌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사실을 확인해 보았더니 곗돈을 가지고 잠적한 계원이 자신이 보증한 사람이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계가 깨질 것에 대비해 한사람씩을 보증인과 피보증인 관계로 묶어 놓았던 터라 상록은 이 사고의 뒤처리를 도맡게 되었다.

상록이 물어야할 돈이 자그마치 120원이었다. 120원이면 1년 월급을 다 모아야 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17살의 어린나이에 일본으로 건너와 5년 동안 피땀 흘려 모았던 돈을 모두 배상해야 했던 상록은 화가 치밀어 올라 잠이 오지 않았고,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너무 억울해서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얼마나 아끼고 모은 돈인데...."

며칠 밤을 뜬눈으로 밤을 새운 상록은 공장에 휴가를 내고 도망간 계원을 찾으러 나섰다.

며칠 동안 수소문한 끝에 잠적한 계원의 집을 알아냈다. 그러나 집에 들어 닥치고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무허가 빈민촌에 자리한 그의 집은 지붕이고 벽이고 시늉뿐인 움막이었다.

전등도 켜지 못한 어두운 방에는 계원의 아버지인 듯 한 노인을 비롯해 온 식구가 하나같이 누워 앓고 있었다. 간신히 그의 아내를 일으켜 앉혀 사정을 물었더니 이리 물리고 저리 뜯겨서 집안에 1원은 고사하고 당장에 끼니를 끓일 쌀 한줌도 없었다.   

보증을 선 돈을 달라 하기는 커녕 상록은 오히려 자신의 수중에 지니고 있던 돈마저 내놓고 되돌아섰다.

"가족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같은 동포끼리 피해를 준 일은 화가 났지만 동포들 간에 이런 악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힘을 모아 돕는 예가 더 많았다.

상록은 엇비슷한 직종에 종사하던 공태수 등과 함께 '오성회(五姓會)'라는 모임을 가졌다.

공태수, 최종기, 김증억, 여판주, 서정국, 서상록 등 6명이 모인 오성회는 다섯 성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이 있었다. 오성회 멤버들은 상록이 120원을 물어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했고, 위로해 주었다.

수년간의 고생이 몽땅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불운이 겹친 뒤 얼마 후 다시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 날아왔다.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영산포 우체국에서 날아온 전보는 아버지께서 별세하셨다는 내용이 간략히 적혀 있었다.

전보를 받은 상록은 뼈가 저려오는 듯 하였다. 온갖 정성으로 아들을 기르느라 고생을 하시다 평생 이렇다 할 효도 한 번 받아 보시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분이 아버지였다.

상록은 즉시 '장례 기다린다'는 답신을 보냈다. 서둘러 장례 준비를 해주면 그동안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곗돈을 사취하고 잠적한 계원의 가족들에게 수중에 남은 돈마저 털어주고 난 다음이라 당장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마저 없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이래 가장 힘들고 어처구니없는 순간이었다. 이날처럼 상록은 자신이 한심해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동포는 역시 달랐다. 상록의 사정을 전해들은 오성회 회원 공태수가 찾아와서 선뜻 200원을 내놓았다.

"내 평소 자네 효심이 어떤 줄 익히 알고 있었네. 이런 때 돈을 아껴서야 어디 사람 된 도리라고 할 수 있겠나? 아무쪼록 장례를 잘 치루고 돌아와서 다시 열심히 일하게. 훗날 자네가 잘 되면 그게 다 아버님을 위하는 길이네. 함께 가진 못해도 삼가 조의를 표하네."

그의 말을 듣고 눈시울을 적신 상록은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200원과 공씨의 격려야 말로 상록이 그동안 일본 생활에서 쌓아올린 전 재산이었다. 그리고 고향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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