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조선정원(庭園)의 백미 세연정

조선에는 서호보다 크기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넘치는 정원이 있다. 남해바다 가운데의 보길도에 자리한 세연정이 조선최고의 정원으로 항주의 서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조선중기시대 시인이자 지조 있는 선비였던 고산 윤선도(尹善道 : 1587?1671)가 조성한 세연정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가장 뛰어난 걸작품의 정원인 것이다. 섬 속의 낙원으로 들어가면 그곳이 진정 유토피아였음을 알게 해준다.
 
고산(孤山) 윤선도는 한국의 국문학상에 빛나는 불후의 위업을 쌓았고 친환경적인 세연정을 만들어 오늘날에는 조선정원의 교본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그의 자연사랑정신을 읽어볼 수 있게 해준다.
 
어촌에서 유유자적하며 생활한 그는 세연정을 보듬고 있는 보길도 앞바다를 배경으로 ‘어부사시사’가 나왔으니 이는 우리국문학 역사상 가장 빛나는 금자탑이다. 자연과 함께 하고자 했던 고산의 철학이 짙은 향기를 뿜어내며 묻어나오는 어촌의 하루를 시로 읊은 그의 삶을 들여다보자.

우는 것이 뻐꾹샌가 푸른 것이 버드나무 숲인가.
노 저어라 노 저어라.
어촌의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날락하는구나.
찌그덩 찌그덩 어여차
맑고 깊은 못에 온갖 고기 뛰논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맑은 공기가 세연정(洗然亭) 처마사이로 길게 들어온다. 소박한 정자 옆에 서있는 늙은 노송의 그림자가 땅위에 길게 그어졌다. 물에 방금 씻어낸 듯 맑고 깨끗한 풍경이 정자의 이름처럼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그러니까 윤선도가 보길도에 취해 부용동을 발견하고 아름다운 자연에 취해 스스로 지은 정자다. 수려한 산세와 맑고 깨끗한 풍광이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이곳을 처음 찾아왔던 고산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나를 기다려 이곳에 멈추게 했다.”
 
돌다리를 건너 세연정안으로 들어가 보자. 바르게 붙인 문살이 정갈하다. 정자의 사방에는 들어올리는 문을 달았다. 언제든지 격자봉의 산세를 정자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문을 모두 걷어 올리고 걸면 청정한 계곡과 나이든 노송, 그리고 싱싱한 바닷바람이 안으로 파고든다. 기묘한 자연과의 일치된 조화인 것이다.
 
앞산의 스카이라인이 정자위에 올라섰을 때의 눈높이와 일치한다. 산과 정자가 부드러운 조화를 이룬다. 무엇하나 거칠 것이 없는 수수한 것들이 정자와 어울린 것이다. 실제로는 정자를 지으면서 주변경관에 맞춘 것이지만….
 
자연을 읽어낸 고산의 해박한 자연사랑이 정자 안에 고스란히 담겨진 것이라 하겠다. 윤선도가 보길도를 선택한 것은 수려한 산과 개운하게 터진 바다가 그의 소맷자락을 끌어당긴 것이었다.
 
앞산계곡의 골마다 가득 찬 숲, 특히 유자, 산다, 석란, 석류와 오래된 동백나무가 그를 오라고 잡아 들였다. 곁들여 맑은 계곡의 시원한 물이 더없이 좋았다. 숲이 좋으니 물이 맑고 깨끗함은 당연지사인지 모를 일이다. 그가 안식처로 마련한 낙서재(樂書齋)는 아늑하고 편안한 지세이다. 그가 보길도를 보고 표현한 말은 이렇다.
 
“사방이 산으로 빙 둘러 싸여있고 푸른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며 무수한 산봉우리들이 겹겹으로 포개져 마치 반쯤 핀 연꽃과 같다.”
 
고산이 살기로 마음먹은 곳은 부용동이라 명명했다. 윤선도가 점지한 천상의 유토피아였던 것이다. 부드러운 산 능선 따라 길게 이어진 숲이 정을 주고 살만한 곳이다. 낙원이란 모두에게 열린 장소다. 모두의 접근이 가능하고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곳이 낙원이기 때문이다.
 
보길도에 안착한 윤선도는 그를 따르는 모두가 함께 살기를 원했다. 모두의 접근이 허용되어 열린 그곳이 진정 우리들의 낙원이라 하겠다.
 
자신을 다스리며 유유자적할 수 있는 그곳은 작은 섬이 아니라 하늘위에 존재한 지구상에서 유일한 그만의 유토피아였던 것이다. 그가 사랑한 보길도는 보이는 산의 봉과 하찮은 바위마다 인격을 부여하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만의 자연애호 사상이다.
 
세연정에서 고개를 들면 보이는 바위들마다 각각 소은병, 낭음계, 오운대, 독등대, 상춘대, 언선대 등의 이름을 지어 불렀다. 자연 속에 묻혀 자연과 함께 대화하는 생명존중의 친자연사상이다.
 
고산은 보길도의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동네의 이름을 지어 부르기도 했다. 부황, 부용과 배가 닿는 선착장이 있는 청별, 숲 속의 예송, 백도, 정자 등의 예쁜 이름은 지금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그가 살았던 낙서재 건너 개울가에 연못을 파고 집을 지은 후 곡수당이라 하며 흐르는 물소리를 가야금소리보다 더 즐겨 들었다하니 놀랄 정도의 참신한 아이디어라 하겠다. 안타깝게도 세월의 무상함으로 잡초만 무성한 터를 쳐다보며 참담한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행이 산중턱의 절벽위에 지어진 한 칸의 기와집 동천석실이 부용동 제일의 경승지답게 그대로 남아 있어서 억겁의 시간이 그대로 이어진 듯 하여 아쉬움이 따랐지만 나름대로 위안이 되었다.
 
섬 속의 낙원 세연정에 올라 한가운데에 서면 사방을 감싸듯 펼쳐지는 정원의 풍경은 먼저 편안한 마음이 들며 차분해진다. 세연정의 옥담 돌이 매끈하게 닮아진 너럭바위위에 서면 정면으로는 활시위를 당겼던 과녁자리가 먼 곳에 보인다.
 
고산이 활을 쏘며 마음을 추스르고 다스렸던 장소인 것이다. 앞발을 디딜 곳은 조금 깊게 팠고 뒷발자국 자리는 조금 얇게 팠다. 힘의 균형이 맞아야 쏜 화살이 과녁을 맞히는 법이다. 돌에 파인 홈으로 보아 수없이 많은 활시위를 당겼을 것으로 보인다. 산에서부터 흘러내린 개울물을 받아들인 시냇물은 가슴속까지 비춰줄 듯 맑기만 하다.
 
그는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지어 다함께 부르기를 즐겨했다. 이미 마음을 비운 그는 거칠 것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자연에 순응하며 동고동락하는 것이 과제였다.

우리나라의 민간정원은 대개가 풍광이 좋고 산자수려한 곳에 자리했다. 그중 중심 포인트가 되는 곳에 작고 아담한 정자를 짓고 네모진 연못을 만든다. 연못 속에는 둥근 섬을 만들어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신선이 사는 섬으로 여기는 것이 고작이다. 이는 거대한 자연에 대하여 열린 구조라 하겠다.
 
이런 정원은 사방이 둘러싸여있는 밀폐된 의미의 정원(庭苑)이다. 그러나 윤선도가 만들었던 세연정은 자연을 가공 없이 자연그대로 보여주는 정원(庭園)인 것이다.
 
정자에서 나오면 못 주위가 넓고 곡선으로 이어져 도대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세연지는 땅을 파서 만든 연못이 아니다. 산에서부터 흘러내린 물이 작은 개울을 만들고 그곳에 자연 상태의 못으로 이루어진 곳을 세연정으로 꾸민 것이다.

인공을 가하지 않고 냇물이 흘러 왔던 물길 따라 직선과 곡선을 잇대어 흙으로 또는 커다란 바위로 연결했다. 물과 만나는 산기슭은 자연스러운 곡선의 호안으로 잇대어서 순하고 부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