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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금하 서상록(徐相錄) ⑨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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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호] 승인 2009.04.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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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 공장에서 하루

여러 공장을 전전하는 동안 상록은 일본어 구사력이 늘었고 점차 생활에 적응하였다. 그러면서 상록은 기술을 인정받는 전문 직종으로 눈을 돌렸다. 상록이 공부할 시간을 내지 못한 것은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술직 중에서도 당시 오사카에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던 철 공장에 상록은 관심을 가졌다. 상록은 프레스 일이란 일단 배워두기만 하면 일본 사회에서 대우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아였다. 마침내 철공장에 일자리를 얻어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판금을 다루는 프레스를 조작해 여러 형태의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 처음에는 익히기 어려운 데다 사고의 위험도 뒤따랐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일찍부터 프레스 기술을 익힌 기술자들이 많았다. 정해놓은 틀에 따라 기계를 조작하는 게 아니라 작업자의 창의력도 필요한 부분이 있어 상록은 마음에 들었다.

어느 정도 프레스 기술을 터득하자 그제야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공장에서도 프레스공에 대해서만은 단시간에 높은 강도의 일을 한다는 점을 인정해 깍듯이 기술자 예우를 해주었다.

이런 탓에 상록은 오후 5시만 되면 어김없이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상록은 집에 돌아온 후 나머지 시간에 책을 볼 수 있었다.

처음 프레스 일을 했을 때 하루 60전을 받았던 상록은 어느 정도 기술을 인정 받게 되자 주위 공장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90전을 줄 테니 우리 공장으로 와서 일해 달라"

그러나 상록은 주인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거절하였다.

조선인은 의례 자리를 잘 옮겨 다니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로 알려진 인식을 바꿔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탓에 상록은 그 공장에서 무려 8년이나 일하게 되었다.
 
8년 동안 판금 기술의 기초부터 고난도 처리가 필요한 과정까지 마스터하게 되었다. 상록이 훗날 공장을 차리고 독자적인 사업을 벌일 때 이 무렵 배워둔 기술이 단단히 밑받침이 되었다.

철공장에서 일하면서 상록은 공부를 하고 재산을 모으면 언젠가는 사람 행세를 할 날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어려운 일도 참고 견디었다.

상록은 한 푼이라도 더 모아 고향에 보내기 위해 온갖 고생을 참으며 돈을 아꼈다.

검소하게 생활한 덕에 한 달에 나락 한 섬 값에 해당하는 4-5원을 고향에 보냈고, 차차 그 액수를 늘렸다.

당시 상록의 하루 임금은 60전으로 혼자 생활하기에도 빠듯하였다.

고향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그는 군빵 몇 개로 저녁을 때우거나 4전짜리 우동으로 요기하였고, 눈이 가릴 정도로 머리가 길었을 때 이발소를 찾았다. 겨울에는 화로에 넣을 땔감이 없어 담요 몇 장을 덮어 쓰고 지낸 적도 많았다.  

1-2년 후 월급이 늘어나 한 달에 5원을 받게 되었어도 하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루 세끼 밥을 주는 하숙집의 한 달 비용이 자그마치 25원이었다. 철공장에서 일한지 4년이 지나도록 상록은 여전히 다리만 겨우 뻗을 수 있는 자취방에서 자야했다.

공장을 나가면서도 상록은 아침 저녁으로 시간을 쪼개 우유와 신문을 돌렸다. 신문을 돌리다 보면 부유한 일본인 집에도 들어가야 했다. 그런 집에서는 개에게도 흰 쌀밥을 먹였다. 개가 먹다 남긴 밥그릇에 흰 쌀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쓸쓸히 돌아오곤 하였다. 쌀밥조차 마음 놓고 먹지 못하는 자신의 생활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상록은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힘든 하루를 보낸 탓에 마음 놓고 책을 볼 시간이 없었다.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독학으로 공부하기도 하였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상록은 오사카로 간 이듬해부터 학교에 다니기로 작정하였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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