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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금하 서상록(徐相錄) ⑧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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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호] 승인 2009.03.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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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4시간 노동에 몸은 야위어 가고...

오사카 봉제공장에서 숙식 문제까지 해결해 주었다. 상록은 공장 뒷켠에 마련된 좁은 방에서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고 8시부터 일을 시작하였다.

아침 일찍부터 재봉틀 위에 올라가 온종일 구슬땀을 흘려야 작업량을 채울 수 있었다. 작업이 끝나는 시간은 보통 새벽 1-2시였다. 다음날도 그랬고,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반복적으로 하루 14시간 가까이 일을 하느라 날짜 가는 줄을 몰랐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견본과는 다른 제품이 나오기 일쑤여서 잠시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주문 받은 제품과 다르면 그 만큼 상록의 월급에서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그런 탓에 상록은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가면서도 언제나 긴장을 늦추지 않고 하루하루를 이겨내야 했다.

하루는 마치 기계처럼 되어가는 자신을 되돌아 본 상록은 다시 회의가 들었다.

탄광촌에 비해 몸은 편했지만 하루 14시간의 노동 탓에 공부할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은 후 잠간씩 짬을 내어 책을 보려했지만 채 30분도 안되었다. 공부할 욕심에 상록은 공장에서 제공한 숙소를 떠나 하숙방을 잡아보았지만 허사였다.

공장에서 벗어나면 조금의 시간이나마 자신의 뜻대로 이용할 줄 알았다.

그러나 하숙집에서 공장까지 오가는 시간만 허비할 뿐 도저히 공부할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먹는 것도 시원치 않았다. 힘든 노동 탓에 제대로 밥을 해 먹을 수 없어 날이 갈수록 몸이 수척해 졌다. 몸까지 상하자 상록은 고민 끝에 사표를 냈다.

그간 상록의 일솜씨를 눈여겨 본 주인은 막무가내로 상록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처음 미싱 일을 하는 사람치고 너처럼 눈썰미가 있고 옷을 잘 만드는 사람은 못 봤다."

주인은 월급에 불만이 있으면 얼마든지 올려 줄 테니 사람을 구할 때까지 조금이라도 있어달라고 사정하였다.

인정에 약한 상록은 주인의 부탁을 단호히 뿌리치기 어려웠다. 일을 소개해 준 사람의 체면도 있고 해서 막무가내로 뛰쳐나오기가 난처하였다. 하지만 상록은 일본을 오게 된 연유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부를 하기 위해 온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사실 그 공장은 보수로 보나 주인의 인간적인 대우로 보나 비교적 괜찮은 편에 속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로선 그 좋은 일자리를 얻고도 만족하지 않은 상록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자 상록은 공장을 소개해준 소개업자를 찾아갔다.

소개업자에게 일본에 온 이유를 설명하면서 공장을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제가 고향을 버리고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을 찾아온 것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조선에서 할 수 없는 공부를 하고 신기술을 배워 장차 내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는 포부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개해주신 일자리에 머물면 기술을 배우는 보람은 얻을 수 있습니다만 공부는 할 수 없습니다. 소도 부빌 언덕을 보고 눕는다는데 주경야독을 하자면 현재 직장에서는 어려울 듯 합니다. 공장 일을 그만 두려고 하는데 허락해 주십시오."

그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더니 상록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상록의 말처럼 포부를 실현할 수 있는 위인인가를 관찰하려는 듯.

"너의 뜻대로 해라"

그는 다시 찾아와도 좋다고 했지만 염치가 나지 않아 스스로 직장을 구하러 다녀야 했다.

그런 와중에 상록은 알게 되었다.

일본인 고용주들은 한국인이 기회만 있으면 자리를 옮기려는 습성을 지닌 신용할 수 없는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었다. 더구나 일본어를 잘 못해 말이 통하지 많으면 '욱'하는 성미대로 주먹을 휘두르는 일이 왕왕 벌어져 난폭한 사람들이란 대명사가 붙어 다니기도 하였다.

그 후 상록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이런저런 직장을 전전하였다.

한때는 양말 짜는 공장 직공으로 일했고, 박스 만드는 공장에서도 일하였다. 상록은 조선인이 경험해야 했던 생활의 밑바닥을 골고루 체험하였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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