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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윤영근의 소설표해록 - 8. 바다를 지키는 도저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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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호] 승인 2009.03.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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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항주의 서호에 얽힌 이야기들

“칭 가라니요?”
 
그러자 소동파는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며 상대를 무시하는 오만불손한 태도로 말했다.
 
“나는 천하의 선지식을 저울질하는 ‘칭’ 가라니깐요.”
 
아하, 그러니까 남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본다는 말이구나. 자신이 제일 많이 아니까, 별 볼일 없는 다른 선지식들의 법력을 저울로 달아본다니 거만하기 짝이 없는 방자하고 무례한 말인 것이다.
 
화가 치민 선사는 소동파의 고약한 버르장머리를 혼내주고 싶었다. 그는 버럭 같이 큰소리를 질렀다.
 
“으악”
 
깜짝 놀라 넘어질 뻔한 소동파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방금 지른 소리는 몇 근이나 됩니까?”
 
여기서 소동파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른 소리의 무게를 말하라니 어떻게 한단 말인가! 소동파의 콧대는 여지없이 꺾이고 말았다. 아무리 궁리해 봐도 지른 소리가 몇 근인지 알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학문이 최고라는 프라이드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자존심이 크게 상한 그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상총이라는 스님을 찾아갔다. 향기 나는 설법을 듣기 위해서였다.
 
“스님, 설법을 들려주시지요?”
 
“어째서 무정설법은 듣지 못하고 유정설법만 들으려 하는가.”
 
되래 문책당한 꾸지람이 부끄러웠다. 무정설법이란 산이나 나무와 같은 무정물이 설법을 한다는 말인데 얕은 지식의 소동파로서는 알 턱이 없었다. 여태까지 그는 남보다 많이 안다고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는데 허무하게 무너지는 자신이 초라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자기가 잘났다는 오만한 생각도 이제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산이 설법을 하며 그 뜻을 알아들어야 한다니 무서운 내공의 수련이 쌓인 결과라야 가능할 것으로 여겼다.
 
그는 말을 타고 무작정 달렸다. 오직 텅 빈 마음만이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소동파는 마침내 웅장한 폭포 밑에 이르러 귀가 번쩍 열렸다. 드디어 마음의 눈과 마음의 귀가 열린 것이다.
소동파는 비록 출가한 수도승은 아니었지만 아상과 아집을 버리고 텅 빈 마음으로 돌아가서 함께 해온 자연에서 부처님의 모습과 음성을 보고 들었던 것이다.
 
이처럼 깨닫고 보면 세상 어느 곳에서나 부처님을 보고 그의 음성을 듣는 일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못한 범부중생들은 산색은 그냥 울긋불긋하고, 계곡물소리는 한낮 물소리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이다.

항주에서 죽각은 광화원에 있는데 백락천(白樂天 : 772~846)이 세운 것으로 그의 시에 나오는 곳이다. 백거이(白居易)라고도 불렀던 그는 당나라 시대의 유명한 시인이었다. 강주에서 지은 비파행(琵琶行)이란 시가 매우 유명하다.

백락천은 여산에 머물면서 자신의 글을 분류하여 시문집 15권을 만들었다. 백락천도 도연명 이태백과 마찬가지로 여산에서 일생을 마칠 생각을 했다. 그는 벼슬길에서 내려오면 왼손에는 처자를 이끌고 오른손에는 거문고와 책을 들고 이곳에 와서 여생을 마감할 생각이었다. 그는 신선이 되기를 바랐고 구름의 문체를 넣은 신을 만들어 신고 자신의 발아래에 구름이 피어나니 오래지 않아 천당에 갈 것으로 기대했다.
 
백락천이 항주의 자사로 근무하면서 서호(西湖)를 정비하고 백제(白堤)를 쌓았다. 그가 만들었던 항주의 서호와 백제는 지금도 중국제일의 승경으로 손꼽히고 있다.
 
백락천이 벌인 항주에서의 수리 사업은 항주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그는 매사를 몸소 처리했고 힘들고 고생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민생을 위한 일에는 몸과 마음을 다했던 것이다.
 
오늘날 아름다운 서호가 있게 한 것은 백락천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가 3년 동안 항주에 근무하면서 크고 작은 가뭄을 만날 때마다 서호의 수리시설을 정비했다. 부근의 농경지에서는 가뭄을 극복하고 풍요로운 수확을 올릴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로 인해 항주는 나날이 발전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나라의 백락천이라 하면 일세를 풍미했던 유명한 시인이자 뛰어난 경륜을 지닌 정치기이기도 하다. 그는 본래 학식과 총명이 뛰어난데다 벼슬까지 자사의 지위에 올라 자못 그 위세가 당당했다. 우월감에 젖은 그가 항주의 자사로 부임한 후에 있었던 이야기다.
 
하루는 가까운 곳의 사찰에 도림(道林)선사(741~824)라고 하는 이름난 고승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그는 직접 자신이 시험해 보고 싶었다. 도림선사는 지역에서 명망과 신뢰를 한 몸에 받아오는 덕망가였다. 그에 질것이 없다는 프라이드 하나로 그를 찾아 나선 백락천은 고승이 머물고 있는 절로 수행원을 거느리고 찾아갔다.
 
도림선사는 조금 특이한 버릇이 있는 자였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경내에 있는 오래된 소나무 가지위로 올라가 편안하게 앉아서 좌선하기를 즐겼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백락천이 도림선사를 찾아간 그날도 스님은 나무 위에서 좌선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백락천이 나무 아래에 서서 위를 쳐다보았다. 나무 가지에 앉아있는 스님이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갑자기 바람이라도 심하게 불어 떨어진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스님! 너무 위험합니다. 떨어지면 어찌하실 겁니까?”
 
백락천이 소리치자 아래를 내려다보던 스님이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가 더 위험하네.”
 
그 말을 들은 백락천은 어이가 없어서 할말을 잃었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땅 위의 사람더러 위험하다니 전혀 씨알머리가 없는 허세처럼 보였다.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는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자신더러 위험하다니 일종의 협박이라 하겠다.
 
“나는 벼슬이 자사에 올라 강산을 진압하고 또 이렇게 안전한 땅을 밟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이 위험하단 말입니까?”
 
선사는 그의 콧대를 여지없이 꺾어주고 싶었다. 그가 학문과 벼슬에 자만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그의 교만에 넘치는 마음을 이번 기회를 통해 고쳐주고 싶었던 것이다. 선사는 큰 소리로 쏘아 붙였다.
 
“티끌 같은 세상의 지식으로 교만하고 뽐내는 마음만 늘어 번뇌가 끝이 없고 탐욕의 불길이 쉬지 않으니 어찌 위험하지 않겠는가?”
 
백락천은 자기의 마음을 훤히 꿰뚫고 있는 스님이 두려웠다. 자기를 내려다보는 눈매와 자신이 자사라는 벼슬자리에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구김이 없고 당당한 그의 말에 기개가 이미 눌려버렸다. 안되겠다 싶어 꼬리를 내린 백락천은 선사에게 말했다.
 
“제가 평생 동안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나쁜 짓하지 말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는 말이다. 당대의 고승답게 대단한 가르침을 기대했던 백락천은 너무 뜻밖이었다.

오늘날 까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적셔주는 백락천의 명문과 주옥같은 시들은 지행 학일(知行 學一)의 인격에서 우러난 것이 아닐까? 항주의 서호에 얽힌 사람들에게 전해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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