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님’ 이야기를 한 번만 더 하자. 지난번의 ‘님’은 ‘해님, 형수님, 아우님, 박사님, 사장님’에 나오는 접미사 ‘님’이었는데, 이번엔 김추자의 노래 <님은 먼 곳에>에 나오는 ‘님’이다. ‘정든 님’이나 ‘고운 님’, ‘님도 보고 뽕도 딴다’에 나온 바로 그 ‘님’이기도 하다.

그렇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벌써 알아챘겠지만, 이 ‘님’은 모두 틀렸다. 여기에 나온 ‘님’은 ‘사모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이럴 땐 ‘님’이 아니라 ‘임’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옛날에는 ‘나 ?나 졈어 있고 님 ?나 날 괴시니…’나 ‘어름 우희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주글만뎡…’처럼 ‘님’으로 썼지만 현대국어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다. 두음법칙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도 「임의 침묵」이라야 하는 것이다. 문학 작품이므로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논리라면 「님의 침묵」이라는 제목뿐만 아니라 본문도 한용운이 처음 발표했을 때의 상태 그대로 둬야 할 것이다. 이렇게….

님은 갓슴니다 … 黃金의 ?가티 굿고빗나든 옛盟誓는 차듸찬글이되야서 한숨의微風에 나러갓슴니다 …  ?다은 님의얼골에 눈머럿슴니다 … 놀난가슴은 새로운 슬븜에터짐니다. 그러나 리별을 ….

옛말 ‘닉숙다’나 ‘니러나다’를 이제 ‘익숙다’나 ‘일어나다’로 써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님’도 이제는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니 노래연습장 같은 곳에서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었기에…’나 ‘저만치 앞서가는 님 뒤로 그림자 길게 드린 밤, 님의 그림자 밟으려 하니…’, 혹은 ‘님 주신 밤에 씨 뿌렸네. 사랑의 물로 꽃을 피웠네…’로 자막이 나오더라도 ‘님’을 ‘임’으로 고쳐 부를 일이다.

(이진원의 ‘우리말에 대한 예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