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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금하 서상록(徐相錄) ⑥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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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호] 승인 2009.03.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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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 속에 들어가 탄을 캐다'

17살의 나이로 일본행을 선택한 서상록은 시모노세키에 내려 다음날 기차를 타고 우베 탄광촌에 도착하였다. 당신 한국인들의 처음 일자리가 대부분 탄광촌이었다.

우베 탄광촌에는 앞서 온 많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갱에 들어가 탄을 채취하거나 실어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바라크가 늘어선 황량한 탄광촌의 첫인상은 후회였다.

"내가 왜 이런 곳에 왔을까?"

광부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일을 시작하면서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겠다던 계획은 현실과 동떨어졌다.

갑, 을, 병으로 나뉘어져 하루 한차례씩 드나드는 작업장의 환경부터가 열악했다. 지하 수천 미터까지 내려가 탄을 캐는 작업장에는 가스가 가득 차 있어서 언제 폭발할지 몰랐다. 그런데도 안전시설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외마디 소리가 갱을 울리며 들려왔다.

"사람이 죽었어!"

인명사고가 흔한 일이어서인지 주위 사람들은 놀라지도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같은 광부라도 '조선인'은 일본 현지인에 비해 대우가 달랐다. 임금이 일본 노동자의 1/3이하인데다 장시간의 노동이 강요되었다. 탄을 캐는 노역은 그렇다 치더라도, 갱에서 나온 저녁 시간도 상록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광부들의 인사법이란 아침 세수간에서 만나면 대뜸 엉덩이부터 발길로 찼다. 위아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싸움이라도 나면 국적과 고향에 따라 패가 갈라 치고받았다. 일본인과 조선인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하면 불구가 되는 사람만도 수십 명이었고 때로는 사람이 죽는 일도 있었다.

한적한 농촌에서 태어나 향교에서 한학을 배웠던 상록에게 처음 이곳 생활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피로에 지친 광부들은 시간만 나면 술을 마셨고, 그러다 싸우고,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여자를 찾아갔다.

5-60명의 광부들이 한 방에서 비비고 사는 바라크 옆에는 아시아 전역에서 몰려든 작부들이 차려놓은 술집이 즐비했다. 놀랍게도 갱 속에까지 따라 들어와 술을 파는 여자들까지 있었다.

광부들 사이에선 그들을 놀리는 말로 '선녀'라고 불렀다. 하루 두 번 들어가라면 지옥가라는 말처럼 들릴 갱 속 모퉁이에 포도주와 위스키, 싸구려 정종에다 조선 막걸리까지 갖춰놓고 파는 그들에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갈라진 갱마다 요란한 운반차가 지나가는 레일 옆에 과자와 고기까지 늘어놓고 파는 그들은 일본, 중국, 조선 여자들이었다.

교대시간이 되어 갱구에서 만난 노동자들이 주고받는 인사도 매양 그러했다.

"어이, 긴상 죽지 않고 나왔구나. 선녀 잘 데리고 놀았어?"

"망할 인간아!, 이 꼴을 하고 색을 밝혀?"

상록은 나이가 어려서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틈만 나면 일본어 교본을 붙들고 앉아 일어를 배웠다. 그러나 일본에서 외톨박이로 지낼 수도 없었다. 한 두 번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이국에서의 시름을 달래다보니 어느새 동료들과 같은 습성이 몸에 베어가고 있었다.

탄광에서 6개월을 보내고 봄이 찾아왔다.

쳇바퀴 돌듯 탄광생활은 전혀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워낙 씀씀이가 헤퍼져 돈을 모아 도시로 나가겠다는 계획조차 실행에 옮길 것 같지 않았다.  

하루 일환 80전으로는 옷 한 벌조차 사기 어려웠다. 옷이 문제였다.

한겨울에도 떠나올 때 옷차림 그대로 흰 마포 옷만을 입었다. 흰 마포 옷은 갱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탄가루에 금방 새까매졌다. 일을 마치고 나와 세탁을 하고 나면 어머니가 부득부득 챙겨준 바지저고리 한 벌 뿐이었다, 그때마다 상록은 그 옷을 쥐어주던 어머니의 염려가 떠올라 몸 둘 바를 몰랐다.

"조만간 돈을 모아 보내겠습니다. 남보란 듯이 성공해 돌아올게요."

상록은 스스로 자괴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술과 여자로 날이 새고 지는 탄광촌에서 어느 겨를에 돈을 모으고 출세를 한단 말인가?"

봄이 되자 상록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식으로 인생을 허비할 수 없었다.

'썩은 나무에는 글자를 새길 수 없고 무너진 담장에 흙손질 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루라도 탄광에서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상록은 며칠을 두고 어디로 갈 것인지 고민하였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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