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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금하 서상록(徐相錄) ⑤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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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호] 승인 2009.02.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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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팔아 일본행 여비 마련
'탄광에서 일본 생활 시작하다'

일본행을 결심한 상록은 일본에 가서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를 하면 충분히 학비를 벌고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한대로 공부를 못하더라도 최소한 일본어는 배워서 돌아올 수 있지 않겠느냐는 요량이었다.

일본은커녕 경성에도 가본 적이 없었던 상록에게 일본 생활은 그의 뜻대로 될 리 만무하였다. 일본행을 한 달 앞두고 그는 단단하게 마음먹기 위해 머리부터 깎았다. 치렁치렁 늘어뜨린 댕기머리를 자르고 뒷머리와 옆머리는 '바리캉'으로 밀었다.

당시만하더라도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는 유교적 사고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머리를 자르는 것만으로도 집안이 망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갑자기 상고머리를 하고 나타나자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아도 주위의 따가운 눈총이 날아왔다.

향교까지 다닌 녀석이 머리를 잘랐다며 혀를 차는 뒷말이 들려왔지만 오히려 상록은 당당했다. 기왕 일본으로 건너가기로 작정한 마당에 고리타분한 관습에 얽매이기 싫었던 것이다. 

당시 같은 마을에 살았던 사람이 일본으로 건너가 탄광에서 막노동으로 일하면서 돈을 보낸다는 얘기를 귓결로 들었던 뿐 일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경성에도 가보지 못한 봉황 촌놈이 일본행을 결심한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막상 일본행을 결심했지만 당장 배를 타고 일본까지 갈 돈이 없었다. 

상록의 큰 꿈을 들은 부모는 다음날부터 빚을 얻으러 온 마을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그러나 너 나 없이 하나같이 살림이 어려운 터라 아무리 애를 써도 동네에서는 큰돈을 구라기 어려웠다.   

궁리의 궁리를 거듭한 그의 부모는 아들을 위해 밭을 팔아야 했다. 그리고 지난 봄 모를 심어 번 돈과 집에서 기르던 닭, 돼지를 팔아 간신히 이원 오십전을 마련했다. 누나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들은 상록은 가슴이 뭉클했다. 순간 눈물이 솟구쳤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고 반드시 일본에서 성공을 해서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서상록처럼 일본행을 계획한 친구도 여럿 있었지만 여비를 비롯한 경제적 사정과 어른들의 거센 반대로 포기해야 했다. 남의 나라에 가서 설움을 받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말로 타이르거나 부모를 버리고 간다고 윽박질러 친구들의 결심을 겪었다. 유독 상록의 부모만 예외였다. 그만큼 서상록을 믿었던 것이다.

출발을 앞두고 상록은 주위에 일본에 갈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같은 마을에 '품꾼'이라 불리며 남의 집 일을 해주면서 연명했던 김부칠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디서 태어나 언제 철야마을로 들어왔는지 모르는 그는 가족도 친지도 없었다.

김부칠은 예전에도 일본 탄광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는 평소에도 마을 젊은이들을 모아 놓고서 일본 탄광으로 건너가 돈을 모아서 멋있게 살 것이라는 계획을 이야기하곤 하였다. 그런데 마침 김부칠도 철야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상록이 알게 되었다.

김부칠을 만나 일본행을 함께 출발하기로 약속한 상록은 그가 가기로 한 탄광에 가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드디어 출발 날짜가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상록은 짐을 꾸렸다. 짐이라고 해야 도중에 요기할 주먹밥 몇 덩이와 갈아 신을 버선 두어 켤레를 넣은 보자기 하나가 전부였다.

어머니는 장롱에서 새로 지은 바지, 저고리 한 벌을 꺼내더니 일본에 가면 요긴하게 입을 터이니 갖고 가라며 짐을 꾸려 주었다.

"엄니! 일본에 가면 일본 옷을 입을 건데, 필요 없소."

"갖고 가거라. 나중에 옷이 여러 벌 생기더라도 당장 빨고 갈아입을 옷 한 벌은 있어야지."

어머니의 말은 그로부터 불과 며칠 후 일본에 발을 딛고나 서 현실로 다가왔다. 적어도 탄광에서 보낸 겨울 몇 달간은 어머니가 싸준 바지와 저고리가 없어서는 안 되었다. 탄광에서 받은 월급으로는 처음 얼마간은 갈아입을 변변한 옷 한 벌조차 사 입을 수 없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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