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

땡감이 홍시가 되기를 기다리는 여유는
한겨울의 달콤한 추억이다
홍시를 만나려 더듬어보니
상처 없는 감들은 여전히 싱싱하여
쉬이 물러질 기척도 없는데
상처 입은 감들은
검버섯처럼 까만 멍울이 한두 개 앉아
가지에 찍혔거나
굴러서 멍들었거나 했다고
시절보다 앞서 홍시가 되어
붉은 등불에 젖은 사연을 밝히고 있다

마치 노인들이 등이 굽거나
발가락 매듭이 휘어지거나
손바닥에 옹이가 박혀
생의 지도를 온몸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

한 바가지의 물이
우물 밖까지 들어올려지는 동안
바가지에 남아있는 물의 양으로
그 생이 얼마나 흔들렸는지 알아채듯

한 생애의 크고 작은 상처들
아무리 뒤란에 감추어도
결국 누군가에게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외할머니에게 ‘호~’해달라고
생인손 내밀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