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하지 않은 ‘건강하세요’』

형용사는 명령형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뻐하십시오. 아버님. 소자 장원급제하였습니다" 라고 했다. 형용사 '기쁘다'를 '기뻐하다'라는 동사로 바꿔 활용(끝바꿈)을 했던 것이다. 형용사 그대로 명령형으로 썼다면 이랬을 것이다.

"기쁘십시오 아버님. 소자 장원급제하였습니다."

이런 말법이 없었음은, 그리고 지금도 없음은 누구라도 안다. 마찬가지로 '슬프다'를 명령형으로 쓰려면 '슬프십시오'가 아니라 '슬퍼하십시오'가 되고 '아름답다'의 명령형은 '아름다우세요'가 아니라 '아름다워지세요'가 된다.

그런데 방송을 마칠 때쯤 진행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 '행복하세요'나 '건강하세요'다. 아마 시청자나 청취자를 생각해서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말을 한 셈이 된다(말이 안 되는 말이니 마음인들 제대로 전달이 되겠는가).

방송의 잘못된 영향 때문인지 보통 사람들도 형용사를 명령형으로 많이들 쓴다. 어느 신문이 '새해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조사했더니 1위가 '건강하세요', 2위가 '부자 되세요', 3위가 '행복하세요'더란다. 세 가지 가운데 두 가지가 말이 안 되는 말이다. 이런 말을 듣고 싶다는 사람들이나, 이걸 또 그대로 보도한 신문이나 막상막하다. 아니, 설문조사에 응한 사람들이야 설문 문항에 이렇게 돼 있었으니 그대로 말했을 터여서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치면, 이런 문항을 만들고 또 그대로 보도한 신문이 결국 문제다. 문항이 '건강하세요' 대신 '건강해지세요'나 '건강하게 지내십시오'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국 따지고 보니 우리말을 망가뜨리는 건 방송이나 신문이었던 셈이다. 이제는 좀 바뀌면 좋으련만….

(이진원의 '우리말에 대한 예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