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

서러운 것이 어디 가을뿐이겠습니까
가을이 여물 무렵
미완의 관절마다에 눈물이 고이고
날갯죽지가 엄지손톱만큼 꺾여버린
햇발의 머리카락도 푸석해졌습니다
가을은 잦아드는 잉걸불에 풀무질을 하듯
약지를 물어뜯어 혈서를 씁니다
혈서를 읽은 나무는 이별을 벌겋게 앓습니다
초록이 나무의 전부인 줄 알았더니
어느 북받치는 길섶에
그런 아리따움을 숨겨두었을까요
사지에 축적해둔 푸른 정열이
갓길로 갓길로 스러지자
마치 망망대해에 떠오르는 해처럼,
혈서의 설움이 번져 한낮처럼 선명해졌습니다
그리고 꽃시절보다 황홀한
단풍의 계절이 나무를 덮쳤습니다
단풍은 소리 없는 빛의 함성으로
절절하게 회고록을 쓰고 있습니다
과거를 움켜쥐는 일은 늙은 세월의 몫이었습니다
집착의 손을 놓으니
천지간에 얽힌 눈물의 고를 풀어내듯
낙엽은 허튼춤의 수건자락처럼
훠이훠이 날아오르고
이윽고 돌아온 철새 한 마리
고향의 황토밭 같은
노을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갔습니다.